<각주(脚註) 없이 성경 읽기>

 

마리아’만’ 그 일을 마음에 두었을까? 눅 2 : 41-52

 

본문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입니다.

예수, 하면 흔히 어른인 예수만 생각되지만, 어린 아이 시절의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유일한 구절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잘 키웠는데, 52절에 그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러면 누가는 왜 이런 구절을 기록했을까요?

그러한 예수의 성장 과정에서 마리아의 역할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예수의 모습을 만들기까지 마리아는 예수를 어떻게 키웠을까요? 그 단서가 바로 51절입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

 

결국 어머니인 마리아가 ‘생각’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마리아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에 모든 일을 담아두고 아이를 키우니 그 아들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기록한 누가가 마리아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비단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의미의 말을 누가복음 2장 안에 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 밤중에 목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하고 돌아갔습니다.

19절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이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마리아는 예수의 탄생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계속해서 생각하여 그 의미를 되새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누가는 두번씩이나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런 기록을 함에 있어 누가는 무언가 색다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는 그러한 점이 돋보이지 않지만 영어성경으로 살펴보면 무언가 다른 점이 드러납니다.

 

19절,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But Mary treasured up all these things and pondered them in her heart.

 

51절,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But his mother treasured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영어 성경에 보면 “but”이라는 전치사를 썼습니다. 왜 But 이라는 역접접속사를 사용했을까요?

앞에 사람들과는 다르다, 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구절은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목자가 찾아 온 것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부모에게 잘 순종하면서 자란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벌로 보고 그냥 지나쳤지만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에게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마음에 깊이 담아 두었다, 그것이 특이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기록한 누가는 그 일,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 대하여 일어난 일을 가슴에 담아두었다는 사실이 특이하게 생각되었고, 무언가 의미있는 사건으로 여겼기 때문에 기록을 했고, 그러나(but)라는 역접 접속사를 사용해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해 봅시다.

예수의 탄생기록, 예수의 성장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면서 마리아가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는데, 그래서 마리아라는 사람이 특출난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니 마음 씀씀이가 보통사람과는 다르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과연 그것이 올바른 결론일까요?

 

그 당시 다른 어머니는 그러지를 않았는데, 유독 마리아만 그랬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기록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남자들이라 그럴 생각은 못했는데 마리아는 여자이니까, 특히 어머니이니까 그렇게 가슴에 담아두었다는 말인가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어머니들은 어떨까요?

자기 몸으로 낳은 아들 딸에 대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냥 무심하게 넘기고 생각하지 않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아니지요, 적어도 정상적인 어머니라면,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어머니는 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다른 어머니와 달라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이니까.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이 구절이 '마리아'라는 특정 인물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라는 인물을 통하여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는 구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 누가복음 2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는 장입니다. 그리고 더하여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어떻게 그 일을 받아들였는가 하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 마리아의 역할에 중점을 두는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마리아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설령 예수님의 어머니가 마리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아들인 예수에 관한 일을 그렇게 마음에 두었다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마리아만 그렇게 아들의 일을 마음에 두었다면, 당연히 마리아는 대단한 사람이며 특별한 사람이지만 이 세상의 어머니는 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이 마리아를 추어주거나, 높이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서 말해주는 구절로서 손색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우리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예수를 맡기셔서 키우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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