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脚註) 없이 성경 읽기

 

문, 그 첫번째 - 베드로의 옥문을 여시다 / 행 12장 6-11

 

저는 이 말씀, 오늘 본문 말씀을 오늘 신년 첫번째 묵상 본문으로 잡아 보았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니라, 이 본문에 나오는 사건, 베드로가 옥중에서 나오게 되는 사건, 그 사건을 직접 우리들이 경험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이 본문을 묵상하다 보니까, 이 본문 구절 구절들이 우리 살아가는 것들과 어쩌면 그토록 닮았는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살아가는 것과 닮은 점이 있으니, 올 한해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목, 그 고비 고비마다 오늘 본문에서 일어났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라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구절 구절들이 우리 살아가는 것들과 닮았다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닮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우리들의 삶과 어떤 부분이 닮았습니까?

 

먼저, 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6절,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너무 비관적인 생각인지 몰라도, 자기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남의 뜻에 따라 매여 묶여 있는 모습, 인생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인 잠자는 것마저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병사들이 이끄는대로 쇠사슬에 매여 자는 모습,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다르다구요? (병원의) 환우분들 자기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상처, 또는 아픈 것 때문에 여기 오셔서 생전 처음보는 침대에 누워서, 더군다나 링거 및 약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녀야하는 모습, 물론 베드로가 내일 아침이면 어쩌구 하는 것만 빼고는 흡사하지 않습니까?

구체적인 모습을 그렇게 말씀드리니까 그렇지 또 보이지 않는 족쇄들을 우리 인생은 얼마나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지 모릅니다. 어깨에 한 짐, 허리에 두 짐, 지고 다니는 짐들이, 족쇄들이 한두개입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 인생을 닮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요, 제가 지금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와 방불하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오늘 본문의 결론이 그러한 족쇄를 차고 다니는데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족쇄가 풀려 감옥을 벗어나는 모습이 기적적으로 일어나니까, 그렇게 우리 인생들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니까, 조금 참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베드로의 옥중 모습,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렇다 하고, 그렇다면 베드로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런 베드로의 심정과 우리의 마음은 닮은 데가 있을까요?

 

사도행전 12장 1절 이하에 보면 초대교회에 성령의 강한 역사로 말씀이 부흥하니까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형제되는 야고보 제자가 잡혀서 죽었고(2절) 연이어서 베드로 사도마져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4절) 그야말로 교회에 일대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이제 눈을 돌려 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의 마음을 한번 살펴봅시다.

밖에서는 교회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밖에서 기도하고 있으니 당연히 금식, 철야기도라도 하고 있어야 마땅한데 말입니다.

 

과연 옥중에서 어떤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옥으로 들어가 봅시다.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베드로는 그 와중에서도 자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신세 편하게도 잠을 자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사형을 당할 터인데, 지금 천하태평으로 잠을 자고 자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어디 편히 잠이 오겠습니까? 내일도 아니고, 모레, 수술 날짜 잡아놓고는 며칠 밤을 못자는 사람도 있는데 ,베드로는 사형을 당한다는데, 그것도 바로 내일 그런다는데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베드로가 자고 있는 잠이 어떤 잠인지, 과연 편한 잠인지, 잠 못자고 눈만 감고 있는 전전반측의 잠인지 살펴볼까요?

 

7절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옥중에 광채가 빛났다. 따라서 어두컴컴한 감옥에 환한 빛이 비쳤으니 웬만한 사람같으면 눈이 부셔서 잠에서 깨어났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양 옆에 누워자고 있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믿는 구석이 있어 잠을 깊이 자고 있습니다. 그 당시 중요 범죄자는 양옆에 병사가 팔목에 쇠사슬을 하나씩 걸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두손이 다 묶여있는 것이나 진배없으니 어디 도망칠 엄두라도 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 옆에 자고 있는 간수들은 태평입니다. 그러니 잠을 곤하게 잘 수 있겠지요.  당장 내일 목숨이 왔다갔다 할 죄수인 베드로도 그처럼 잠이 깊이 잠이 들었다는 것은 그래서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울 정도로 곤하게 자고 있었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베드로는 내일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날, 감옥에서도 그렇게 태평스럽게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그 때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바로 예수님이 주신 평안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다는 믿음으로 주님이 주신 평안을 베드로는 그 순간에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그래서 마음에 평안이 있었기에 그날 밤 잠을 아주 깊고, 달게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밖에는 교회가 기도할 수 있었고 감옥 안에서 베드로는 내일 사형이 된다는데도 평안을 누리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제자들이 환란을 앞에 두고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자들의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어떤 어려움에도 담대하게 맞설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겨 낼 수 있다는 그래서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우리는 닮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우리는 그런 베드로의 마음을 닮지는 못하고, 세상에!!! 베드로가 그런 어려움 속에서, 환란을 앞에 두고 그렇게 담대하게 평안을 누리고 살았다니, 오히려 우리는 주눅이 듭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니까,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하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제자들이 아니니까, 우리는 그렇게는 못해,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베드로가 담대하게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조차 아깝지 않다,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어떤 것 하나, 혹시 우리들처럼 조금 약한 마음이 한구석에 있지는 않았을까요? 베드로도 죽을 생각에 걱정 걱정 하다가 지쳐서 에라 모르겠다, 목숨이 하나지 두개냐, 하면서 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거둬간다 할지라도 거둬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에게 맡기자, 하는 어찌 보면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없었을까요? 우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애쓰고 바둥바둥 애를 쓰다가 도저히 답이 안보인다, 싶을 때 에라, 될대로 되라, 죽기밖에 더하겠느냐? 하는 식으로, 포기해버리는 심사. 베드로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도 사람이니까요.

그렇게라도 생각한다면 베드로의 마음 상태와 우리 마음이 어쨌든 조금은 닮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끝이 나면, 이 새해 아침에 우리가 성경을 묵상할 때 안타까움만 남게 되겠지만, 그 다음에 베드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성경 본문에 일어났다고 기록이 되어있으니, 분명 일어난 것이 확실합니다.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아주 짧은 시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은 우리와 어떤 유사점이 있을까요? 우리의 삶속에서 이런 일이 우리에게 과연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지난 번, 제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의인 몇 명을 찾으면 소돔과 고모라을 살려 주시겠습니까, 라는 묻는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18장

28절,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절,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 대화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라고 알고 있기에, 별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은 해보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대화가 과연 정상적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그때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가 단시간 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50명을 찾으러 갔다, 돌아와서 5명이 부족하면 안되겠습니까, 묻고는 또 찾으러 갔다가 다시 돌아와 45명에서 5명이 부족하면 어쩌실래요? 하는 식으로, 그렇게 대화가 이루어진 시간을 늘려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대화가 아닌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오늘 본문에서 일어난 사건을 밤사이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조금 시간을 늘려보면 어떨까요?

 

조금 더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여기 꽃씨 하나가 있습니다. 이 꽃씨를 화분에 심고 물을 부어준다 가정합시다. 그런데 방금 심은 꽃씨가 싹이 트고 줄기 가지가 솟아오르고 바로 꽃이 예쁘게 핀다면 그것을 뭐라 부릅니까? 기적,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심은 꽃씨가 바로 싹이 돋지 아니하고 일주일 후에 가지 줄기, 그다음에 몇 달 후에 꽃이 피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그 꽃을 바라볼 것입니다. 하나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일어난 사건에,  짧은 시간 대신 긴 시간을 집어 넣어 사건의 시간대를 쭈욱 늘려 생각해 보았습니다.

밤사이 짧은 시간에 일어났던 베드로의 탈옥사건을 일주간으로 그리고 한달로 시간을 늘려서 생각해 본다면, 이런 일들은 우리 삶속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살다가 어떤 어려운 일에 봉착하여 고생고생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매일 매일을 걱정과 근심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선가, 문득 깨닫고 보니 그 걱정을 하지 않는구나, 하는 일, 경험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일이 어느새 풀어져 있더라, 하는 경험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까 서두에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우리와 닮은 점이 있다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이것 또한 닮은 점입니다. 베드로의 모습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닥쳐 오는 일들을 우리가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고생고생하고 있는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나를 괴롭히던 일들이 어느 날 감쪽같이 해결되어 있는 것을, 그래서 내가 어느 때인지도 모르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걱정을 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들 삶속에서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를 베드로는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베드로의 말인즉, 우리들 말로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내가 감옥에 들어가 목숨이 오늘 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정말 나도 모르는 일인데, 이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나로서는 비몽사몽간에 영문을 모르고 천사가 하라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는데 지금 깨닫고 보니, 내가 감옥에서 나와 이렇게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이런 일이 믿어지십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베드로의 말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도 모르게 일어난 문제 해결의 경우가 그렇게 설명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 사건이 하룻밤 안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 사건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났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에 적용할 교훈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일에는 사건들이 우리가 애써서 힘써서 문제를 풀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힘으로 벅차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에,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이제는 포기하자 하면서 잠을 자고 있을 때에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네 인생의 문제들도 어렵고 힘들고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에 그것이 일주간, 또는 한달 후에 천사의 도움으로 나도 모르게 풀린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 인생에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인생이 한두해를 사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기적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우리 길고 긴 인생을 꽈악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세월을 이야기하고,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일, 그런 일이 베드로의 삶속에서 일어난 것이 분명하길래, 그러한 일이 우리들 삶속에서 일어난 것이 분명하길래, 새해 첫번 째 묵상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자, 이제 그런 본문을 마음에 두시고 한가지만 더 생각을 덧붙여보십시다.

아까 제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간을 억지(?)로 늘여 보았습니다. 밤새 일어났던 사건을 우리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일주간 또는 한달 세월로 늘려 보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시간을 늘려 보았는데, 이번에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문제 해결의 사건들을 다시 시간을 줄여 봅시다.

그러니까 일년 걸려서 문제가 해결되었네, 하는 사건들보다 그러한 문제해결이 한달 그리고 한주간으로 줄여나가는 사건들이 우리 삶속에서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어려운 문제들이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밤새 해결되어 버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새해, 참으로 기분 좋고 듣기 좋은 말입니다. 그런 새해가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성경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보고 듣는 이야기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새해, 오늘 본문에 일어났던 일로 모두다 채워나가는 우리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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