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2

제 1장 ‘낯선 기억’과의 만남

1. 낯선 단풍나무를 만나다 (1)

고려시대 문인인 임춘(林椿)은 “명산대천을 두루 유람하여 천하의 기이하고 장대한 들을 거리, 볼 거리를 구한다(周覽名山大川, 求天下之奇聞壯觀)”라고 했지만, 요즈음은 굳이 밖으로 나가 명산대천을 유람할 필요가 없다. 손에 책을 들어도, 또한 인테넷에 접속해도 천하의 기이하고 장대한 볼거리를 듣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게 다 세월이 변한 덕분이다. 그래서 보고 듣고 하는 기이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런 것은 어떨까?

<<자료 1 >>
궁궐에 심으면 안 되는 나무가 뭔가요?
* ( )가 있는 나무
* 속이 ( ) 나무
* ( ) 나무

누군가 야후(Yahoo) 지식검색에 올려놓은 문제이다. 괄호 안에 답을 써 넣으라는 문제이다. 문제 스타일로 미루어 보아 초등학교 과정의 문제로 짐작되지만,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상식으로는 그 괄호에 답을 채워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궁궐에 심으면 안 되는 나무라는게 있구나, 궁궐이라면 예전의 일일텐데, 그렇다면 분명 우리 나라 역사의 기록 어느 한 켠에 나옴직한 내용인데, 내 역사관련 상식이 부족하구나, 하며 괄호 채우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밑의 답을 읽어 보았다. 누군가 친절하게 거기에 답을 하고 있었다. 그 오지랖의 넓음이라니!

* ( 가시 )가 있는 나무
* 속이 ( 빈 ) 나무
* ( 단풍 ) 나무

그리고 그 밑에 그런 답이 나오게 된 이유를 친절하게 적시하고 있었다.

<가시가 있는 나무나 속이 빈 오동나무는 심을 수 없었어요. 또 색깔이 변하는 단풍나무도 '금지 수목'이었죠. 왕을 향한 마음이 변해선 안 되니까요. 그래서 궁궐에는 단풍나무처럼 생겼지만 색깔이 변하지 않는 신나무(단풍나무과)를 심었다고 하네요.>

다른 나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왕을 향한 마음이 변해선 안되니, 색깔이 변하는 나무인 단풍나무를 궁궐에서는 심어선 안 된다니 뜻밖이다. 정말일까? 그런 사실과 그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상식은 초등학교 과정 정도의 수준에도 모자란단 말인가?

그래서 또 다른 자료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자료들은 가끔씩 그 근거가 애매하고 모호하여 믿을 게 못 된다는 평판에 기대어, 나의 상식이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 싶었다. 그 답이 틀리기를 기대하면서. 그랬더니 비슷한 내용의 질문과 답변이 네이트(Nate) 지식 검색란( NATE Q & A )에 올라 있었다.

<<자료 - 2>>
<옛날의 궁궐에는 심어서는 안되는 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말이 사실인가요? 그렇다면 궁궐에 심어서는 안되는 나무는 무엇이었죠?
그리고 이 나무를 심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세요>

그 질문에 역시 누군가 답을 하고 있었다.

* ( 가시 )가 있는 나무
* 속이 ( 오동 ) 나무
* ( 단풍 ) 나무

이번에 답을 올린 사람은 두 번째 항목에 답을 하는데 너무 성급했다. 괄호의 앞과 뒤에 맞춰 알맞은 말을 집어 넣지 못하는 바람에 문장이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질문자는 얻고자 하는 답을 얻었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더하여 그 사유를 적었는데, 야후(Yahoo)에서 본 것과 똑 같은 내용이었다.

<가시가 있는 나무나 속이 빈 오동나무는 심을 수 없었습니다. 또 색깔이 변하는 단풍나무도 '금지 수목'이었습니다. 왕을 향한 마음이 변해선 안 되니까요. 그래서 궁궐에는 단풍나무처럼 생겼지만 색깔이 변하지 않는 신나무(단풍나무과)를 심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단풍나무가 예전에는 궁궐에 심을 수 없는 나무였다는 것이 나에게는 의외의 사실이고, 기이한 일임에 분명한데, 글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어쨌든, 현재 인터넷에 오르내리고 있는 지식 검색 사이트에서 두번의 질문과 답변을 통하여 단풍나무는 궁궐에 심어서는 안 되는 나무로 정의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된 기쁨보다도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싶어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나의 지식에 언제 이런 틈이 생겼단 말인가, 이런 중요한 지식 하나가 송두리째 나의 촉각에 걸리지 않고 빠져 나가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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