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6

제 1장 ‘낯선 기억’과의 만남

1. 낯선 단풍나무를 만나다 (5)

지난 호까지 <궁궐의 단풍나무 부재> 주장이 제법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단풍나무는 변절의 상징으로 여겨져 궁궐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였다는 주장이 여기 저기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풍나무는 궁궐에서는 볼 수 없었다 하는데, 그럼 궁궐을 벗어난 다른 곳에서는 어떠한 대접을 받았을까? 변절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다면 어디 궁궐뿐이랴, 분명 다른 곳에서도 대접을 제대로 받았을 리가 없다. 아니다 다를까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 내 추론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료- 7>>

단풍나무 (194번째)
멈추지 않는 수액 … 서양에선 지하수맥 찾는데 이용 [2005-10-24]

생약이름 : 계조축효능 : 소염•해독•거풍습적용질환 :
골절상•관절염•사지마비•동통







산야초 편지▶
식물의 모습▶인디언 전통 단맛 음료수 나무가을.

누가 고독의 계절이라 했나. 가을 나뭇잎들은 떠날 채비를 하며 각양각색 사람이 살아온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게 물들어 가고 있다. 가을이 오면 나뭇잎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녹색에 가려져 있던 주홍 노랑 황갈 색소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나무 잎의 빛깔이 변화하는 현상을 단풍이라 했다. 단풍으로 이름난 곳 북한산 설악산 가지산 지리산 내장산 우리나라 단풍은 아름답기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봄에는 꽃 피고 가을에 단풍이 고운 이 땅을 금수강산이라 했던가.

여러 나무들의 잎 색깔이 변화하는 현상을 통칭하여 단풍이라 했고 그 가운데 단풍나무 잎은 유독 진홍빛으로 고와서 단풍나무라 했다. 단풍나무과에는 우리나라에 1속 15종이 낙엽 활엽 교목 관목으로 자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단풍나무 종류들은 그 모습이 형제처럼 비슷하여 일일이 비교 설명하기가 어려워 한데 묶어 그저 단풍나무로 부르고 있으나 크게 분류하면 단풍나무•고로쇠나무•신나무로 나뉘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당단풍은 잎이 9~11갈래로 갈라지고 단풍나무는 잎이 5~7갈래로 갈라져 있어 구별되며 고로쇠나무도 잎이 5~7갈래로 갈라지나 단풍나무 잎처럼 그 잎 갈라짐이 깊지 않고 잎 가장자리가 결각지지 않아 단순함으로 구별할 수 있다.
신나무는 단풍이 진홍빛으로 아주 고우면서 잎이 3갈래로 갈라져 있어 구별하기 쉽다. 그리고 일본에서 조경수로 개발 이 땅에 수입된 봄부터 붉은 잎 노무라단풍이 있으며 캐나다 국기에 붉은 단풍나무 잎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는데 그 곳에는 설탕단풍나무가 자란다.
단풍나무 종류들이 여럿이나 공통된 특색은 프로펠러처럼 뱅글뱅글 돌며 땅으로 떨어지는 일정한 각도를 이룬 날개가 달린 시과翅果 열매를 모두 맺는다는 사실이다. 북미 전통식품으로 설탕단풍에서 고로쇠처럼 수액을 채취하여 끓여 만든 진액을 매플시럽maplesyrup이라 하며 설탕을 대용한 건강음료로 유명한 관광상품이다. 이 전통은 본래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들이 전수해 준 것으로 인디언들은 이 나무 수액을 장작불에 끓이면서 함께 모여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아마 산천의 초목들을 형제자매로 불렀던 인디언들의 자연숭배사상으로 보아 나무의 수액 즉 목혈木血을 받아온데 대하여 나무의 영혼을 위로하고 은혜를 찬양하는 축제가 아니었는가 싶다.

단풍나무는 봄 눈엽 나물, 여름 두터운 그늘, 가을 단풍, 겨울 질긴 목재 그리고 달콤한 수액으로 버릴 것 없으나 동양의 군자도사상은 지조를 중히 여겨서 가을 찬 바람에 물들어가는 단풍은 변절의 상징이 되어 절의를 숭상한 지사들 집 정원에는 찾아 볼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초목들이 붉고 푸른 것이 찬 서리에 시들고 견디는 것이 그들의 탓이랴 자연의 이치인 것을 사람도 생노병사로 변이하여 가듯 세상에 변함 없는게 어디 있으랴 다만 어떻게 변천하여 가느냐가 다를 따름이다.

약성과 약효▶멈추게 할 수 없는 흐르는 수액

단풍나무에 관한 기록은 고려 말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단풍나무를 관상용으로 심었다는 최초기록과 조선시대 조성된 대표적 자연정원 「소쇄원」과 「다산초당」에 대한 기록에서 단풍나무를 정원수로 심어 가꾸었다고 전해온다.
단풍나무 한문이름 단풍丹楓은 우리들이 한문 글을 만들어 쓴 말이며 중국에서는 단풍나무를 축수라 하고 중국의 풍楓나무는 향료재료로 쓰는 나무로 이 땅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한방에서 단풍나무의 잔가지와 뿌리껍질을 계조축이라 하며 약으로 쓴다. 계조축이란 단풍잎이 닭발처럼 갈라지고 그 끝이 손톱처럼 뾰족한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풍나무는 한방에서 널리 쓰이는 약은 아니다. 민간에서 주로 관절염과 골절상에 소염 해독제로 구하기 손쉬운 약재로 쓰여 왔다. 효능은 거풍습•골절상•관절통•질타손상-풍습성으로 인한 사지가 마비되고 아픈 증상 특히 무릎관절염으로 통증이 심할 때 이 약재 80~150g을 물로 달여 복용한다. 골절상이나 넘어지면서 입은 부상 오가피와 배합하여 사용하며 소염작용과 해독효과가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간장질환에 약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단풍나무 성분에는 여러 가지 플라보노이드flavonoid가 함유되어 있다. 플라보노이드는 식물성 색소성분의 일종으로 특히 건조된 녹차 잎의 경우 녹차 무게의 30% 가량 많은 양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항균 항암 항염증 항바이러스 항알레르기 활성을 지니며 독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되었고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되는 생체 내 산화작용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플라보노이드계 물질의 개발과 활용에 지속적인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단풍나무도 고로쇠 나무처럼 수액을 받아먹기도 하는데 이른 봄 경칩 3월 5~6일 경 단풍나무가지를 꺾어 놓으면 흐르는 수액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멈추게 할 수 없다. 서양에서는 지하 수맥을 찾는 것을 다이빙 로드 diving rod라 하며 단풍나무 가지를 이용하고 있다.

<650호 : 2005년 10월 24일 월요일자> 艸磊山房(oldmt@hanmail.net)

“동양의 군자도사상은 지조를 중히 여겨서 가을 찬 바람에 물들어가는 단풍은 변절의 상징이 되어 절의를 숭상한 지사들 집 정원에는 찾아 볼 수 없을 때가 있었다”니 궁궐뿐만 아니라, 궁궐 밖에서도 절의를 숭상하는 집에서는 단풍나무를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기록이다. 변절의 상징인 단풍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절의를 숭상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데, 누가 단풍나무를 집안에 심어 절의를 숭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 놓고 표시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단풍나무는 웬만한 사람의 집안에서도 내쫓기는 신세였음이 분명하다.
.
그래서 이런 저런 기록을 통해서 이제 알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단풍나무는 한 때 변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궁궐에서는 물론, 웬만한 지사들 집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전혀 ‘낯선’ 기억이었다. 어찌 된 일인가?

이런 기억이 비단 나에게만 낯선 것일까, 아니면 우리 나라 역사에 낯선 것일까?
만일 나에게만 낯선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상식이 부족한 탓이리라, 더하여 나의 독서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의 상식이 그리 부족하거나 또한 독서가 그리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그렇다면 무언가 나의 촉수에 벗어난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무엇일까?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