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7

제 1장 ‘낯선 기억’과의 만남

2. 낯선 기억의 정체를 찾아서 (1)

단풍나무에 관해 듣게 된 ‘낯선 기억’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ㅇ 조선시대 궁궐에 단풍나무는 없었다.
- 단풍나무를 변절의 상징이라 여겨 단풍나무를 심지 않은 것이다.
ㅇ 사대부 집안에 역시 단풍나무는 없었다.
- 지조를 중히 여겨서 변절의 상징인 단풍나무를 심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몇 가지 글을 소개했는데, 한결같이 단풍잎의 색깔이 변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단풍나무를 지조 없다고 여기고, 그래서 궁궐과 사대부 집안에 심지 않았다는 게, 내용의 골자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뜨인다. 궁궐에 단풍나무를 심지 않았던 이유는? 단풍나무 잎의 색깔이 변하니 그것을 변절의 상징으로 보아, 지조 없다고 여겨 궁궐에 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유다. 그러나 그런 이유는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장의 근거에 대해서는 모두다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풍나무가 색깔이 변한다고 해서 그랬다는 이유야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런 일- 궁궐에 단풍나무를 심지 않았던 - 이 우리 역사상 사실로 있었던 일이었는가, 혹은 누가 단풍이 변절의 상징이라 언급한 적이 있는 것일까? 더하여 정말 그 조선 시대에 궁궐과 사대부의 뜰에 단풍나무는 없었을까, 우리 역사에서 어느 시대에 얼마 동안 그러한 사실이 있었던가? 그래서 궁궐에 단풍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여, 그것을 역사에 남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고 그런 사실, 역사적 사실이 있음을 기록하거나 발설한 것이 근거가 되어, 그런 근거를 제시하면서 궁궐에는 단풍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주장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읽었던 기록들에서는 이유는 제시했지만,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마치 그런 사실과 이유를 모두 알고 있으며,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그저 그랬다, 하는 진술뿐이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이 우리 역사에서 한 때 있었다면 어떤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런 근거에는 모두다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궁금하다.

그래서 혹시 다른 글들은 어떤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으로 계속하여 관련 자료들을 찾아 보았다. 아쉽게도 아직 그러한 근거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좋다, 그들이 근거를 말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근거를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주장하는 그들이 설마 아무런 근거없이 말하랴, 하는 심리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에게  단풍나무에 대한 낯선 기억을 용납하고 싶었다.

과거에 살았던 그 사람들은 이미 다 이세상에 있지 않기에 그들의 육성 증언을 구하는 것은 어렵다. 무덤에라도 따라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다. 수수께끼를 밝혀내고 억울한 죽음을 캐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따라서 그 기억은 당연히 문헌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주장이 등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찾아 보았다.

<<자료- 8>>
<우리 선조들이 잎의 색깔을 바꾸는 단풍나무를 지조가 없다 하여 꺼렸다는 말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고려 말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단풍나무를 관상용으로 이용한 최초의 기록이 있고,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원 소쇄원이나 다산초당 등의 뜰에 단풍나무를 심어 가꾸었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선조들도 단풍나무를 좋아했던 것 같다.>

우리 선조들도 단풍나무를 좋아했다고 말하면서도, 지조가 없어 단풍나무를 꺼려했다는 단서를 첨부한 인터넷 상의 글이다. 어디 그뿐인가? 도서관에서 만난 단풍나무는 슬프게도 다음과 같은 주홍글씨를 달고 있었다.

<<자료- 9>>
<요즈음 단풍나무는 정원수로 인기 있는 나무들 가운데 하나이다. 단풍나무가 색이 변하므로 지조를 중히 여겼던 시대에는 반겨하는 나무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단풍나무의 정원수로서의 역사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100가지> (이유미 지음, 개정판 3쇄, 2007년 8월 30일) (131-132쪽)

안타깝게도 <지조를 중히 여겼던 시대에는 반겨하는 나무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누가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그저 “누군가” “단풍나무가 색이 변하므로 지조를 중히 여겼던 시대에는 반겨하는 나무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그 말은 누구인가 (나무를 연구하는 학자가) 적어도 우리 과거의 역사 어느 때엔가 단풍나무를 변절의 상징으로 여겨 (정원수로 심기를) 반겨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주장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또 누가 그런 주장을 했을까?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