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8

제 1장 ‘낯선 기억’과의 만남

2. 낯선 기억의 정체를 찾아서 (2)

우리 역사 과거 한 때 단풍나무를 변절의 상징으로 여겼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 발설자를 찾기 위하여, 그 중간 과정에서 궁궐에 단풍나무 부재설을 전해주고 있는 전달자들을 추적해 보았다.

먼저 눈에 띄는 존재는 숲해설가다. 자료 3과 4를 통하여 본 것처럼, 궁궐의 단풍나무 부재 주장은 숲해설가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숲해설가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면 그 발설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숲해설가들은 그런 주장을 어딘가에서 배운 바, 들은 내용을 전해주는 전달자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사실을 가르친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주장의 근원을 만날 수 있으리라.

<<자료 3>>
< 숲해설가께서는………. 단풍나무들은 옛날 궁궐에 절대로 심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햇빛에 의해서 쉽게 색이 바뀌는 즉 지조 없다는 이유로 심지를 않았다고 한다. >

<<자료 4 >>
<지난달 서울시가 처음으로 실시한 아차산 숲 해설가 공개모집에 뽑힌 이숙희(45•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씨는 아차산의 매력에 흠뻑 취한 ‘숲 읽어주는 아줌마’다.
그는 현재 매월 1•3주 일요일, 서울시의 ‘숲속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해 아차산을 찾은 시민들에게 아차산에 있는 나무•풀•꽃•곤충 등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궁금증 풀려고 배우다 보니 어느새 인정 받아
그는 이 때부터 산을 오르며 품게 된 의문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기 위해 노력했다. 꽃이나 나무 이름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식물을 알게 됐고, 식물을 알게 되다 보니 또 다시 곤충을 공부해야 했다.
그 결과가 서울시의 숲해설가 공개모집에 합격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씨는 3년전 쯤부터 환경단체인 ‘생명의 숲’이나 ‘환경대안협회’ ‘양재천 환경지킴이’ 등에서 실시하는 전문교육을 이수했으며 자원봉사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
아차산에서 숲 해설가로 일하면서 그는 자연생태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씨는 아차산의 단풍나무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자신이 공부한 문화적 배경을 접목한다.
조선시대 궁궐의 정원에는 절대 단풍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해요. 단풍의 색깔이 변하는 것이 변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더군요.”>

위의 내용으로 볼 때, 숲해설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 그 내용을 전수 받았음에 틀림없다. 조선시대 궁궐의 정원에는 단풍나무를 심지 않았는데, 단풍의 색깔이 변하는 것이 변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라는 교육을.

숲해설사를 양성하기 위한 여러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숲연구소>를 비롯하여 여러 기관에서 숲해설가를 양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숲해설가들이 어떤 교재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지 살펴보았다. 기관별로 각기 다른 교재를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교재들을 구할 수 없으니 그들의 커리컬럼과 교재로 쓰일만한 책들 살펴보는 수 밖에. 먼저 신문기사 한 토막 살펴보자.

<<자료- 10>

<농촌체험관광 전문가 교육(숲 해설사) 개강식
양주시 농업기술센터(소장 정동환)는 농촌체험관광 경영체가 체계적이고, 전문지식을 갖춘 인력을 육성하여 관광농업을 활성화 하고자 지난 22일 농업기술센터 대회의실에서 농촌관광연구회원 교육생 35명이 참석한 가운데 ‘농촌체험관광 전문가 교육’ 개강식을 개최했다. 이번 교육은 ‘숲 해설사 양성과정’으로 오는 10월까지 24회에 걸쳐 120시간 동안 진행되는 교과과정으로 산림청 인증 숲 해설가교육 전문양성기관인 ‘숲 연구소’에 위탁하여 진행된다.
정동환 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도농복합시 양주는 농촌관광의 중요성이 상당한 만큼 현장과 이론을 접목하여 교육생 농장별로 즐겁고 유익한 체험 시스템을 마련하여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숲 연구소 남효창 이사장도 오리엔테이션에서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농촌의 풍광과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양주는 농촌체험관광이 적격인 곳”이라며, “다양한 프로그램의 현장실습을 통해 모든 교육생이 숲 해설 전문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읽고, 숲연구소 이사장 ‘남효창’이란 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분의 책도 읽어보았다.  숲해설가를 양성하는 당사자이니, 그분의 책 안에 무언가 단서가 될만한 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숲 해설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하여는 남효창 박사의 이력을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 분의 이력에 숲해설가를 설명하는 대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료- 11>>
<그러나 남효창이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숲 박사라는 닉네임이 따라붙는다. 이 정체불명의 박사학위는 그만큼 그의 삶이 숲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의 반증일 터이다. 그가 숲을 처음 만난 것은 누구나 그렇듯 기억에도 가물거릴 만큼 아득히 먼 어린 시절이겠지만, 숲을 처음으로 온전히 느끼고 이해한 것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산림생태학을 전공하면서부터다. 대상으로만 여겨오던 숲이 갑자기 나와 같은 존재감으로 다가왔을 때의 느낌은 차라리 충격에 가까웠다. 숲이 인생의 동반자로 다가온 것이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산림환경정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석사(1994년)와 박사(1998년) 학위를 받은 후 한국에 돌아온 것이 1999년이다. 이후 약 1년 반 동안 서울대학교 임업과학연구소에서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발의 대상으로만 남겨져 있는 조국의 숲은 그에게 안타까움이었고, 그 안쓰러움은 자신에 대한 자괴감마저 불러왔다. 숲연구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땅에 숲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숲연구소에서는 숲 생태 체험 놀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전문 숲해설가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분의 책 <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을 읽었는데, 단풍나무에 대해 궁궐과 연관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숲과 나무에 대해 초보자라 할지라도, 읽어 본다면 아주 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숲해설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한번쯤 읽어보면 어떨까?

그 책에서 단풍나무를 설명해 놓은 부분 중 단풍 또는 단풍나무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구절을 몇 가지 인용해본다.

<<자료- 12>>

< 우리가 살아가는 온대지역의 숲에는 소나무나 신갈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및 전나무나 구상나무 등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48쪽)

< 숲에 갔을 때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양한 모습을 한 나무들이다. 봄에는 봉긋 솟아오른 새싹이, 여름에는 울창한 푸른 잎이, 가을에는 농익은 단풍이, 그리고 겨울에는 맨살을 드러낸 가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52쪽)

< 나뭇잎은 오로지 초록색만 엽록소만 가지고 있을까? 아니다. 나뭇잎은 모든 색깔을 가지고 있다. 가을이면 숲은 여러 가지 색깔의 옷을 갈아입고, 나무마다 곱게 단풍이 든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바로 이 초록색 엽록소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뭇잎 속에 들어있던 엽록소들이 사라지면 그동안 엽록소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던 색깔들이 눈을 뜬다. 대부분의 경우 엽록소 대신에 카로틴이라는 색소와 안토시안이라는 색소가 나타나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단풍을 만든다. > (81 -82쪽)

< 이렇게 종자를 통해 번식하는 나무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절대적으로 바람에 의존해서 종자를 이동시키는 경우와 철저하게 동물을 이용해서 종자를 이동시키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바람을 이용할 줄 아는 나무에는 자작나무, 단풍나무, 느릅나무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무들이 이러한 전략을 이용한다. 바람이 아니라 동물의 도움으로 이동하는 나무로는 도토리나무와 밤나무, 혹은 잣나무가 있다.> (100쪽)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온대지역이다. 이 온대지역에 서식하는 나무들은 낙엽을 떨어뜨리기 전에 잎의 색깔을 바꾸며 아름다운 풍경을 펼친다. 가을의 숲이 펼치는 형형색색의 단풍들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숲으로 간다. 숲은 현대인의 복잡한 생활을 충분히 풍요롭게 한다. 이것은 숲이 지닌 능력이며 가치다. > (206쪽)

<나무의 열매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종자에 날개가 달려있는 소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도토리나 밤처럼 딱딱한 각질로 되어 있는 열매도 있고, 우리가 맛있게 먹는 앵두나 사과, 배처럼 과육으로 둘러싸인 열매도 있다.>(233쪽)

< 밤송이는 왜 수많은 침들을 달고 있는지, 주목의 열매는 왜 먹음직스러운 과즙으로 둘러 쌓여있는지, 또는 단풍나무나 물푸레나무 등은 왜 날개를 달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다 보면, 어느덧 그 나무들의 성격을 이해하게 된다. > (329쪽)

어디 단풍나무에 관한 기록뿐인가, 나는 그분이 말한 ‘생명사상’에 감동을 받았다.

<<자료- 13>>
<오늘 날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분은 상당 부분 과학에 기대고 있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덱거는 “과학은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며, 야스퍼스는 “과학적 지식은 사물이나 생물의 본질이나 존재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들보다 훨씬 이전인 고려시대 때 이규보는 모든 만물이 근원적으로 평등하다고 보았다. 그의 생각은 “달팽이의 뿔(더듬이)과 쇠뿔을 똑같이 보고 참새와 대붕(大鵬)을 평등하게 보게 된 연후에라야 우리는 도(道)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과학이란 논리적인 사고를 견지해 옴으로써, 생명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 과학은 우리 삶의 전부를 책임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갈망을 채워주지 못한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갈망의 폭은 더욱 더 넓어질 것이다.
나무와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은 분명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을 분해해보면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무나 사람이나 마지막 분석 결과물은 탄소와 수소와 산소라는 사실이다. 단지 이런 기본적인 원소들이 서로 다르게 조합되어 있을 뿐인데, 우리는 나무와 사람이 전혀 다른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와 애정 없이, 특정한 결과만을 얻어내기 위해 시도되는 분해와 분석의 과학은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이규보가 말한 생명사상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매우 풍요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갈증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명에 대한 깊은 반성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오로지 자연이란 실체만이 담아낼 수 있는 영역이며, 결국 철학적 사유가 혈관을 타고 흐를 때만 가능할 것이다.>
( 191-192쪽)

그 책을 다 읽은 결과, 단풍나무에 대하여 일반적인 내용만 기록되었을 뿐, 단풍나무가 변절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궁궐이나 사대부 집안에서 볼 수 없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또한 숲해설가 양성을 하는 다른 책들, 예컨대 <(사)숲해설가협회>에서 시행하는 숲해설전문가 과정의 강사인 숲해설가 박상인의 자료를 구해 읽어보았으나 역시 단풍나무와 관련하여 궁궐을 언급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그밖에 숲해설가 이숙희씨가 교육을 받았다는 ‘생명의 숲’ ‘환경대안협회’ ‘양재천 환경지킴이’ 등 기관을 찾아보았으나, 외부자인 나로서는 그들이 받은 교육 내용을 알아낼 수 없었다. <생명의 숲> (http://www.forest.or.k) 및 <양재천 환경지킴이>(www.ecowarder.or.kr)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살펴보았으나, 단풍나무를 궁궐과 연결지어 말하고 있는 부분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제 남은 가능성은 이숙희씨의 관련 기사중에서 <아차산에서 숲 해설가로 일하면서 그는 자연생태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씨는 아차산의 단풍나무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자신이 공부한 문화적 배경을 접목한다. “조선시대 궁궐의 정원에는 절대 단풍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해요. 단풍의 색깔이 변하는 것이 변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더군요.”> 라는 말로 미루어 그가 그런 기관에서 교육받으면서 단풍나무에 대하여 들은 것이 아니라, 혹시 다른 경로를 통하여 알게 된 것이라는 것.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다른 숲해설가들도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그 숲해설가들에게 무엇인가 교육을 통해 전해지는 무언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확실한 자료를 구할 수 없으니, 다만 추측할 뿐이다.

 

그런 교육기관에서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교재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으리라 짐작될 뿐, 따라서 단풍나무를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혐의는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못했으니, ‘숲해설가’ 추적은 헛수고만 한 셈이다. 그럼 대체 단풍나무를 그런 식으로 언급하고 있는 전달자는 누구란 말인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