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9

제 1장 ‘낯선 기억’과의 만남

2. '낯선 기억'의 정체를 찾아서 (3)

전주의 ‘환경연합’에서 실시하는 ‘초록강좌’를 듣게 되었는데, 그 날 강의는 박병권 교수의 <자연, 뒤집어보는 재미>였다. 강의를 듣기 전에 강사에 대한 예의상 교재를 읽어보기로 하고, 책을 집어 들어 해당 부분을 펴 읽었다. 그날 강의 제목이 <자연, 뒤집어보는 재미>였기에 당연히 그 내용이 재미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읽었는데 이런 글이 눈에 뜨였다.

<<자료 14 >>
"한가지 재미난 것은 이런 아름다움을 지닌 단풍현상의 대명사인 ‘단풍나무’가 궁궐(宮闕)을 포함한 이름 꽤나 알려진 고 건축물 주변에서는 오랜 수명을 가진 개체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재미있게도 <궁궐의 우리나무>라는 책에도 단풍나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계셨던 많은 분들은 이제야 ‘단풍 나무 부재중’인 그 책을 뒤적일지도 모른다, 단풍나무가 없었던 지난 날의 정부 청사 궁궐, 알고 보면 그 속엔 뜻밖의 사연이 숨어 있다….(중략) … 결국 궁궐, 도읍, 성 등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의미를 가진 단풍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하략) "

글을 읽고 나니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글 속에 언급된, 밑 줄 그은 문장의 <궁궐의 우리나무>라는 책이다. 박상진 저, 눌와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이다. 그 책을 몇 년 전에 읽었다. 전북 환경연합에서 실시하는 초록강좌에 처음 출석하던 날, 벌써 몇 년전 일이다, 차윤정 박사의 <숲 이야기>에 매료되어 숲과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덕분에 구입한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을 읽었다 한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는지라, 과연 단풍나무가 <궁궐의 우리나무>에 들어있는지 어쩐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그 날 강의시간에는 그저 의아하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다음 날, 책 <궁궐의 우리나무>를 펼쳐 들었다. 단풍나무는 <궁궐의 우리나무>라는 책 안에 있었다. 부재중이 아니라 분명 재중이었다. <제 3장 창경궁의 우리 나무>라는 항목에 단풍나무가 등장하고 있었다. 221쪽에서 226쪽까지 무려 6쪽에 걸쳐 단풍나무를 설명하고 있는데, 창경궁에서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 수령도 제법 많이 되어 보이는 - 있는 단풍나무 사진도 곁들여 있어, 단풍나무가 실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궁궐의 우리나무>를 읽고 그 내용을 확인한 김에 박병권 교수의 책을 구해 읽었다. <자연, 뒤집어보는 재미>(박병권 저, 이너북, 2009년 3월 3일 발행)라는 책이다. 166쪽에서부터 173쪽까지에 걸쳐 단풍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내 눈길을 끈 대목은 다음과 같다.

<<자료 15 >>
"가을의 대명사는 누가 뭐라 해도 아름다운 색감을 자랑하는 단풍일 것이다. ….(중략)…한가지 재미난 것은 이런 아름다움을 지닌 단풍현상의 대명사인 ‘단풍나무’가 궁궐(宮闕)을 포함한 이름 꽤나 알려진 고 건축물 주변에서는 오랜 수명을 가진 개체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재미있게도 <궁궐의 우리나무>라는 책에도 단풍나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계셨던 많은 분들은 이제야 ‘단풍 나무 부재중’인 그 책을 뒤적일지도 모른다, 단풍나무가 없었던 지난 날의 정부 청사 궁궐, 알고 보면 그 속엔 뜻밖의 사연이 숨어 있다. 단풍나무는 봄이면 붉은 색 또는 적갈색을 띄는 종이 많고 잎은 여름이 가까워지면 옅은 녹색(연두색)으로 바뀌며, 가을이면 갖은 색감을 드러내 그 화려한 자태(姿態)를 뽐내기 바쁘다. 그리고 추위가 시작되면 잎의 색깔은 가장 먼저 우중충한 회갈색으로 변한다. 계절에 따른 색깔 변화를 가리켜
옛 선조들은 변절자(變節者)에 비유, ‘지조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낙인찍어 버렸고 결국 궁궐, 도읍, 성 등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의미를 가진 단풍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계절 따라 단풍나무 잎의 색깔이 이처럼 변하는 것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일 뿐, 사실 변절자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
(167~ 169쪽)

<궁궐의 우리나무>에 단풍나무가 부재중이라는 근거가 나의 눈길을 끈 것이다.
“계절에 따른 색깔 변화를 가리켜 옛 선조들은 변절자(變節者)에 비유, ‘지조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낙인찍어 버렸고” 그래서 “바람직하지 못한 의미를 가진 단풍나무를 베어버리”게 되어 결국 ‘궁궐, 도읍, 성 등에서’ 단풍나무는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궁궐’에서 사라졌으니 당연히 궁궐에 있는 우리나무를 수록한 책인 <궁궐의 우리나무>에는 부재중일 수 밖에 없다,고 책은 설명하고 있었다.

박병권 교수의 책을 읽게 됨으로써, <궁궐의 단풍나무 부재> 주장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학문적으로 주장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 졌다. 그러니 박교수야 말로 내가 지금껏 찾던 단풍나무 부재 주장의 ‘근거’를 제시할만한 사람이었다. 학자가 그런 주장을 허투루 할 리 없으니, 그가 바로 내가 찾던 그 사람이었다. 그래서 반가웠다, 무척.
  1. [2010/10/19] 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11 by seyoh (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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