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단풍나무 완상(玩賞) - 13

제 2 장 인문학에 단풍나무를 묻다.

1. 호랑이와 단풍나무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짜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진실처럼 곧이듣는다는 말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는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에 나오는 내용으로, 근거 없는 조언비어(造言蜚語)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고사이다.

춘추전국시대 위(魏: BC 770~221)나라 혜왕 때 일어난 일이다.
위나라의 태자(太子)가 조(趙: BC 475~221)나라에 인질로 가게 되자 혜왕은 태자의 수행원으로 충신(忠臣)인 방총(龐蔥)을 따라 가게 하였다.
(방총 :《韓非子》에는 방공(龐恭)이라고 되어 있고《戰國策》에는 방총이라고 되어 있음.)

방총은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으로 떠나기 전에 왕을 알현하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시장(市場)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이것을 믿겠습니까?”
“물론 믿지 않소.”
“조금 후에 또 한 사람이 뛰어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떠하시겠습니까?”
“의심을 할 수 있겠지.”
“그러면 뒤이어 세 번째 사람이 들어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떠하십니까?”
“과인은 그 말을 믿게 될 것이오.”

그러자 방총은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말하였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 [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신은 이제 한단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자, 여기에서 고사 읽기를 잠깐 멈추고, 생각을 해보자.
과연 그 후 방총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방총의 간곡한 당부를 들은 왕은 다른 사람들의 참소를 듣고 난 후, 방총의 말을 떠올렸을까, 그래서 그들의 참소를 삼인성호로 알아듣고, 물리쳤을까?

이야기는 이어진다. 결론은? 비극이다.

그런데 방총이 한단으로 떠나자마자 혜왕에게 참언을 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으나 혜왕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

위의 고사가 비단 옛날 이야기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다, 현재 21세기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삼인성호에 해당하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단풍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고사에서 호랑이가 단풍나무로 바뀌었을 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궁궐의 단풍나무 부재> 주장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논리적인 혼란과 의구심을 해소할 수가 없다.
나의 상식으로는 그런 이야기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서 알리바이(alibi)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알리바이! 말 그대로 부재 증명이다.
단풍나무가 한때나마 궁궐에서 부재했다는 증명을 그들은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그랬다 더라” 식의 발언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주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고 있을지?
세상이 어지럽다. 무엇이 진실인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명백한 ‘사실’을 제시하지 않은 채, 삼인성호식의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한 누군가 한번 “여기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쳐야 하는 게 아닌가?

더 이상 글을 읽기 전에 다음 글을 읽어보자..
이번에는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토끼의 이야기다.

늘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며 사는 토끼가 한 마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겁 많은 토끼가 나무 밑에 누워 낮잠을 자는데 그만 그 나무의 열매가 토끼위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이 토끼는 분명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금 달려가니까 다른 토끼들이 묻는다.
“야! 어딜 그리 급히 가니”
이 토끼가 대답한다. “야 큰일 났어. 지금 하늘이 무너지고 있어. 빨리 도망치자”
이 말을 들은 다른 토끼도 같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만난 사슴도, 여우도 같이 도망치기 시작하니까 숲 속은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정신 없이 도망치는 동물들 앞에 사자가 나타나서 묻는다.
“야! 너희들 왜 그러니”
“예! 사자님, 지금 하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빨리 도망치세요.”

이 말을 들은 사자는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을 누가 했는지 추적해 나갔고, 결국은 겁 많은 토끼가 불려 나왔다. 사자는 겁에 질려있는 토끼와 동물들을 데리고 토끼가 누워 자던 나무 밑으로 갔다. 그곳에는 그 나무열매 하나만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이어지는 단풍나무 이야기를 읽으면서 위의 두 이야기를 기억하자. 혹시 우리가 그렇게 토끼 뒤를 무작정 뒤따라 가는 동물들은 아닌지, 또는 호랑이를 보지도 못했으면서 덩달아 호랑이를 보았다고 말하는 전달자는 아닌지? 그렇게 토끼 뒤를 무작정 따라가는 잘못을 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그런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 살펴보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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