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나님의 LORDSHIP에 무릎을 꿇자.
  
3. 초대교회 사도들은 ‘영적 리더십’을 알고 있었을까?

영적 리더십 이론은 교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만능키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여 영적 리더십 이론은 지금 한창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면 교회 역사를 한번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자. 초대교회에도 영적 리더십 이론이 활용되었을까?

사도행전 6장에는 초대 교회에 문제가 발생되어 어려움을 겪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행 6:1).
그런 불평소리가 교회 안에서 높아져가자 사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사도들이 그 문제를 위하여 내놓은 해결방법은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교회가 둘로 쪼개질만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런 때야 말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성경은 그때 사도들이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위기를 벗어났다고 하지 않는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행 6: 2-4)

사도들은 말씀사역보다도 구제에 힘을 더 쓴 결과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고백한다. 사도들은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정확히 찾았고 해결책 또한 그 원인에서 구했다. 그래서 자기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일곱명의 집사를 세웠지만 그것 역시 리더를 세운 것은 아니다.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의 이론에 의하면 그들은 ’리더’가 아니라 단지 ‘관리자’에 불과할 뿐이다. 공궤하는 실무를 철저히 하기 위하여 세웠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공궤를 일삼다’ 라는 말에 주의해보자. 공궤라는 말은 접대하다, 구제하다라는 뜻인데, 교회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식량과 생활용품 등을 나누어 주는 등의 구제 사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공궤라는 말 다음에 나오는 ‘일삼다’라는 말이 참 재미 있다. ‘일 삼다’라는 말은 우리말 해석으로는 오로지 그 일만 한다는 뜻인데 원어의 뜻은 먼지가 일어날 만큼 분주히 움직이다', '열심히 일하다', '봉사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니 이 말로 미루어 보아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지 않고 다른 일, 공궤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열심히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가 결국은 두 개로 나눠지게끔 위기가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다른 방법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도와 말씀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초대교회는 일곱명의 집사를 뽑았다. 뽑아서 그들에게 안수를 하고 ‘리더’의 역할이 아니라 ‘관리자’의 사명을 맡겼다.

결론하여 초대교회에서는 전혀 영적 리더십이론이 거론되지 않았다. 거론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영적 리더십이란 말 자체를 몰랐다. 그러면서도 교회 내에 발생한 문제를 아름답게 해결하지 않았는가?

혹시 영적 리더십이 있어야만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까 보아 덧붙인다.
사도들이 영적 리더십 이론과는 담을 쌓고 있었음에도 초대 교회에서는 문제가 너끈히 해결되었고 오히려 큰 부흥을 경험했음을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으니 사도행전 6장 7절을 자세히 읽어 보시기를 삼가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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