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脚註) 없이 성경 읽기' (15) – 아브라함은 진정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까?

청세기 22:1- 18.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재로 바치려 했던 창세기 기사에 관한 두 번째 생각입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날이 밝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떠납니다.
이때 이삭을 데리고 가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브라함은 진정으로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그저 적당히 하나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하여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도록 했을까요?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마음의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 말씀에 가타부타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들을 때에도 그 명령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그럼 모리아 산으로 가는 도중의 이틀 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삭에 대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겠지요. 또한 이삭을 통해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아들이 하나님께서 바닷가의 모래보다도, 하늘의 별보다고 더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한 그러한 아들인데 …'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고, 아들을 생각하고 길을 갔을 것입니다. 그 가는 도중에 이삭과 이야기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죽이려는 아들을 어떻게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7절로부터 8절까지의 대화가 아마 그 길에서 서로 나눴던 유일한 대화가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그런데 지금까지 수십번 이 본문을 읽기도 하고, 설교를 듣기도 했는데
22장 8절의 말씀,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한 말인 ‘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이 - 너 말고 다른 - 번제물을 따로 예비하셨을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 보아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이삭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한쪽 구석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본문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아브라함의 마음의 흐름을 어떻게 그리고 있었는가 하면
1) 하나님을 믿는다.
2)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하여 내 자손을 번성케 하시라고 한 약속을 믿는다.
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삭을 바치라 하셨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그냥 살려주실 것이다, 라고 아브라함의 생각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11:17-19을 읽으면서 저의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을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히브리서의 말씀을 토대로 아브라함의 마음을 분석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을 믿는다.
2)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내 자손을 번성케 하리라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
3) 그래서 나는 내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라고 했으니.

맨 처음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결과 - 이삭을 통해서 자손을 번성케하겠다- 는 같을지라도 마음의 흐름은 천지차이만큼이나 다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놀랍게도 진짜 이삭을 죽이려고, 죽여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아브라함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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