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33)
- 예수님은 비전을 가지고나 계셨던가?

비전, 비전 하는데 예수님은 비전을 가지고 계셨던가요? 정말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빌 하이벨스의 견해를 들어보기로 합시다.

<몇 년후 정식으로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명백한 비전을 갖고 계셨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택하셔서 그들을 제자로 훈련하는 전략적인 3개년 계획을 세우셨다. 또한 복음 전도의 중심을 밖으로 확대하는 탁월한 복음 전도전략을 갖고 계셨다. 처음엔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그리고는 사마리아로, 지구의 가장 먼 곳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특정한 과업을 주셨다. 제자들이 과업을 잘 수행하면 그들을 칭찬하셨고 상을 주셨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면 예수님은 그 문제에 대면하셨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 주신 후 다시 그들을 보내셨다. 그러면 제자들은 더 잘 해냈다.> (리더십의 용기, 74)

빌 하이벨스는 자기의 경험과 목회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다가 예수님의 삶을 해석하는 표준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빌 하이벨스가 묘사해 놓은 예수님의 행적이 그가 교회에서 목회하는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밑의 리더들을 닦달하는 버릇을 그대로 예수님에게 투영하여,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같은 리더십 주창자인 헨리 블랙커비는 예수님의 비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삶은 너무 심오한데다, 인간의 통상적인 경험을 훨씬 뛰어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이 오늘 우리가 중시하는 리더십 이론에 따라 움직이셨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   (40)

예수님의 삶을 우리 인간의 경험으로, 우리 인간의 잣대로 재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블랙커비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빌 하이벨스가 범하고 있는 잘못을 옆에서 지켜본 듯이, 바로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블랙커비의 그 다음 말을 들어봅시다.
<예수님은 계획을 세우거나 비전을 내 걸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다. ….간혹 리더십 전문가들은 마치 예수님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며 이렇게 혼자 말하는 것처럼 그분을 그리고 있다. “어떻게 추종세력을 모아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할 것인가? 기성 종교인들을 설득해야 할까? 군중들에게 설교해야 할까? 거창한 기적들을 연달아 행하여야 할까? 아니다. 열두명의 인생에 나 자신을 투자하자. 내가 떠난 뒤에 내 대신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을 철저히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다른 리더들에게도 또 투자하면 그 수가 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내 나라가 전 세계로 확장되게 하자.”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너무 오해한 것이다.> (40)

과연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두 사람의 말을 비교해보면 예수님에 대해 엄청난 편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한 세대를 풍미하는 리더십 주창자 두 분이 같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그토록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그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다르게 만들었을까 궁금해 집니다.

블랙커비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의 말에 덧붙여 한번 더 강조를 합니다.
< 예수님이 열두명의 제자를 훈련시키는데 주력하였음을 들어 이 리더십 모델이야말로 모든 리더가 따라야 할 유형이라고 결론짓는다면 오산이다.>(40 )

그렇게 예수님의 행적을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그저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서 끝나는게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각각 다르게 보여주게 되고 결국은 우리의 반응을 다르게 만들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이 비전의 사람이요, 제자들을 훈련시킬 전략적인 3개년 계획을 세우셨다고 이해하는 빌 하이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교회의 리더들이 훌륭한 교회를 세우는데 최고의 노력을 쏟을 것을 기대하고 계시리라 나는 확신한다. > (74)
그런 확신에 의지해서 그는 자기의 목적을 ‘최고의 지도력 훈련’을 하는데 두게 됩니다.  

그러나 블랙커비는 이와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우리가 따라야 할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예수님이 열 두명의 제자를 훈련시키는데 주력하셨음을 들어 이 리더십 모델이 이야 말로 모든 리더가 따라야 할 유형이라고 결론짓는다면 오산이다. …..예수님의 리더십 핵심은 아버지와 관계였다.> (40)

한 사람은 리더가 되라고 하면서 교인들을 리더 훈련장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반하여 다른 사람은 교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몰고 갑니다. 이게 그들의 차이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그 후의 우리들이 취해야 믿음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결국 빌 하이벨스와 블랙커비가 인식한 예수님은 전혀 다릅니다. 같은 성경을 읽었고, 성경에 기록된 동일한 예수님의 행적을 읽었으면서도 그들이 믿고 따라가는 예수님은 전혀 다른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리더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결국은 그들의 사역 형태가 달라집니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마저 ‘다른’ 예수를 믿게 되고, 다른 믿음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확인한 것은 그들 –리더십 주창자들 – 사이에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냥 영적 리더십, 하면 다 같은 줄 아는데 실상은 서로간에 큰 편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편차를 보이는 여러 견해 중에서 한꺼번에 두 가지를 취할 수 없으니 불가피하게도 우리는 두 가지 중 한가지를 취해야 합니다.  

리더십 관련 책을 읽고 나서 ‘그저 그런 것이 있는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바에야 왜 비싼 돈을 들여가며 책을 사 읽습니까? 분명 어느 한쪽을 택하여 실행으로 옮겨야만 책을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둘 다 옳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분명 둘 중 하나만을 택하여야 합니다.

참고로, 그런 결단을 이미 내린 분의 견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삼는 사역을 묵상하라. 예수님은 제자 삼는 사역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하셨다.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제자들을 모집하셨다. 제자들과 동거하셨다.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하셨다. 모범으로,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전수해야 할 진리와 그 진리 전수를 위해 터득해야 할 기술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목표는 뚜렷했고, 한번도 그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목표지향적인 삶을 사신 것이다. > (강준민, 존재와 비전혁명, 96-97)  

빌 하이벨스의 견해를 충실히 따라가는 분인데, 블랙커비의 견해에 의하면 그는 완벽한 ‘오산’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어떻습니까? 강목사가 취한 견해가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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