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가 막힘없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제가 객지에서 오래 지나다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낯선 것도 여럿 있지만, 정겨운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 말이 사투리지만 무척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런 말 중에 가장 먼저 제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거시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상, 거시기라는 말은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어입니다.
“‘거시기’는 말은,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군소리’라는 뜻의 표준어입니다.
거시기란 말의 또 다른 쓰임새가 있는데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알고 있는 그 무엇을 말할 때, 그러나 얼른 생각이 나지 않지만 둘 사이에 확실히 알고 있는 그 무엇을 가리킬 때에 쓰입니다.
그러니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끼리는 이 ‘거시기’라는 말이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마음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확인해 보려면,  ‘거시기'란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할아버지와 손녀딸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전형적인 전라도 분이셔서 ‘거시기’라는 말을 자주 쓰시는데 언젠가 한번은 손녀에게 야, 아무개야 거시기 어디 있냐, ‘거시기’ 좀 찾아와라, 라고 말씀하시니
그 손녀딸이 얼른 가서 텔레비젼 리모콘을 가져다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안에 다른 물건들도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찾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손녀 딸은 알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그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거시시라는 말이 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 소통을 더 원활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기시’라는 말이 참 재미있게 쓰입니다.

자, 그럼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얼마나 이해하셨는지 한번 알아봅시다.
지금 제가 ‘거시기’라는 말을 두번 사용할 터이니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한번 말씀해보시기 바랍니다.
각각 한 글자로 된 낱말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불을 끄며 말을 합니다. “자, 석봉아 너는 거시기를 쓰거라, 나는 거시기를 썰 테니”
자, 여기서 한석봉이 써야 하는 거시기는 무엇입니까? 또 한석봉 어머니가 썰어야 한다는 거시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대답이 무엇인지 다 아시지요?  ‘글’과 ‘떡’입니다.  
이렇게 ‘거시기’라는 말을 활용해 보니, 저와 여러분은 한석봉의 어머니 일화를 같이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해의 정도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거기시’라는 말은 재미있게 쓰이고 때에 따라서는 유용하게도 쓰입니다.

자, 그렇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언어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뵈올 때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야, 너 거시기 할 때, 나 참 기뻤다”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여러분,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그런 때에 우리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가 못 알아 듣겠는데요”라고 말하면 안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얼른 우리가 그 말 뜻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때 거시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런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쿵하면 울타리에서 호박이 떨어지는 소리요, 척하면 삼천리라고 우리가 그 정도 센스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못 알아듣고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여쭤만?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거시기’가 자유롭게 사용되어, 소통되는 관계가 되고
더하여 우리들 인간 사이에서도 ‘거시기’가 막힘 없이 통하는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아니, 그렇게 요원한 것 말고 우선은 이곳에서라도
‘거시기’가 막힘 없이 통하는 다비아, 그런 곳이 되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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