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00
‘거시기’가 막힘없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제가 객지에서 오래 지나다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낯선 것도 여럿 있지만, 정겨운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 말이 사투리지만 무척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런 말 중에 가장 먼저 제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거시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상, 거시기라는 말은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어입니다.
“‘거시기’는 말은,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군소리’라는 뜻의 표준어입니다.
거시기란 말의 또 다른 쓰임새가 있는데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알고 있는 그 무엇을 말할 때, 그러나 얼른 생각이 나지 않지만 둘 사이에 확실히 알고 있는 그 무엇을 가리킬 때에 쓰입니다.
그러니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끼리는 이 ‘거시기’라는 말이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마음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확인해 보려면, ‘거시기'란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할아버지와 손녀딸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전형적인 전라도 분이셔서 ‘거시기’라는 말을 자주 쓰시는데 언젠가 한번은 손녀에게 야, 아무개야 거시기 어디 있냐, ‘거시기’ 좀 찾아와라, 라고 말씀하시니
그 손녀딸이 얼른 가서 텔레비젼 리모콘을 가져다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안에 다른 물건들도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찾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손녀 딸은 알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그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거시시라는 말이 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 소통을 더 원활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기시’라는 말이 참 재미있게 쓰입니다.
자, 그럼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얼마나 이해하셨는지 한번 알아봅시다.
지금 제가 ‘거시기’라는 말을 두번 사용할 터이니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한번 말씀해보시기 바랍니다.
각각 한 글자로 된 낱말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불을 끄며 말을 합니다. “자, 석봉아 너는 거시기를 쓰거라, 나는 거시기를 썰 테니”
자, 여기서 한석봉이 써야 하는 거시기는 무엇입니까? 또 한석봉 어머니가 썰어야 한다는 거시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대답이 무엇인지 다 아시지요? ‘글’과 ‘떡’입니다.
이렇게 ‘거시기’라는 말을 활용해 보니, 저와 여러분은 한석봉의 어머니 일화를 같이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해의 정도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거기시’라는 말은 재미있게 쓰이고 때에 따라서는 유용하게도 쓰입니다.
자, 그렇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언어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뵈올 때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야, 너 거시기 할 때, 나 참 기뻤다”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여러분,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그런 때에 우리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가 못 알아 듣겠는데요”라고 말하면 안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얼른 우리가 그 말 뜻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때 거시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런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쿵하면 울타리에서 호박이 떨어지는 소리요, 척하면 삼천리라고 우리가 그 정도 센스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못 알아듣고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여쭤만?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거시기’가 자유롭게 사용되어, 소통되는 관계가 되고
더하여 우리들 인간 사이에서도 ‘거시기’가 막힘 없이 통하는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아니, 그렇게 요원한 것 말고 우선은 이곳에서라도
‘거시기’가 막힘 없이 통하는 다비아, 그런 곳이 되기를 꿈꿔봅니다.
제가 객지에서 오래 지나다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낯선 것도 여럿 있지만, 정겨운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 말이 사투리지만 무척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런 말 중에 가장 먼저 제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거시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상, 거시기라는 말은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어입니다.
“‘거시기’는 말은,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군소리’라는 뜻의 표준어입니다.
거시기란 말의 또 다른 쓰임새가 있는데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알고 있는 그 무엇을 말할 때, 그러나 얼른 생각이 나지 않지만 둘 사이에 확실히 알고 있는 그 무엇을 가리킬 때에 쓰입니다.
그러니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끼리는 이 ‘거시기’라는 말이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마음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확인해 보려면, ‘거시기'란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할아버지와 손녀딸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전형적인 전라도 분이셔서 ‘거시기’라는 말을 자주 쓰시는데 언젠가 한번은 손녀에게 야, 아무개야 거시기 어디 있냐, ‘거시기’ 좀 찾아와라, 라고 말씀하시니
그 손녀딸이 얼른 가서 텔레비젼 리모콘을 가져다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안에 다른 물건들도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찾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손녀 딸은 알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그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에 거시시라는 말이 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 소통을 더 원활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기시’라는 말이 참 재미있게 쓰입니다.
자, 그럼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얼마나 이해하셨는지 한번 알아봅시다.
지금 제가 ‘거시기’라는 말을 두번 사용할 터이니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한번 말씀해보시기 바랍니다.
각각 한 글자로 된 낱말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불을 끄며 말을 합니다. “자, 석봉아 너는 거시기를 쓰거라, 나는 거시기를 썰 테니”
자, 여기서 한석봉이 써야 하는 거시기는 무엇입니까? 또 한석봉 어머니가 썰어야 한다는 거시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대답이 무엇인지 다 아시지요? ‘글’과 ‘떡’입니다.
이렇게 ‘거시기’라는 말을 활용해 보니, 저와 여러분은 한석봉의 어머니 일화를 같이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해의 정도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거기시’라는 말은 재미있게 쓰이고 때에 따라서는 유용하게도 쓰입니다.
자, 그렇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언어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뵈올 때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야, 너 거시기 할 때, 나 참 기뻤다”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여러분,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그런 때에 우리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가 못 알아 듣겠는데요”라고 말하면 안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얼른 우리가 그 말 뜻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때 거시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런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쿵하면 울타리에서 호박이 떨어지는 소리요, 척하면 삼천리라고 우리가 그 정도 센스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못 알아듣고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여쭤만?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거시기’가 자유롭게 사용되어, 소통되는 관계가 되고
더하여 우리들 인간 사이에서도 ‘거시기’가 막힘 없이 통하는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아니, 그렇게 요원한 것 말고 우선은 이곳에서라도
‘거시기’가 막힘 없이 통하는 다비아, 그런 곳이 되기를 꿈꿔봅니다.
2007.03.10 10:29:41
예, 정말 그러네요. 분절적으로 접근하는 ...여기에서도 분절이 分節이지요?
빠른 답변은 언어학적으로 무어라 표현합니까?
정말 빠르게 제 글 읽어주시고 또 빠르게 답변해주시니...저로서는 고마울 뿐입니다.
빠른 답변은 언어학적으로 무어라 표현합니까?
정말 빠르게 제 글 읽어주시고 또 빠르게 답변해주시니...저로서는 고마울 뿐입니다.
2007.03.10 10:44:13
빠른 답변은 그냥 빠른 거지요^^;
分節, 맞습니다.
비록 열심히 공부했던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알아준다는 신학교를 나왔는데,
제가 언급했던 맥락의 연장선상에 놓이지 않고,
그저 학문적 접근, 시대사조의 유행에 따른 접근으로
신학을 하는게 아니냐는 찜찜함이, 졸업하고 나서 느껴지더군요.
사실, 학교 다닐 때에는, 뭔가 허전하고 이상했는데,
그랬다는 게 이제사 구체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생태신학, 토착화론, 바르트불트만, 과정신학,
알찬 내용들 많이 가르치지요. 교수님들도 실력과 안목이 있으시고.
그런데, Canon인 성서 텍스트, 그리고,
이천년 교회사의 통시적, 그리고 교회라는 공시적 맥락과의 상관관계 의식이
거의 없지 않느냐, 정말 분절적이다, 그렇게 느꼈습니다.
학구적이고 고민이 있는 학생들은 그런 강의를 선호하고,
목회 현장에 기민하게 적응하거나, 보수복음적 신앙을 가진 학생들은,
목회상담학, 선교학, 설교학, 그런 과목에 몰리는데,
이러한 실천신학 과목들 역시 똑같은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다른 교단, 다른 신학교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애초 출발인 신학교에서부터 이렇게 맥락과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으니,
현장에 나가서 제대로 길을 잡고 운전하기는 대단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의식있는 신학자가 계시다면,
이같은 한국 개신교 신학 교육의 문제점 좀 분석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신학교에서부터 이러한데,
가시적, 비가시적 압력과 유혹들이 편만한 현장에서 길 잘못 접어드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요.
도리어, 신학교에서부터, 그러한 길 잘못 잡는 걸 막기 위해서
신학과 신앙의 확실한 준거를 확립하도록 이끌어줘야 되는데 말입니다.
分節, 맞습니다.
비록 열심히 공부했던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알아준다는 신학교를 나왔는데,
제가 언급했던 맥락의 연장선상에 놓이지 않고,
그저 학문적 접근, 시대사조의 유행에 따른 접근으로
신학을 하는게 아니냐는 찜찜함이, 졸업하고 나서 느껴지더군요.
사실, 학교 다닐 때에는, 뭔가 허전하고 이상했는데,
그랬다는 게 이제사 구체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생태신학, 토착화론, 바르트불트만, 과정신학,
알찬 내용들 많이 가르치지요. 교수님들도 실력과 안목이 있으시고.
그런데, Canon인 성서 텍스트, 그리고,
이천년 교회사의 통시적, 그리고 교회라는 공시적 맥락과의 상관관계 의식이
거의 없지 않느냐, 정말 분절적이다, 그렇게 느꼈습니다.
학구적이고 고민이 있는 학생들은 그런 강의를 선호하고,
목회 현장에 기민하게 적응하거나, 보수복음적 신앙을 가진 학생들은,
목회상담학, 선교학, 설교학, 그런 과목에 몰리는데,
이러한 실천신학 과목들 역시 똑같은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다른 교단, 다른 신학교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애초 출발인 신학교에서부터 이렇게 맥락과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으니,
현장에 나가서 제대로 길을 잡고 운전하기는 대단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의식있는 신학자가 계시다면,
이같은 한국 개신교 신학 교육의 문제점 좀 분석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신학교에서부터 이러한데,
가시적, 비가시적 압력과 유혹들이 편만한 현장에서 길 잘못 접어드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요.
도리어, 신학교에서부터, 그러한 길 잘못 잡는 걸 막기 위해서
신학과 신앙의 확실한 준거를 확립하도록 이끌어줘야 되는데 말입니다.
2007.03.10 11:10:14
학교 다닐 때에는, 뭔가 허전하고 이상했는데, 그랬다는 게 이제사 구체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실천신학 과목들 역시 똑같은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 말씀에 저도 백퍼센트 동감입니다. 그래도 님과 같은 분들이 눈을 뜨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언어학도 기본은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것 말고 기본적인 개론서 정도 소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부탁드립니다.
실천신학 과목들 역시 똑같은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 말씀에 저도 백퍼센트 동감입니다. 그래도 님과 같은 분들이 눈을 뜨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언어학도 기본은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것 말고 기본적인 개론서 정도 소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부탁드립니다.
2007.03.10 11:23:08
이거 꼭 채팅 수준의 실시간 댓글입니다^^
가장 권위있고, 많이들 보는 책이, 김진우, [언어](탑출판사) 입니다.
웬만한 국어국문학과, 언어학과, 영어영문학과는 이 책을 많이들 볼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저도 언어학은 손 놓고 있다가,
신학교 졸업하고 나서 국어교사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학교문법론(표준문법)을 공부하게 되어,
다시금 기억이 새롭습니다.
언어학은 사실 인문학의 기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학 말고, 국어학 개론 교과서들을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통사론(문법론), 의미론에 심도있게 들어가면 워낙에 학설들이 분분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어서요,
일단, 가장 쉽고 흔한 책이라면,
고등학교 문법 교과서의 해설서를 참조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학생용이나 교사용은 그야말로 단편적인 설명 뿐이라 좀 그렇구요,
고영근, 남기심 교수가 쓴 [표준 국어문법론]이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의 붙박이 교재 격이구요,
제가 임용고사 국어 과목을 사사하는 이영택 선생님이 쓰신,
학교문법에 기초하여 이 책을 비롯한 권위있는 저술들을 종합, 정리한,
[학교문법의 이해](형설출판사)도 좋습니다. 이 분은 학문하는 방법과 성실성이 탄탄한 분입니다.
임용고사 준비용 교과서이긴 합니다만, 일반인이 읽기에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인문학 및 사유의 기초로서의 언어학을 생각하고 접근하신다면,
국어학(국어학, 영어학 등은 개별언어학)보다는
언어학(일반언어학) 쪽이 좋을 것 같구요,
촘스키, 구조주의, 기호학 등의 철학서, 비평서와 함께 보신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가장 권위있고, 많이들 보는 책이, 김진우, [언어](탑출판사) 입니다.
웬만한 국어국문학과, 언어학과, 영어영문학과는 이 책을 많이들 볼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저도 언어학은 손 놓고 있다가,
신학교 졸업하고 나서 국어교사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학교문법론(표준문법)을 공부하게 되어,
다시금 기억이 새롭습니다.
언어학은 사실 인문학의 기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학 말고, 국어학 개론 교과서들을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통사론(문법론), 의미론에 심도있게 들어가면 워낙에 학설들이 분분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어서요,
일단, 가장 쉽고 흔한 책이라면,
고등학교 문법 교과서의 해설서를 참조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학생용이나 교사용은 그야말로 단편적인 설명 뿐이라 좀 그렇구요,
고영근, 남기심 교수가 쓴 [표준 국어문법론]이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의 붙박이 교재 격이구요,
제가 임용고사 국어 과목을 사사하는 이영택 선생님이 쓰신,
학교문법에 기초하여 이 책을 비롯한 권위있는 저술들을 종합, 정리한,
[학교문법의 이해](형설출판사)도 좋습니다. 이 분은 학문하는 방법과 성실성이 탄탄한 분입니다.
임용고사 준비용 교과서이긴 합니다만, 일반인이 읽기에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인문학 및 사유의 기초로서의 언어학을 생각하고 접근하신다면,
국어학(국어학, 영어학 등은 개별언어학)보다는
언어학(일반언어학) 쪽이 좋을 것 같구요,
촘스키, 구조주의, 기호학 등의 철학서, 비평서와 함께 보신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2007.03.10 11:26:21
저는 아무래도 인문학 및 사유의 기초로서의 언어학을 생각하고 있으니 국어학(국어학, 영어학 등은 개별언어학)보다는 언어학(일반언어학)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김진우, [언어](탑출판사) 가 이영택 , [학교문법의 이해](형설출판사) 보다는 낫겠지요?
아니면 다른 책을?
거기에다가 말씀하신 기호학등 책, 촘스키의 책 중 몇권- 가급적이면 적은 수로 - 을 정선 추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정말 한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김진우, [언어](탑출판사) 가 이영택 , [학교문법의 이해](형설출판사) 보다는 낫겠지요?
아니면 다른 책을?
거기에다가 말씀하신 기호학등 책, 촘스키의 책 중 몇권- 가급적이면 적은 수로 - 을 정선 추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정말 한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2007.03.10 11:40:55
아마 우리 회원님들 중에도 국어국문학, 영어영문학 전공한 분이 많으실텐데^^;
제가 망신의 독박을 쓰는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김진우 박사의 책은 전통있는 명저고 구하기도 쉬우니 그걸 보시면 됩니다.
변형생성 문법을 주창한 촘스키의 가장 기본적인 책이라면, [언어에 대한 지식]
(민음사 대우학술총서)인데요,
이 자체가 대단히 전문적인 책이고, 이걸 잘 이해하려면,
구조주의의 시발점인,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민음사 대우학술총서)를
또 보실 필요가 있는데,
이것 역시 대단히 어려운 책입니다.
촘스키의 언어학적 사유는, 그가 출간한 시사 문제에 관한 많은 책들에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주의 역시, 반드시 언어학 쪽이 아니더라도, 철학, 미학, 기호학 쪽의 많은 책들,
비평서들을 보셔도 아실 수 있다고 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시즘, 포스트구조주의의 철학자들 역시,
구조의 해체라고 말은 합니다만, 동시에 구조주의의 후예잖습니까?
데리다, 푸코 등의 책들은 우리들에게도 이미 친숙하구요.
변형생성 문법은 국어국문학과보다 영어영문학과 쪽이 더 잘 아실 것 같구요,
국어학, 언어학은 언어 텍스트 자체의 통사적 구조와 의미론적 문제에 천착하므로,
도리어 사유라는,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시려면,
언어학 서적들보다는, 말씀드린 저런 류의 책들을 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많이 접하셨을 테구요.
저도 학교 전공 중에 공부한 건 아닙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곤,
언어학개론과 국어학개론, 국어통사론(문법론), 국어의미론 뿐이거든요.
단지, 문학비평과 철학 쪽을 좋아해서 그런 강의를 들으면서,
그러다가 그 관심의 지향이 신학으로 옮아가면서, 이것저것 뒤섞인 수준일 뿐이랍니다^^;
제가 망신의 독박을 쓰는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김진우 박사의 책은 전통있는 명저고 구하기도 쉬우니 그걸 보시면 됩니다.
변형생성 문법을 주창한 촘스키의 가장 기본적인 책이라면, [언어에 대한 지식]
(민음사 대우학술총서)인데요,
이 자체가 대단히 전문적인 책이고, 이걸 잘 이해하려면,
구조주의의 시발점인,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민음사 대우학술총서)를
또 보실 필요가 있는데,
이것 역시 대단히 어려운 책입니다.
촘스키의 언어학적 사유는, 그가 출간한 시사 문제에 관한 많은 책들에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주의 역시, 반드시 언어학 쪽이 아니더라도, 철학, 미학, 기호학 쪽의 많은 책들,
비평서들을 보셔도 아실 수 있다고 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시즘, 포스트구조주의의 철학자들 역시,
구조의 해체라고 말은 합니다만, 동시에 구조주의의 후예잖습니까?
데리다, 푸코 등의 책들은 우리들에게도 이미 친숙하구요.
변형생성 문법은 국어국문학과보다 영어영문학과 쪽이 더 잘 아실 것 같구요,
국어학, 언어학은 언어 텍스트 자체의 통사적 구조와 의미론적 문제에 천착하므로,
도리어 사유라는,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시려면,
언어학 서적들보다는, 말씀드린 저런 류의 책들을 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많이 접하셨을 테구요.
저도 학교 전공 중에 공부한 건 아닙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곤,
언어학개론과 국어학개론, 국어통사론(문법론), 국어의미론 뿐이거든요.
단지, 문학비평과 철학 쪽을 좋아해서 그런 강의를 들으면서,
그러다가 그 관심의 지향이 신학으로 옮아가면서, 이것저것 뒤섞인 수준일 뿐이랍니다^^;
2007.03.10 11:59:24
일반 언어학 강의를 쓴 소쉬르에 대하여는 그가 21살에 <인도유럽어의 원시 모음 체계에 관한 논문>을 써서 유명한데 그를 가르친 교수,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유명한 언어학자 차른케 조차도 자기 제자인 소쉬르가 그 논문을 쓴 소쉬르인줄 몰랐다는 일화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그이름을 접하는군요.
하여지간, 공부할 것은 많습니다.
일단 김진우 박사의 책, '언어'를 텍스트로 하여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찾아 보니, 나온지 무려 20년이 되었다는군요.....그래도 아직 그토록 명성이 있는 책이라니, 기대가 됩니다.
無名齋 님, 오늘 저에게 언어학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 거시기가 맺어준 인연인데, 거시기에도 감사를 해야겠군요.
하여지간, 공부할 것은 많습니다.
일단 김진우 박사의 책, '언어'를 텍스트로 하여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찾아 보니, 나온지 무려 20년이 되었다는군요.....그래도 아직 그토록 명성이 있는 책이라니, 기대가 됩니다.
無名齋 님, 오늘 저에게 언어학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 거시기가 맺어준 인연인데, 거시기에도 감사를 해야겠군요.
2007.03.10 12:52:58
오 목사님! 글 정말 가슴이 콱 막혀 오는군요.
'거시기'라는 말에 그렇게 깊은 뜻이?
'거시기'가 표준말인줄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쓴 겨우는 잘 못 쓴 것이군요.
저는 그저 영화에서 본 것 흉내내 본 것인데.
앞으로 기도할 때 방언을 할 것이 아니라
'주여~!' 대신에 '거시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영혼만이 알 수있는 깊은 '거시기'를 할 수있는
기도를 해야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웃음 나오면 어떻게 하죠?
'거시기'라는 말에 그렇게 깊은 뜻이?
'거시기'가 표준말인줄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쓴 겨우는 잘 못 쓴 것이군요.
저는 그저 영화에서 본 것 흉내내 본 것인데.
앞으로 기도할 때 방언을 할 것이 아니라
'주여~!' 대신에 '거시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영혼만이 알 수있는 깊은 '거시기'를 할 수있는
기도를 해야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웃음 나오면 어떻게 하죠?
2007.03.10 13:11:01
오목사님께서 간만에 거시기한 글을 쓰셨네요.^^
정겹게 읽고, 생각하고, 깨닫고...
댓글들을 통해서는 유익한 정보도 챙기게 되는군요.
이래서 다비아가 거시기한 매력이 있는게 아닐까요?
저는 일상 생활속에선 거의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글을 쓸 때는 정말 요긴 하더라구요^^*
언젠가 '황산벌'이란 영화를 보면서
뒤집어지게 깔깔대며 배운 말이지요.
요즘은 거시기로부터 파생된 사투리
'머시기'도 가끔씩 쓴답니당~^^
정겹게 읽고, 생각하고, 깨닫고...
댓글들을 통해서는 유익한 정보도 챙기게 되는군요.
이래서 다비아가 거시기한 매력이 있는게 아닐까요?
저는 일상 생활속에선 거의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글을 쓸 때는 정말 요긴 하더라구요^^*
언젠가 '황산벌'이란 영화를 보면서
뒤집어지게 깔깔대며 배운 말이지요.
요즘은 거시기로부터 파생된 사투리
'머시기'도 가끔씩 쓴답니당~^^
즉, '거시기'라는 단어를 서로 잘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양자간의 의사 소통이 잘 되고 있으며,
그 의사 소통 저변의 심리, 그리고 상황 파악이 받쳐준다는 뜻일 겁니다.
세상 만사가 그러하겠습니다만,
(이 '거시기'라는 단어에서, 바로 그 보편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역시,
계시(성서)라는 텍스트와, 전통과 그리스도교사의 통시적 맥락,
그리고 교회라는 공시적 맥락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현상인데,
이 맥락을 간과하고 분절적으로 접근하는 오류들을 너무나 많이 범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목사님께서 문제의 화두로 잡고 파헤치시는 소위 '리더십'이라는 것,
목사님의 분석을 읽으면서,
현대의 교회들이 그야말로 옥상옥을 쌓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맥락에서 벗어나니 갈 길을 잃고 비틀비틀 운전하고 있는 겁니다.
길에서 어긋나니 엉뚱한 길에 들어서고,
길이 엉뚱하다 보니, 어려운 방법을 찾고, 꼬이게 되는 건데,
길 잘못 들었으면 원점에서 새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길을 제대로 가는지, 잘못 들었는지,
어디가 원점인지도 깨닫지들 못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