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32)
- 리더의 성품과 능력, 해결책 안된다.

이상 두 회에 걸쳐 리더십 주창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따라 한 결과 만들어진 리더를 둘러 싸고 교회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살펴 보았다.

우선 교회 내에 리더로 인하여 갈등과 문제가 생기는 이유를 종합해 보자.    
첫 번째 원인은, 리더란 말에서 오는 계급적 이미지이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번째 문제 발생 원인은, 리더가 많다는 점이다.
세 번째 문제 발생 원인은, 문제 있는 리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럼 리더십 주창자들은 그러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리더로 인해 생긴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는가?

먼저, 리더란 말에서 오는 계급적 이미지에서 파생된 문제다. 그것을 푸는 방법을 양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청년사역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청년들의 생각 속에 리더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리더직분을 마치 무슨 계급처럼 생각한다.>(15)
그러나 양목사는 청년들을 이렇게 나무라며, 리더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부리더보다 리더가 높고 소그룹 리더보다 중그룹 리더가 높은 것은 아니다. 청년 리더는 리더로 섬기기 전에 리더란 누구인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15)

그래서 리더의 소명에 대해서, 리더란 무엇하는 존재인가를 열심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리더를 계급처럼 생각해 오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리더를 ‘중립적인 용어’로 인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모순적이게도 리더제도를 도입하면서 부리더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직책을 만들어 놓았으니 리더를 계급처럼 여기지 말라는 말이 우습게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 리더들간에 갈등이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둘째로, 리더적체 현상으로 인해서 리더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리더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이목사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 …구역리더 적체 현상이 오면 온누리 교회처럼 ‘훈련된 구역장과 부구역장’을 세우는 교회로 변화하게 된다.> ( 102)

<결론적으로 교회안의 갈등을 해소하려면 목양기능과 사역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그래야 두 기능의 평신도 리더십이 부딪히지 않고, 각자 소속된 사역의 장에서 교회를 열심히 섬기게 된다.> (69)

< 이제 ‘목양기능 리더십’과 ‘사역 기능 리더십’을 분리해야 교회 안의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는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일반 사회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한 ‘조직’ 안에 같은 기능을 가진 ‘집단’들이 공존한다면, 두 ‘집단’사이에 갈등이 발생될 뿐 아니라 추진 에너지가 분산되어 조직’조차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게 된다. > (70)

< 이러한 문제 성도가 만들어 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첫째, 다양한 사역팀을 조직하여 많은 직임을 만듦으로서 리더 적체 현상을 해소하고 둘째, 사역팀 리더 임기제를 적용하여 사역이 독점되지 않도록 방지하고………….…….하는 교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64)
    
이목사는 교회내에서 리더간에 생긴 갈등의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우선 ‘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리더간에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고안하는데 그 우선을 둔다. 새로 만들어진 리더가 같은 조직에 있으면 자연 기존에 있던 리더와 갈등이 생기므로, 그에게 부리더라는 직책을 맡기던가 혹은 다른 조직의 리더로 보내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문제점은 우선 직위에서 우러나오는 리더십을 지양한다는 그들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리더십은 직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리더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품성에서 저절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던 그들이 아닌가? 그런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직위를 만들어 주어 그 자리에 앉히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리더십은 이론 따로 실제 따로, 가 아닌가?

또 그 다음으로는, 그렇게 새로운 직위를 만들어 주어 리더가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끝없이 조직원이 늘어난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들 주장대로 팔로워가 없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없이 피라미드의 구조로 교회가 확장되어야만 비로서 이 방법은 사용 가능해진다. 어느 시점에 새로 유입되는 팔로워가 증가하지 않는다거나,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할 때에는 재난이 닥친다.

세번째, 문제 있는 리더로 인하여 발생하는 교회내의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다시 한번 문제있는 리더 때문에 교회내에서 벌어지는 기상 이변을 확인해 보자.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하여도 특히 권사급 리더가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후로 교회 안에서 비바람이 일기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54)
  
<담임목회자가 최고리더의 마음을 최우선적으로 잡지 않으면 가시밭길을 걷게 되거나, 서운한 마음을 가진 최고 리더가 교회를 떠나게 되어 교회재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발생될 수 있다. > (154-155)

<여러 명이 동시에 장로로 장립된 리더그룹이 있다면, 피택 투표시 득표순위마저도 반드시 지켜서 차례로 세워야 만일 그 서열을 어기게 되면 이후로 당회에서 폭풍우가 휘몰아치리라는 것을 미리 각오해야 한다. > (157)

그렇게 교회내에 기상이변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그런 리더들이 서운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해주어야 하며 리더들간에 서열을 잘 따져서 세워주어야 한다. 또한 무슨 일을 시작하려면, “첫걸음을 내딛기 전에 반드시 최고리더들과 사전 조율” 해야 한다. 리더들의 서열에 맞추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에는, “최고리더의 서운한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최고리더와  일대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119) 최고리더와 일대일로 식사를 하되 ‘그렇게 서운하셨어요’,라고 하면서 마음을 다독거려 주어야 한다.    

이게 리더들로 인하여 발생한 교회내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그들의 방법이다.

그런데 그들의 해결방법을 보면 이상한 점이 많이 있다.  
첫째로, 리더십이 모든 것이다, 라는 식의 맥스웰이 주장한 탁월하고 간단한 방법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미소를 띤 얼굴로 문제 리더를 보며 “아니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던가? 담임목회자가 웃음을 담뿍 머금은 얼굴로 말하면 문제있는 최고리더는, 지금까지 반대하던 자세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얼굴빛이 환해지면서 “그래요? 좋아요!”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맥스웰의 추종자들이 그렇게 쉽고도 간단한 방법을 몰라라 하고, 왜 그렇게 어렵고 먼 길을 택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번 째 이상한 점은, 리더들간에 갈등이 생긴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리더의 품성이나 실력의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문제가 생긴 것이 리더의 품성이나 실력이 아직도 부족하니까 생긴 것이라며, 그것을 강조한다거나, 리더되는 사람은 다시 한번 각오를 새롭게 하자거나 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조직을 바꾸고 조직 운영 시스템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존 맥스웰류의 뜬구름 잡는 방법으로서는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해결책을 제시하면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문제점들이 리더의 능력이나 성품을 운위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리더가 아무리 품성이 좋든, 실력이 좋든 그런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거꾸로 생각해 보자면, 애초에 리더의 품성이나 실력을 강조하여 ‘리더’를 만들어 놓은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과연 그러한 품성과 실력을 겸비해서 리더가 된들 무엇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리더가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쓰임받지 못하고, 남을 섬기는데 쓰이는 게 아니라, 자기의 우월감과 자기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하여 쓰인다면 리더가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교회내에 그러한 리더가 많으면 많을수록 문제들만 더 생기지 않겠는가?  

그러니 리더십 주창자들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리더도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람은 부패하고 죄악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의 ‘본성은 철저하게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인 한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리더십 주창자들이 훈련시켜서 리더를 만들어 놓아도, 인간이 ‘리더’가 되었다는 것 만으로는 그 품성이 본질적으로 변화되지 못한다. 겉으로는 변한 것처럼 보일 지 모르겠으나 어떤 외부적인 자극이 전해지면 숨겨져 있던 본성이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존재감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남들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대접해 주지 않을 때에는 사람의 본성은 여지없이 튀어나온다.

그러니 리더십 이론은 모두 다 부질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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