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刻舟)하며 성경 읽기' (1) – 하루가 천년같은 사흘길

(이 글은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공부하느라 언젠가 갈무리해 놓은 자료중의 하나입니다.  <'각주(脚註) 없이 성경 읽기' (5) – 이삭을 ‘언제(까지)’ 번제로 바쳐야 했나>에 대해 여러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셨길래 다시 여러가지 자료들을 꺼내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것도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참고할만한 각주(脚註)가 될지 아니면 구검(求劍) 한답시고 헛되게 각주(刻舟)해 놓은 것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글의 정확한 출처는 이진희 목사의 <유대인과 함께 읽는 창세기>, 231쪽입니다. 앞으로도 각주(脚註)없이 성경을 읽는 동안에 흥미로운 해석이 발견되면 같이 올려보고자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그가 있는 곳에서 바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일부러 모리아까지 사흘길을 걸어가서 바치라고 했을까? 이에 대해 랍비들은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만 시험이 아니라, 사흘길을 걸어가게 한 것도 하나님의 시험이었다고 믿는다.

모리아까지 사흘 길을 가는 동안 얼마나 그들이 괴로웠겠는가!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면서 그 길을 걸어갔겠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끝까지 순종하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가게 하신 것으로 보인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사흘 길을 가면서 받은 시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미드라쉬가 전해 내려온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때 사탄이 노인으로 변장을 하고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 그리고는 어디에 가는지를 물었다.

“기도하기 위해서 갑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기도하러 가는 사람이 나무와 칼은 왜 갖고 가는 거요?”
“혹시 며칠 묵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장막도 치고 음식도 해 먹어야 할 것 아니오?”
“이것 보시오.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할 때 옆에 있었소. 아들을 죽이려고 하다니, 당신 지금 정신 나간 것 아니오? 당신 지금 백살도 넘지 않았소? 그 아들 얻기 위해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잘 아오. 그런데 그에게 칼을 대려고 하는 거요?”

아브라함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소.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오.”
사탄이 물었다. “만일 하나님이 더 어려운 일을 요구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소?”
“내가 아무리 어려운 시험을 만나더라도, 그리고 하나님이 아무리 어려운 요구를 하시더라도 나는 기꺼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소.”
사탄은 안되겠다 싶어서 이삭에게 젊은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 나타났다.
“너 지금 어디를 가는 거니?”
“토라를 공부하러 가는 길입니다.”
“이 친구야! 참 불쌍하기도 하구나. 너는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야. 네 어머니가 알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니? 네 어머니가 너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금식하며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너의 아버지가 너를 지금 죽이려고 한단 말이다.”
이삭이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 뜻이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겁니다.”
사탄은 이삭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알고는 작전을 바꾸었다. 그는 그들이 모리아 산까지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이 가는 길에 깊은 강을 만들어 놓았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만일 제 아들이 빠져 죽게 되면, 어떻게 아들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저나 제 아들녀석이 물에 빠져 죽으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이행할 수가 없사오니 주여, 구원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해주셨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흘 길을 가면서 아브라함은 수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떠날 때 마음을 굳게 먹긴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점점 흔들렸을 것이다.

그는 얼마든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아마 하나님은 끝까지 아브라함이 순종하는지, 아니면 도중에 돌이키는지를 시험하시기 위해 사흘 길을 걸어가게 하신 것 같다.

위에 소개한 미드라쉬는 아브라함이 겪어야 했던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다.

유대인들의 역사야말로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만큼 고난을 받은 민족도 없다.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서 고난을 받을 때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특히 중세시대에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박해는 잘 알려져 있다. 위의 미드라쉬에 나오는 사탄은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비극의 역사 가운데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그들을 박해했던 세력들을 의미한다.
그들의 고난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리게 하고도 남을 수 있을 만큼 가혹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그들은 신앙을 져버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신실하였다. 사탄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끝까지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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