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刻舟)하며 성경 읽기' (2)  – 이삭 번제 사건은 인신제사를 금하도록 한 것인가?

‘인신제사’(人身祭祀)는 제사를 지낼 때 사람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풍습을 말합니다.  
인신제사는 미개한 종족들은 물론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중국과 인도, 로마와 그리스, 잉카를 비롯한 중남미의 여러 문화권, 한마디로 모든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도 행해졌던 관습이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성경은 이방신에게 바치는 ‘인신제사’가 행해 졌음을 시사하고 있고,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이방신 몰록에게 ‘인신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하나님이 인신제사를 금지하도록 한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로켓마을님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아브라함 관련해서 예전에 히스토리 채널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이 나서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은 계몽주의를 경험한 근대인이 아니라 고대인이기 때문에 아들을 신에게 바치는 일이 근대인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성경에도 자식을 신에게 바치는 인신 제사를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 근동에서 아들을 신에게 바치는 일이 자주 있었던 일이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아들을 바치는 것이 다른 개념의 일일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거기서 중요한 것은 고대인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쳤다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의도하신 일, '나는 아들을 바치는 것만큼의 헌신을 바라지만 인신제사라는 그릇된 헌신을 요구하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짜 신들과는 다른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는 참 신이다'라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셨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을 바치려는 사건을 통해서 고대인들이 생각해낼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었던 다른 '신 체험'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박종수 교수님(강남대 구약학)의 다음과 같은 글이 눈에 뜨이는군요.

<아브라함은 백 세에 아들을 낳고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여 이삭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니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모리아산에서 독자 이삭을 결박한 후에 칼을 들고 죽이려 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고 찬사를 보낸다거나 부러워해서는 결코 안된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 그토록 항의하던 아브라함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아들을 죽여야만 하는 아브라함의 처량한 모습만이 우리 눈에 아른거릴 뿐이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까?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성서기자는 왜 이런 끔직한 시험 과정을 독자에게 알리려 하고 있을까?

고대 사회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친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비록 인육 제사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통용될 때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으로부터 이러한 풍습을 전수 받은 것 같다. 사사 입다가 하나님께서 원하지도 않은 인신 제사를 서약하여 자기의 무남독녀를 제물로 바친 이야기라든지(삿 11장), 왕국 후반기까지 어린이를 불사르거나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종교적 풍습을 볼 때 인신 제사는 한 때 이스라엘 민중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왕하 17:31; 23:10).
아브라함이 인신 제사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가 가나안의 인신제사 풍습에 익숙했다는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성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이야기를 어떻게 전수 받았을까? 우리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삼국유사’(5권)에 나오는 ‘손순매아(孫順埋兒) 설화’는 손순이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을 죽이려고 한 이야기이다. 아이를 땅에 묻으려고 할 때 땅 속에서 석종(石鍾)이 발견되어 그 종 때문에 아이도 살고 온 가족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세계 도처에 널리 퍼져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지극한 정성과 믿음은 하늘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 방법은 오직 생명을 바치는 일 외에 없다는 사고방식은 고대인에게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귀한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에 항의 한번 못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순순히 따라 나서는 이삭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이삭은 자기를 태울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정도로 성장했지만, 백 세가 훨씬 넘은 아버지를 거역하지 않고 순순히 결박당한다. 하나님은 이삭 대신 숫양을 준비하심으로 이삭의 생명을 구하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지켜졌다는 내용이 창세기 22장에 소개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우리의 생명처럼 귀하다는 가르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사건으로 소개된 것이다. >

또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 끔찍한 신의 이 요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한다. 소위 "인신 제사" 특히 "자녀 제사"는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판관 11:29-40; 열왕 하 17:31, 23:10), 페니키아, 아몬족, 모아브족(열왕 하 3:21), 이집트, 카나안 등 주변 국가들에서도 한정된 기간 동안에 행해졌다. "인신 제사"가 동물 제사로 바뀐 것 역시 폭넓게 발견된다. 구약에는 탈출기 22:39과 34:19에 첫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이 있는데 동물로 대신하였으며(탈출 34:20), "인신 제사"는 후에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로 취급되어 금지되었다(레비 20:2-5). 따라서 본 설화의 최초의 모습은 "인신 제사"를 동물 제사로 대치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 즉 인신 희생이 어떻게 종결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전형적인 설화였겠지만, 수 세대 동안 구전으로 전승되는 가운데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첨가되고 신학적 의도가 개입되어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 속에서의 신에 대한 순종을 시험하는 설화로 정착되었다.> (종교비판 자유실현 시민연대, 석동신의 오경해제중에서)  

위의 의견에 대한 다비안의 comment를 기다립니다.
commentary가 별건가요?
collection of comments 이니, comment 가 모여서 commentary가 된 것이지요
이런 코멘트가 쌓이면 <Dabian’s commentary>라는 이름으로 나중에 성경해석의 준거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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