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과 삼위일체론
1994.9.9. 8:00 계대 신학과 수련회 특강


1. 한국교회의 신앙성격
필자의 기억으로는 몇 년 전 카톨릭 교회는 윤봉길 의사에게 종교적 복권을 시켰다고 한다. 그는 1932년 스물 네살의 젊은 나이에 김구로 부터 폭탄을 받고 일본이 4월29일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과 겸하여 상하이사변의 전승을 기념하는 대회를 홍코우공원에서 개최했는데 그곳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 상하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현장에서 죽이고 그 이외에 고급 장교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당한 후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했다. 그의 복권은 카톨릭 교회에서 그의 테러 행위에 대해새롭게 평가를 한 것이다.
윤봉길 의사에 대한 신앙적인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민족을 위한 투쟁이라 하더라도 폭력적으로 할 수 있는가, 라고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으며, 평상시가 아니라 민족의 위기 가운데서는 테러를 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폭력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관점 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에 관한 포괄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교회 안에는 두 가지 흐름이 내재되어 있다. 신앙이란 이 사회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직 초월적인 하나님과만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이 하나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신앙을 철저하게 사회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다.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이원론적인 방향에서 접근하게 되면 아무런 결론이 도출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방법론도 될 수 없다. 결국 이 문제는 인간론과도 깊숙히 연관되는 문제인데, 도대체 인간을 개체 만으로, 혹은 전체 만으로 간주할 수 없듯이 기독교 윤리도 역시 개인과 사회문제를 통전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즉 실존과 역사의 관점에 동시에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신앙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하나님 만 잘 믿으면 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한국 개신교 일백 년 역사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초월적인 신앙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것이 지나쳐서 이용도의 신비주의적 신앙이 한국 교회의 아주 깊숙한 내면을 성격규정하고 있다. 신유집회가 다반사 처럼 행해지면 그런 집회를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광고하고, 일반교회는 때에 따라 그런 일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우리 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거나 군사독재에 찌들린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인간의 역사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지난 군사정권 당시 불의한 정권에 이용당하던 교회 지도자들이 많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난 번 한국성결신문에 어느 목사님이 칼럼을 게재했는데 그 결론 부분을 여기 그대로 인용해 보자. <우리는 천기를 분별하듯이 성령의 바람이 부는 것과 그 징조를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민족이라는 단위를 뛰어넘어서 성령님의 소원으로 통일의 날이 이루어지는 희년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답답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리스도인은 민족이라는 단위를 뛰어 넘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에게 의존해서 통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 말은 종교적으로 매우 세련된, 그리고 보기에 따라 매우 수사학적인 표현인데, 거기에 바로 한국 교회의 초역사적 신앙의 모습이 들어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구원활동을 하시는 이 역사 앞에서 매우 무책임하게 살아가게 하는 함정이 놓여 있다. 이러한 신앙에 의하면 윤봉길 의사의 항일투쟁은 물론이고, 그 이외의 많은 독립운동과 삼일 만세 사건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는 삼일 독립선언서 대표자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과반수나 된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말하면서도 현재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신앙의 모습들이 이리저리 숨겨져 있거나 그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만약 일제시대에 독립을 위해 투쟁한 사람들을 애국자라 하여 그 뜻을 받들고, 반대로 일본의 식민사관에 동조한 사람들을 친일주의자라 하여 배척한다면 오늘 남북의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방관하는 사람들에 대한 구분도 역시 자명하다고 본다.

2.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
기독교적으로 무엇을 말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신론에 터하는 문제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준거로 하여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과 통일을 언급할 때도 역시 그 출발점은 비록 현실언어와 현실사건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교의학적 주제인 신론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시간에 우리가 조직신학의 신론 자체를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론 일반의 모든 문제를 언급할 필요는 없으며, 다만 우리가 민족과 통일을 왜 말해야만 하는가의 신학적 동기로서 삼위일체론적 구도를 짤막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도대체 유대교로 부터 자유로워질 필요나 의지가 있었는지 우리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나 유대인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관련된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도들과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유대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모든 종교적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던 초대교회를 유대교와 뚜렷하게 구별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은 물론이고 유대인의 종교습관대로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갔으며, 바울 같은 이는 선교여행시에 주로 회당에 들어가 설교했으며, 또한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미루어 볼 때초대교회는 처음 부터 유대교와 별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초대교회가 유대교로 부터 구별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삼위일체론적 신이해의 형성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초기교회가 선택한 삼위일체론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었기에 기독교를 유대교로 부터 벗어나게 했는가?
기독교의 모든 도그마가 그렇듯이 삼위일체론도 어느 한 순간에 벼락치듯 만들어진 교리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최소한 3백년 이상 교회 안과 밖에서 밀려드는 여러 이단과 주변 사상들 가운데서 기독교가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삼위일체론이야말로 고대근동의 타종교나 이방 사상과 경쟁관계에 있던 기독교가 자신의 독특성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가르침인 것이다. 말하자면 삼위일체론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아류로 빠지는 길을 막아주었으며, 동시에 헬라 로마의 신화 같은 다신교적 한계로 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다.
우리가 삼위일체론을 언급할 때 우선 전제해야 할 문제는 이것이 존재론적 관점이 아니라 인식론적 관점에서만 접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삼위일체론은 신론, 기독론, 성령론이 어떻게 관련성을 맺고 있는가에 대한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 도그마인데, 초대교회 때 부터 기독교는 하나님을 유일신이며 동시에 세 위격을 가진 분으로 믿었다. 이는 곧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아들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영으로서의 하나님이라는 구도 속에서 신인식을 확장시킨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적 존재론이 부정된다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인식론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이 이해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끔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론은 설명되어질 수 있거나 이해되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믿어야 할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이는 삼위일체론을 존재론적으로 접근할 때 발생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어떻게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이 가능한가? 그런 존재는 세상에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거니와 영원하고 절대적이고 유일하신 하나님과 역사 속에 현존했던 나사렛 예수가 -이 두 인격의 관계가 삼위일체론의 근거이기 때문인데- 어떻게 구별되면서도 동일시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인식론적 관점 안에서만 설명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과 대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예수가 하나님과 대립되어 있다는 말은, 예수부활 이후의 <주로 올림받은 예수>가 증언된 요한복음 류의 증언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 하는 말씀이 상당히 많다는 점에서 일단 접어놓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예수는 스스로 하나님을 “Abba”라 부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질문은 “하나님을 신앙하던 예수와 초대교회로 부터 신앙의 대상이 된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비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가?”이다. 이런 점에서 초대교회는 성육신론(영원한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이 되었는가?)과 양자론(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하나님이 되었는가?)의 대립 가운데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성육신론과 양자론의 투쟁은 또 하나의 다른 주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을 미루어두기로 하자.
삼위일체론 논의에서 특별히 중요한 점은 초대교회가 초월적이고 절대적이고 무소불위하신 하나님이해로 부터 역사적이고 제한적인 하나님 이해로 돌아섰다는 사실이다. 터 놓고 말해 보자. 인간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인간이 신으로 들어올림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의 인격을 가진 예수가 반인반신이 아니면서 온전한 인간과 온전한 신이 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런 문제들을 수학공식을 풀듯이 해결할 수 없다. 다마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초대 교회에서 삼위일체론 논쟁의 핵심이 예수의 격을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보는가, 아니면 다르다고 보는가의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소위 <호모 우시오스>인가, 아니면 <헤테로 우시오스>인가, 혹은 <호모이 우시오스>인가? 초대교회가 선택한 것은 <호모 우시오스>, 즉 예수와 하나님과는 동질이었다는 고백이다.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 되었든(양자론), 아니면 하나님이 인간 예수가 되었든(성육신론), 초대교회는 신이해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라 부를 만한 단안을 내렸던 것이다. 즉 <인간 예수는 하나님이다.>
초대교회는 어떻게 인간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본질인 신성을 발견했는가? 그들은 왜 예수를 <주, Kyrios>라고 불렀는가? 어떻게 인간이 신이 되는가? 예수가 스스로 “나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신이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적도 없고 그러실 분도 아니지만, 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는 예수에게서 메시야적 표징을 발견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대답이다. 복음서 곳곳에서 증언되는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인간 예수에게서, 그의 인격과 그의 행위에서, 궁극적으로 그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하나님의 메시야적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에게 예수의 도덕적 가르침이나 지혜의 가르침이나 초자연적 행위들은 그 자체로서 별로 의미가 없었다. 예수와 관련된 모든 언어와 사건은 구원론적 으로 해석되어야 할 그의 메시야성 안에서만 그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의 존재론이 그의 구원행위에 있는 것 처럼 예수에게서 발생한 구원사건이 곧 하나님이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이제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신표상이었던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로서 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의 구원행위 안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분으로서, 즉 역사에 의존하는 분으로서 인식되었다는 말이다. 예수는 온전한 인간이었지만 그에게서 온전한 신성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 신성이란 인간구원이라는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론적 신이해의 전통 가운데서 신앙을 구성해 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구원론적 바탕에 근거해서 사고해야만 하는데, 이를 경륜적 삼위일체라고 일컫는다.

3. 구원의 현실성 문제
삼위일체론이 구원론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제기해야할 질문은 ‘구원의 현실성(Wirklichkeit)’이 무엇인가, 이다.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은 이 세계의 구원경륜을 위하여 자기를 계시하는 분이라는 사실 앞에서 기독교 신학이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구원의 현실을 모색한다는 것과 같다. 모든 종교 와 모든 인간학적 노력들이 -정치, 경제, 철학, 자연과학, 예술에 이르기 까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결국 구원문제인데, 이런 구원의 경쟁관계 속에서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그 구원의 현실성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솔직하고 치열하게 질문하고 대답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우리들의 가장 바른 신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존재였던 예수가 이 세상에서 선포하고 실천한 일은 오로지 인간구원을 가리키는 개념이라 할 하나님 나라에 집중된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 교회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위해서 투쟁하는 공동체, 곧 종말론적 구원 공동체라고 규정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목회란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발생한 그 구원을 알리고, 그 구원에 참여해서 살도록 돕는 일이며, 그리스도교회, 목사, 목회, 조직, 교회 프로그람은 온통 구원을 지향하는 유형무형의 사실들이다.
구원론은 교의학에서 독립된 주제가 아니라 모든 주제를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조직신학과 교의학에서 독립된 한 장을 구성하지 않는다. 구원론은 은총론이나 종말론, 혹은 말씀론과 인간론, 그리스도론을 통괄하는 그리스도교의 교의이다. 교의학에서 구원론이 독립된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 구원론이 이미 자명한 대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하나이며, 아직 구원의 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직접적으로 질문한다면,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의 현실성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적 구원의 현실과 내용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교회는 구원을 두 가지 각도에서 가르쳤다.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천당에 간다는 원형적 표상이 그 하나이며, 예수를 믿으면 현재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인 평강이 임한다는 생각이 다른 하나이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초월적이고 미래적인 구원을, 후자는 실존적이고 현재적인 구원을 뜻한다. 초월적인 구원을 강조할수록 오순절파나 개혁주의적 보수신앙으로, 역사내재적 구원을 강조할수록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같은 진보신학으로 구분해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개인구원에 강조점을, 진보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구원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현재적 구원이라는 것도 현재적 역사변혁을 추구하는 흐름 만이 아니라 실존적 개인의 변화를 추구하는 흐름이 있기 때문에 구원의 유형을 도식화 하기는 어렵다.
어쨋든지 양 측면을 선명하게 구별할 수는 없지만 어느 편에 속하던지 그것이 구원의 형식을 말하는 것이지 구원의 내용을 적나라하게 진술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수를 믿고 죽어서 가게되는 그 세계는 어디인가? 오늘과 같은 첨단의 우주물리학의 세계 앞에서 이를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인간의 경제적, 정치적 해방이 과연 구원의 리얼리티를 빈틈없이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의 세계 안에 아무리 복지 구조가 환상적으로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구원이라고 말하기에는 이 지상적 삶이 너무 무의미하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을 사실적으로, 혹은 실증적으로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밖에는 진술할 수 없다.
구원의 문제는 곧 하나님 나라의 문제이며, 하나님 나라는 곧 하나님의 존재양식에 관계된 문제이다. 구원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 자체를 설명하기에 앞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누구이며, 그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미 앞서 삼위일체론적 신이해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는데, 다시 그 신문제로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체로서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역사와 세계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며, 역으로 인간과 역사와 세계의 구원은 하나님을 통해서 설명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는 상호적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 별개의 실체는 아니다.
현대신학과 철학에 있어서 신론의 특성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제 더 이상 그리스도교적 하나님을 실체론적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계몽주의 이후, 더구나 근대 이후의 오늘 우리는 고전적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어떤 실체로서의 하나님을 신앙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명제인“Reality is a Process.”는 우리에게 사물의 존재지평을 새롭게 열어주었다. 예컨에 바람이라는 사건은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운동이 일으키는 현상인 것 처럼 하나님은 세계를 새롭게 열어가는 과정이며 힘이며 움직임이다. 그 하나님은 영으로, 혹은 나라(Reich)로서 존재한다. 둘째, 그리스도교적인 하나님은 세계의 개방성과 함께 열려져 있는 존재이지 완료된 분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 교회는 하나님을 만고불변의 존재자, 무소불위한 전능자로서 가르치고 있다. 그 말 자체는 전혀 틀리지 않지만 충분한 해석학적 보충이 없는 한 그리스도교회의 삼위일체론적 하나님과는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될 염려가 없지 않다. 이미 모든 세계 역사를 확정시켜 놓은 하나님을 믿는다면 인간은 숙명으로 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의 자유론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하나님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말은 미완의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그리고 인간의 역사를 통해 자기를 열어가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미래가 종말론적으로 개방되어 있을 때만 우리의 선교적 자리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신론의 두 가지 성격은 사실 같은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하나님 이해 가운데서 교회가 구원을 독단적으로 주장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아무 것도 언급하지 말아야 하는가? 여기 있는 우리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던 예수 처럼 우리는 구원을 간단 없이 외쳐야 한다. 여기서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원의 현실성을 교리문답식으로 가르치는 것에서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구원은 앞으로 세계가 열려지는 것에 따라 점점 새롭게 진술될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구원은 굳어진 체계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향한 치열한 투쟁이며 몸부림이고 희망이다. 구원의 현실성은 2천년 전이나 오늘, 혹은 2천년 후에도 역시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독단적 메카니즘이 아니라 시공과 삶의 자리에 따라, 인간과 세계와 역사와 더불어 새롭게 규정되고 진술되어야할 하나님의 통치이며, 그리스도의 나라이며, 성령의 역사이다. 곧 그것에 참여함이다.

4. 민족통일의 담지자로서 교회
구원의 현실성을 카테히즘에서가 아니라 인간, 세계, 역사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할 때 현재 한국교회가 진력해야할 구원의 현실성은 민족통일에 모아진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가 민족통일을 구원의 리얼리티로 줄기차게 주장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는 멸망의 질서인 분단상황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곧 구원받아야 할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확고한 구원의 현실성이 통일 이외에 그 무엇인가? 물론 민족 통일만이 기독교의 구원은 아니지만 -노동문제, 특히 외국인 노동자 문제, 생태계나 개인의 도덕성 문제, 보다 나은 민주적 질서, 농촌문제 등이 구원론적 현실이다- 그것은 오늘 한민족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이 가장 절실하게 부여잡고 몸부림 쳐야할 신학적, 구원론적 주제임에 틀림없다. 민족통일은 우리가 이 땅 위에서 복지사회를 일구어 내는 일 보다도, 죽은 다음에 천당에 가는 일 보다도, 교회를 확장하는 일 보다도 훨씬 다급하고 당위적인 구원론적 요청이다. 만약 교회가 마음을 열고 독단적 구원론에 사로잡혀 있지만 않다면 당연히 민족통일을 위하여 절치부심할 것이며 온 정열을 그것에 쏟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교회는 통일이라는 구원론적 현실성에 대해서 얼마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구원의 형식 가운데 빠져 있을 뿐이지 구원의 내용에 천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두 가지 유형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여전히 부흥회 류의 열광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인테리 중산증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적 종교 유형이다. 이들이 공히 열을 올리는 이슈는 경쟁적인 해외선교인데, 그것 처럼 우리의 허위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서구 기독교가 행했던 그런 종교 패권주의 식으로 온 세계를 복음화 시키기 위하여 자기를 불태우며 전진하고 있다. 그런 류의 교회가 생각하는 통일이란 통일 후에 평양에 가서 교회를 짓겠다는 그런 열성에 모아진다. 후일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에도 남한과 같은 극단의 교파적 교회가 -교파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 현실이 갖고 있는 배타성이 죄이기 때문인데- 우후죽순 격으로 세워지겠거니 생각하면 끔찍스럽기 까지 하다.
다행히 한국교회와 신학이 비록 작은 흐름이지만 민족의 미래를 신중하게 염려하는 행태가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NCC를 중심으로 한 통일실천운동과 더불어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줄기의 흐름이 있다. 민중신학(안병무), 통일신학(박순경), 민족신학(조성노)이 그것이다. 민족신학을 주창하는 조성노는 자신의 작업이 민중신학과 통일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라 했다. 민중신학이 기본적으로 신학의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특히 중산층이 확대되는 오늘의 시민사회에서 여전히 민중에 대한 편파성을 유지하므로써 대안적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이 가능하다. 통일신학을 말하는 박순경 교수가 <주체사상>을 신학적으로 해석해 보려한 노력을 인정해야 하지만 여전히 남한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조성노 교수가 말하는 민족신학이 비록 당위라 하더라도 민중적 전망과 통일신학적 좌표가 없다면 그 민족이라는 것이 자칫 관념적인 개념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없지 않다고 하겠다. 민중신학과 통일신학과 민족신학은 상호 부정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의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어쨋든 이러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가 민족의 현실과 미래를 구원론적 지평에서 접근하고 그것의 실천을 위해서 진력해야만 하겠다는 사실이다. 노정선 교수는 <민족사의 과제와 민족신학>이란 좌담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오늘 우리 한반도에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이 민족교회로서 어떠냐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민족 자주의 맥락에서 거기에 참여한 민족교회운동이 있는가 하면 상당수의 교회가 사실은 미국형의 메시지나 미국식 문화신학 등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우리교회를 거기에 흡수시켜 놓은 형태와 그러한 내용을 갖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황국신민화되었던 일제하의 교회나 오늘날에 있어서 서구유럽이나 미국 주도형의 자본주의 체제내로 흡수된 형태의 활동이나 운동, 그러한 신학의 내용을 형성해 나가는 교회가 상당수 있지 않느냐는 것을 어떤 의미에서 분명하게 확인해 나가지 않으면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 생각하는 자주와 평화와 민족생존을 위한 민족교회운동, 이것을 정리해 나가는 데 문제가 있지 않느냐 생각됩니다.”(조성노편, 민족과 신학, 현대신학연국소, 1991, 54)
노정선 교수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지나치게 구미의 문화종교에 물들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문화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화를 본질로 삼는다는 것이 문제인데 이런 이유로 우리의 교회는 순전히 종교적인 종교가 되어 버렸다. 교회는개인의 종교성을 충족시켜 주는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그럴 수록 교회는 발전하게 되어 있는데, 그 결과로 개인주의화 되어 버렸다. 열광주의 형태이거나 아니면 엄숙주의 형태이거나 모든 교회가 개인의 영적인, 혹은 도덕적인 만족감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지 민족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도록 이끌어 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민족의 교회로서 가장 큰 구원론적 현실성은 민족통일에 있다는 사실을 줄기차게 외치고 설계하고, 모두의 힘을 모우고 기도해야 한다.

5. 북한 바로 알기
통일의 첫 걸음은 남한과 북한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상호간 <바로알기>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남북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냐 하는 기치론이 아니라 어떻게 남과 북이 동질성을 회복하여 세계사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존재론적 구도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는데 우리만 나서서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손해보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쪽에서 나서지 않는다면, 아니 그러하기 때문에 더우기 우리가 먼저 마음을 개방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이 문제는 또 하나의 다른 주제일 뿐만 아니라 필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 북한의 실상이 너무 외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오래 전 루이제린저가 북한을 방문한 다음에 쓴 여행기와 황석영이 북한을 방문하고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을 보면 어느 정도 북한 사회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들의 방문기가 전하려는 메세지는 북한이 매우 독특한 질서를 -우리의 눈으로 보면 매우 낯선, 그리고 미련하고 유치한 그런 질서도 있지만- 통해 나름대로 인간다운 삶을 성취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북한 사회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평가될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남한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더구나 지성인으로서 그 동안 경직되게 북한을 바라보았던 색안경을 벗어버려야만 남북한 형재애와 그런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참고적으로 황석영의 글을 짧게 인용하고자 한다. 북한 방문 당시와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금 바라보는 북한관에 차이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변한다. <많은 차이가 있음을 시인합니다. 모든 대립된 사물에는 상대방 문제에 반면성이 있다는 것을 피할 수 없겠지요. 거울의 반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남쪽에서 그야말로 쏠리고 몰린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남의 도움도 없이 저희 끼리 막강한 독점자본 아래서 자신의 생활을 구축하려 한다고 했을 적에, 그 공동체 내부에 바깥 세상의 폐단이 다른 모습으로 형성될 거라는 점을 우리는 능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자주.자립.주체란 참으로 눈문겨운 것입니다. 그들 자신도 예를 들듯이 북한은 무서운 맹수들이 들끊는 정글에서 온통 사방으로 털을 곤두세운 고슴도치와 같은 원칙적 긴장 가운데 있지요. 북의 민중들과 사귀다 보면 ‘이 험한 세상에서 저렇게 순진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꼬’하는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이상주의적 믿음과 자기 민족에 대한 고집스러운 긍지, 노동과 노동계급에 대한 도덕적 원칙은 솔직한 느낌으로 감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곳은 ‘분단체제’임을 피할 수 없으며(아마 그곳의 인권문제를 뜻하는 것 같다. 필자 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온전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황석영, 사람이 살고 있었네, 242)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논의에는 현시점에서 두 가지 사실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첫째는 이제 남북대화의 시기(카이로스)가 왔다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가 경계해야할 통일방법은 흡수통일이라는 것이다. 전반적인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은 북한으로 하여금 더 이상 폐쇄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게 별로 이롭지 못하다는 점을 자각케 해 주었다. 아쉽게 불발로 끝난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북한에게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정황적 판단의 산물임에 틀림 없다. 더구나 북미 회담의 성과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고립무원의 상황을 벗어나려 한다는 강한 의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앞으로 이런 국면은 작은 걸림돌이 돌출함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것이다. 세계사의 새로운 조류 가운에서 우리 남한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통일의 과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전향적인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 이 문제는 우리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데서 부터 출발한다. 북한은 적화통일의 꿈을 -물론 그들은 우리가 예단하고 있는 그 방식의 적화통일을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버리고 남한은 흡수통일이나 영구분단의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최근의 공안정세는 -이 사회를 우적(友敵)의 구도 속에서 견인해 나가고 있는 공안당국의 태도를 볼 때 분명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한 사태이다. 횡설수설하는 어느 대학총장의 발언으로 부터 경상대학 교양과목에 대한 이적성 수사에 이르기 까지 너무도 졸렬한 일련의 사건들은 통일이 안되거나 지체될 때 반사이익을 갖게되는 이들의 계획된, 혹은 무의식적 결과물들이다.
얼마 전 북한과 미국은 핵문제 삼단계 회담에서 놀랍도록 전진적인 타협을 찾았다. 그 중에 가장 획기적인 사실은 평양과 워싱톤에 <외교대표부>(?)를 각각 설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왜 이렇게 우리는 미련하고 고집세기가 짝이 없는가. 우리는 그렇게도 북한에 대해 인색하게 대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이 그렇게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할 수 없었는가? 아마 미국과 북한은 겉으로만 핵문제를 의제로 삼고 상호간 사실상 정식 외교터널을 뚫는 일을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우리의 해방이 우리 스스로의 투쟁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연합군의 승리 때문인 것 처럼 남북통일도 여전히 미국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어 통일 이후에도 그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다. 지난 번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을 만나러 갔을 때 많은 정치가들과 메스콤은 비아냥거렸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것이다. 빌리 그레함 같은 보수적 선교사도 김일성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김일성의 사후 심심한 애도를 표하고 그를 ‘강력하고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다고 추모했다는데, 왜 우리 형제들 끼리는 말 한 마디에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평양과 위싱톤에 외교대표부가 설치된다면 그들은 상호간 언제라도 서로의 뜻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상호간 실체를 인정한다는 상징성이 거기에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남과 북이 직접 대화를 못하고 항상 미국을 통해서 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결정과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죽음에 이르는 역사적 변화를 정부 당국, 특히 대통령이 슬기롭게 대처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공안정국 내지 극우적인 사회분위기를 일소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김영삼 대통령이 조문사절로 특사를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상회담을 며칠 앞둔 상태에서 조문사절을 보낸다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은, 스스로 내린 결정인지 아니면 주변의 실력자들이 보낸 무언의 압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역사적 호기를 놓쳐 버리고 우리의 사회 분위기를 5년 전, 아니 10, 20년 전으로 반전시켜 버렸다.
교회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남한의 교회가 남북한 간의 적개심을 허물어야 할텐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공 이데올로기를 제공하여 왔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정치권 보다 앞서 남북한 기독교인의 교류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우리는 빗장을 단단히 잠궈 두고 살아왔다. 독일의 예를 잠간 들어보면, 1985년 <Kirchentag>이 Düsseldorf에서 개최되었었는데 그 당시 개회예배시에 동베를린 여목사가 설교를 했다. 만약 동.서독 교회가 서로 배타적이었다면 독일 통일에 훨씬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교회가 어떤 특별한 사회 체제 가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나왔는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 그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순전히 우리 남한 식의 교회만을 정당하다고 고집한다면 신앙의 독선에 불과할 것이다.

6. 결론적 후기
평소에 나는 북한을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북한은 해방 이후 50년 가까이 저들이 인민들의 피를 바탕으로 북조선을 꾸려 왔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한에서 결국 가난과 세계적인 소외와 연민 가운데 빠져들고 말았다. 가능한대로 북한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려는 사람들도 인정하듯이 북한의 경제사정은 대단히 악화된 상태이다. 전력 사정이 어렵고 생필품도 여전히 부족한 가운데서 배급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도덕성이 빼어난가? 그렇지도 못하다는 데 그 사회의 문제가 있다. 지난 번 엠네스티의 기자회견에 의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사상범과 정치범이 비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남한의 인권상황도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되지만.
탕자의 이야기에 보면 큰 아들이 화를 냈다고 하는데, 그 행동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자기는 죽을둥 살둥 열심히 일했는데 망나니 동생은 실컷 놀다가 쫄딱 망해서 돌아왔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런데다가 아버지는 동생을 딱 뿌러지게 혼내주건지 내어 쫓든지 해야 할텐데 오히려 잔치를 베풀고 있으니 억장이 무너질만도 하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며, 우리는 그 동생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이다. 여기에 큰 아들과 아버지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형은 동생의 행위를 보고,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존재 자체를 본다. 형은 동생의 도덕성에 집착했고,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생존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들려주신 <탕자의 비유>에 담겨 있는 핵심이다. 둘째 아들이 방탕했다는 사실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의 사랑이 핵심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하나님 나라 질서이다.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도덕성의 기준에서만 판단하려 한다면 결국 <율법주의>에 빠지고 만다. 물론 도덕성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그것 보다는 존재지향적 사랑과 행위가 우리를 살리는 경우가 더욱 많다.
먼 후일, 백년이나 오백 년이 흐른 다음에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 이 시대를 살다간 선조들을 향해 무엇이라도 말할른지 부끄럽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제 시대 때 독립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일본과 투쟁했던 것 처럼, 오늘 남북분단이야말로 우리가 제거해야할 신앙적 문제임을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현재 어쩔 수 없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서로 가슴을 얼싸 안고 춤을 추어야 할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말자. 그들은 우리와 피를 나눈 동생들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