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신학 연구소의 신학 방향
발제자: 정용섭 목사
(1993년?)


신학은 교회에 의존해 있는가, 아니면 교회로 부터 자유한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는 여기서 이 질문 자체가 이미 암시하고 있는 두 가지 답변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신학이 교회에 속해 있다는 관점이다. 기독교 신학은 교회의 모든 경험과 유산을 근거로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교회 공동체와 나뉘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존적이다. 신학의 존재론적 근거는 바로 교회 공동체다. 이런 점에서 신학을 가리켜 <교회의 기능>이라 한 칼 바르트의 견해는(K. Barth, KD1/1, 1쪽) 정당하다. 그는 신학이 교회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처했던 삶의 자리에서 발생한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신학 행위는 교회 안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신학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 신앙과 인식작업의 기능”이라는 파울 알트하우스의 진술도(P. Althaus, Die christliche Wahrheit, 6쪽) 같은 의미를 갖는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기독교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신학행위, 즉 역사적 현실 기독교 공동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신학행위는 정직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자세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신학운동은 일차적으로 구체적인 성결교회를 위한(für), 성결교회를 향한(zu), 성결교회의(von) 신학이란 사실을 명확히 해야만 한다.
둘째는 신학이 교회로 부터 자유하다는 사실이다. 신학은 교회의 도그마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것에 절대적으로 묶이지도 않는다. 신학이 교회에 순종해야 할 때도 있고, 교회로 부터 자유할 때도 있다. 교회와의 친교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교회와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신학은 교회의 가르침을 판단할 수 있는 일종의 가시채(행26:14)와 걸림(요6:61)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는 곧 신학의 자유성(요8:32)이다. 이러한 자유의 영은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순종하므로써 획득되어진다. 이처럼 신학은 오직 예수 그리도만에게만 순종하므로써 교회도 역시 스스로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끊임 없이 외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몰트만이 “교회에 관한 명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명제일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명제는 또한 교회에 대한 서술을 포함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에 대한 명제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시에 교회를 넘어서 교회가 그것에 봉사하는 메시야적 하나님 나라에 까지 미치기 때문이다.”(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17쪽)는 진술은 옳다. 또한 만약 우리가 영원불변의 교회형식과 삶 보다는, <ecclesia semper reformanda>라는 개신교적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개혁의 준거를 밝혀가는 신학이 교회의 질서로 부터 자유해야만 한다는 근거는 충분하다. <성결신학 연구소>도 -이하 <성연>- 역시 이러한 기본적 전제, 즉 교회와의 친교와 비판 -이 모두가 성결교회를 향한 사랑의 몸짓이다- 가운데서 신학적 실행을 수행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성결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결교회의 일반적 정서는, 이는 한국 교회 전체에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신학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아니면 냉소적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신학이란 신학생이나 신학교수들에게나 필요한 작업이지 목회현장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신학이 교회 성장에 별로 공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이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순전히 실용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신학적이지 못했던 한국교회가 (이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지금 까지 놀라울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지속해 왔다는 건 부분적으로 교회 외적인 요인의 작용이며, 전체적으로는 순전한 하나님의 은총인데, 이런 결과에 만족하여 언제 까지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교회나 목회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오늘, 교회 자체가 근본적으로 신학적인 근거에 의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신학적 원칙으로서만이 아니라 교회성장학 내지 선교신학적인 관점에 비추어 본다 하더라도, 교회와 목회가 가능한 빨리 신학적 기초를 회복하는 작업이 절실하게 요망된다 하겠다. 왜냐하면 다원주의적 사고방식, 합리주의적 행동양식, 포스트 모더니즘적 가치관들이 특징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 세계는, 이는 동의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불가피한 우리의 현실일 뿐만 아니라 더 심화될 것으로 내다보이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는 원형적 명제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뜻하는 바는 교회가 항상 시대정신에 민감하게 영합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신학적 방법론을 충분히 습득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만 선교의 가능성이 유지된다는 말이다. <성연>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제2의 계몽주의, 제2의 산업혁명, 코페르니쿠스적 변혁의 새로운 시대에 직면하여 성결교회가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도와줄 수 있는 신학 운동체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겠다.
앞으로 성결교회의 신앙적, 신학적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성연>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지평을 분명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1. 성결교회의 신학적 전통- 성결교회의 정체성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역시 성결교회의 신학적 전통을 살려내고 전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작업이다. 타 교단에 비해 역사가 짧은 우리에게 -한국 교회 역사 만 보면 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세계 교회 역사 가운데서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게 많은 신학적 유산과 전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남아 있는 것이라도 살려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문제 앞에 서게 될 때 두 가지 극단적 태도를 취하게 될 염려가 있다. 하나는 우리 신학의 과장이다. 우리 성결교회의 신앙과 신학이 가장 우월하다는 자기도취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전적이지도 못하며, 자칫 독단론에 빠지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연민의 태도로서, 일종의 열등감이다. 장로교에 비해 우리의 역사와 전통과 유산이 형편 없다는 자기비하는 바람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앙적이지도 못하다. 우리는 성결교회의 전통을 일단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도에 넘치도록 자기확신에 차 있어서도 안되고, 불쌍할 정도로 불안하게 생각해도 안된다. 우리의 바람직한 신학적 전통이 무언지, 그 한계는 무언지 살펴서 그걸 오늘 우리가 정리해 나가야 한다.
성결교회 안에 충분할 정도의 어떤 신학적 근거와 체계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될 때 우리는 분명한 답변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구호 처럼 외쳐지고 있는 소위 <사중복음>을 성결교회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은 성결교인으로서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문답이며 교파적 특색이지, 인간과 역사와 세계 전체를 신학적으로 통괄할 수 있는 신학개념은 아니다. 요즘 활천지에 실리고 있는 사중복음 시리즈 처럼 간증류의 내용을 신학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다면 웨슬리의 <성화론>이 우리의 신학인가? 성화론은 기껏해야 축소된 인간론과 구원론에 대한 언급이지 성결교회 신학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아니면 신비주의나 경건주의의 전통이 우리의 신학인가? 그런 부분들이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느 한 종파나 교파를 드러낼 수 있는 신학이라면 최소한 창조론, 인간론, 구원론, 삼위일체론, 교회론, 종말론 등에 이르는 전체 신학적 대계에 대한 논리적 진술이 있어야 한다. 지금 까지 성결교회가 신학이라고 주장해 온 것은 거의 한 인간의 실존적 회심을 구원론과 연결시킨 교리였지, 그 인간도 사실은 통전적이지 못하고 그저 영성이라는 일 부분에 치우친 인간이었는데, 전체 기독교의 신학적 전통과 상응한 신학적 대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중복음이나 웨슬리의 성화론 같은 우리의 신학적 특성을 간과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성결론>이 우리 신학의 단초가 될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성결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충분히 규정할 수는 없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진솔한 대화와 논의를 통해 성결교회 안에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적 자리>가 매김되어야 한다. 그런 작업을 우리가 앞서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만,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신학이 아직도 꼴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솔직히 인정해야 하겠다. 그래야만 우리가 앞으로 무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분명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체계화 되지 못한 성결교회의 신학적 전통을 신학화 하는 일이 우리 <성연>의 일차적 과업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성결교회의 초기 자료발굴을 통해 1세대들의 신앙적, 혹은 신학적 특징을 찾아내고, 그런 신학적 사고들을 체계화 하고 조직화 하는 일이(조직신학화)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 시대에 우리의 신학적 언어로 성결교회의 신학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요청된다. 우리의 선배들이 언급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성결신학의 전통 가운데서 신학화 해 나가야 한다.

2. 민족교회의 전망- 기독교 신앙의 토착화
<성연>이 역점을 두어야 할 또 두번 째의 관점은 민족주의적 교회로서의 자리매김이다. 한국교회는 거의 반만년에 이르는 문화와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교회가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인간 구원이라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라면 이 민족의 처한 삶의 자리에서 그 구원이 현실화 될 수 있는 그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이 작업은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정치이며, 다른 하나는 문화다.
첫째, 이 나라가 정치적으로 바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분명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정치적 차원이라 함은 정치투쟁이 아니라 정치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향한 구원론적 관심에서 나온 선교적 실천 프로그람이다. 한국교회가 구원을 선포해야 할 인간은 구름 속에 사는 이들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국의 정치 경제적인 구조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러한 이들의 <삶의 자리>는 경륜적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구원을 외쳐야 할 교회는 정치적 정의의 실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히틀러의 신성로마제국 이데올로기를 부정한 독일의 고백교회는 1934년 5월31일에 <바르멘 선언>을 선언했는데, 그것은 지금 까지 전세계 교회 운동의 금과옥조로 인용되고 있으며, 일제 식민지 초기에 한국 기독교 안에 있었던 항일 운동에서도 그런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간할 줄 모르고 불의한 정치 앞에서 침묵하는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성서를 읽지 말아야 한다. 특히 구약의 예언자들은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 지도자들과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죄에 대해, 그 죄는 추상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인 것들이었으며, 개인적인 죄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국제적인 죄였는데, 그걸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 하나님 여호와를 향한 신앙과 정의로운 이스라엘 공동체 형성을 이원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리 성결교회는 <정치>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데,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 성결교회의 전통은 민족의 현실과 미래를 책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신앙의 관념화로 인하여 -이는 한국 교회 전체의 정서이기도 한데- 정치인들의 죄를 직시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명직 목사님도 친일적인 언행, 신사참배를 감싸는 발언을 했고(활천, 1937,11), 7,8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의 우리 모습도 그렇게 떳떳하지는 못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성결교회에서 각 지방회 마다 통일 이후 북한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때 비용을 댈 수 있도록 할당을 매긴 일이 있다. 통일 이후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만한 일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 보면 이런 건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다. 우리는 도대체가 통일을 위해서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통일이 된 다음에 북한에 가서 교회나 세우겠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은 신앙적인 게 아니고, 그 결과물을 이용하는 것만을 신앙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신앙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이게 우리의 한계며, 동시에 죄다. 하나님의 구원을 축소시키는 죄며, 그것을 교회론적으로만 생각한 죄다. 기독교는 이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행동하고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도전해야 한다.
둘째, 문화적으로 한민족의 얼을 찾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구라파 문화를 극복하고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를 신학적으로 소화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작업을 기독교 신앙의 문화적 토착화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토착화>라는 말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토착화는 기독교의 훼손>이라는 굳어진 생각을 절대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듯이 토착화는 일종의 혼합주의가 아니라 아주 소박하고 민족주의적인 신앙의 프락시스다. 한민족이 한민족의 정서로 하나님을 신앙하자는 말이다. 예컨데 우리는 미국과 영국사람들이 만든 찬송가에 길이 들어 한민족의 전통 가락으로 찬송하는 걸 불경하다고 생각한다. 전세계에서 우리 처럼 외국, 그것도 영미 일변도로, 찬송가를 많이 부르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의 기독교 신자들도 자기들 가락의 찬송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시사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과 같은 18,19세기 부흥성가에 길들여져, 그 가락에서 도저히 벗어날 줄 모른다.
토착화는 기독교를 비기독교화, 혹은 우상숭배화 하는 게 아니라 기독교를 구체화 하는 작업이다. 하나님 신앙은 단순히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경험되어지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우리 한민족의 역사와 언어와 신화, 그리고 우리의 기쁨과 슬픔과 희망과 사랑, 우리의 노래와 우리의 옷과 먹거리를 신앙의 수단과 과정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우리가 지난 5천년 동안 경험했던 모든 삶의 구체적인 것들과 그것들의 흔적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예배하고 전해야 한다. 어떻게 기독교가 전래되기 이전 한민족의 문화에 대한 배려 없이, 그리고 그런 전통 가운데서 사는 한민족의 경험을 배제한 체 인간구원의 멧세지를 선포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신앙의 구체화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작업이다.
또한 토착화는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다. 미국의 독립 200년 역사에 비해 우리는 엄청한 문화적 역사를 갖고 있는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식 예배나 신앙형태를 취한다는 건 문화적 종속주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서구식 문화를 무조건 밀어내자는 게 아니라 그러한 편향성을 지양하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통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말이다. 아마 한민족을 반만년 가까이 지켜주신 하나님도 우리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통해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실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민족적인 교회가 되어야만 앞으로 21세기에도 한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교회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며, 민족으로 부터 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3. 세계교회로의 정향- 신학의 보편성 회복
<성연>은 위에서 언급한 <성결교회의 전통>과 <민족주의적 특성>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보다 궁극적인 지평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바로 세계교회와의 일치, 세계교회와의 코이노니아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 성결교회가 온 세계 교회와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인해 나가야 한다. 성결교회가 독립적으로, 혹은 분파적으로가 아니라 세계교회와의 연대 가운데서 하나의 교회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에큐메니칼>이 아닌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1960년대 초 교회 분열의 원인이 <WCC>와 관계되어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단체의 행태에 대해 동의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에큐메니칼이라는 용어는 반드시 WCC와 같은 어떤 조직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교회본질로서의 <일치성>을 뜻한다. 이런 정신으로 성결교회는 세계교회와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에큐메니칼 정신에 따라 교회의 자리를 찾으려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로, 세계교회와 신학적으로 보편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사중복음만을 편집증적으로 외칠 게 아니라, 예를 들어 JPIC(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 차원에서 서로 연대하고 함께 투쟁해 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런 주장은 우리의 소중한 신앙체험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보다 넓은 구원의 지평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성결교회의 체험적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세계교회의 신학적 노력을 주목하고 그들과의 신학적 대화를 열어가야 하겠다. 오늘의 신학이 어떻게 신존재론을 피력하고 있는지, 철학과의 대화는 어디 까지 왔는지, 생태계 회복을 위한 창조론의 새로운 관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나름의 대답을 찾아나서야 한다. 이런 보편적 전망과 대화노력 없이는 결코 성결교회의 세계화는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교회라는 교회본질로 부터도 멀어지게 될 것이다.
둘째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교회운동에 전향적인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KNCC에 가입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 교회 일치운동에 마음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까지 성결교회가 지역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일치운동에 참여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해득실에 따라 선택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지 신학적 신념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런 생각으로 부터 벗어나서 앞으로 최소한 한국교회 안에서라도 성결교회가 일치운동을 적극적으로 견인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신학적 풍토와 역량을 일구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럴 때만 우리 성결교회는 온 세계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희망하는 메시야적 공동체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 까지 요약적으로 진술한 이 문제들은 앞으로 <성연>이 어떤 신학적 방향성(Orientierung)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짧은 전망이었다. 이 문제들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구원과 현실성>의 관계다. 인간과 세계와 역사라고 하는 엄연한 현실성이 어떻게 기독교적 구원론과 연관되는가의 문제다. 이 세계를 초월해 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 세계에 완전히 내면화 되어버리지도 않는 고유한 기독교적 구원의 표상을 가능한대로 성결교회의 신학적 전통을 견지하면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다. 여기서 제기된 우리 성결교회 전통에 대한 작은 비판도 역시 성결교회를 향한 우리의 애정표현이었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우리의 이번 신학운동이 좋은 결실을 맺어 언젠가 먼 훗날 우리 성결교회 신앙의 후손들이 <성연> 창립 50주년, 혹은 100주년 축하모임에서 우리의 신앙적, 신학적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를 검증해 줄 날이 올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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