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강 신약성서의 구조

기독교가 뭐꼬 조회 수 2827 추천 수 0 2012.05.31 00:37:37

제 24강

신약성서의 구조

 

안녕하세요. 4월의 두 번째 강의 시간이군요. 6개월을 예상했는데 벌써 3개월이 지났어요. 수강생들을 직접 보고 하는 게 아니라 화면을 통해 이야기를 하니까, 소통의 다이내믹이라고 할까, 그런 게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이런 인터넷이 있으니까 이 정도의 강의라도 가능하죠. 이게 없으면 우리가 이렇게 공부한다는 걸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어요? 오늘은 복음서부터 시작해서 서신과 요한계시록을 다루려고 합니다. 신약성서의 내용에 들어가는 거죠. 그 내용을 일일이 다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중에 핵심적인 내용이나 강의안에는 없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왜 네 복음서인가

복음서부터 시작하죠. 신약 앞부분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있습니다. 보통 앞의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하고, 요한복음까지 묶어서 사복음서라고 합니다. 이 복음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다음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기는 하지만, 사도들이나 사도들의 권위를 빌린 초기 기독교 문필가의 진술입니다.

신약성서는 크게 복음서와 서신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역사서라고 하지만, 이것은 누가복음의 후편이라고 할 수 있죠. 누가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도행전은 주로 사도 바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도들의 활동에 대한 진술, 혹은 해명이에요. 따라서 사도행전도 편지나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서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다른 것은 접어두고, 이 복음서가 왜 네 권이나 신약성서에 들어왔을까 하는 점을 짚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신약성서 안에 자리 잡게 될 때 핵심적으로 한 권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의 일생은 복음서에 보면 크게 서너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한 예수님의 활동이고요. 두 번째는 거기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입니다. 세 번째는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한 활동이에요. 네 번째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수난입니다. 이 네 번째는 크게 보면 예루살렘 안에서 일어난 이야기예요. 제가 세부적인 것은 다 줄이겠습니다. 제가 갈릴리와 갈릴리 호수를 비슷한 의미로 쓰고 있는데, 이 둘은 조금 구분되기는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삶을 시작했는데요. 일단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면, 이미 유대 땅으로 들어온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왔다가 다시 갈릴리로 올라간 건 아닐까요? 예수님의 연대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확실하게 나타난 게 없습니다. 복음서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복음서는 연대기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정확하게 쓴 게 아닙니다. 순서가 엉클어져 있는 게 많아요. 특히 요한복음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좀 제쳐 놓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학자들은 공관복음과 연관해서 요한복음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에도 공관복음에 있는 사건들이 나오기는 해요.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중요한 것들은 요한복음에도 나오기는 하지만, 전달방식이나 해석이 공관복음과 다릅니다. 다르다고 해서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본질 자체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것은 아니에요. 요한복음의 독자들이 달랐기 때문에 표현 방식에 차이가 나는 겁니다. 하여튼 이 공관복음을 통해서도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연대기적 역사를 추정해 낼 수 없습니다. 대충 윤곽만 잡는 거예요.

큰 덩어리로 볼 때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는 갈릴리 호수 이야기고, 두 번째는 예루살렘으로 오기까지의 이야기고, 세 번째는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대부분 수난설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부활이 들어가죠. 이렇게 보면 되겠군요. 갈릴리로부터 유대까지의 여행, 예루살렘에 들어간 이야기, 수난 이야기. 여기까지가 굳이 말하자면 예수님의 공생애라고 할 수 있고요. 부활은 조금 성격이 다른 겁니다. 그건 예수님의 공생애와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부활을 이야기할 때 여러 번 했으니까 접겠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관한 책이 한 권이면 충분할 텐데, 왜 신약성서 안에 네 권이나 들어갔을까요? 게다가 왜 네 권의 내용이 조금씩 다를까요? 물론 네 권이 전부 같다면 다 들어갔을 리가 없었겠죠. 그래도 네 복음서 중에 괜찮은 거 하나만 선택하지, 왜 네 권 모두 경전으로 했을까요? 참 재미있습니다. 재미라기보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만 한 주제입니다. 그 이유는 대략 이렇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절대적인 교권이 행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의 지역 교회가 독립적으로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역 교회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 같아요. 이 말은 자기들의 공동체가 처한 상황에서 각자 나름대로 예수에 대한 전승들을 편집할 수 있을 정도로 열려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태 공동체, 누가 공동체, 마가 공동체, 또 나중에 들어오게 된 요한 공동체가 각자 예수에 대한 전승들을 따로 수집했고, 그로 인해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였던 거예요. 공동체 나름대로 그러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복음서가 하나도 배척되지 않고 경전 안으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안에 들어오지 못한 복음서도 많이 있어요. 예컨대 도마복음서입니다. 그런 것들을 외경이라고 불렀는데요. 네 복음서에 비해 권위가 떨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쳤습니다.

네 복음서는 397년에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결정되었어요. 상당히 후대죠. 397년이라고 하면, 거칠게 계산해서 예수님 사건이 있는 다음에 거의 400년이 지난 것이고, 조금 줄여도 최소 350년이 지난 겁니다. 그 기간 동안 복음서들은 아직 신약으로 결정되지 않았던 거죠. 그 기간이 상당히 길었어요. 상식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사건 이후에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면, 금방 경전으로 결정했어야 했는데, 왜 안했을까요? 아마 일반 평신도들은 신약성서가 처음부터 경전으로 받아들여졌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397년에 가서야 경전으로 결정되었어요.

지난주에 말했지만 초기교회는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결정된 구약성서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게 참 재미있어요. 신약 공동체는 분명히 유대교와 다릅니다. 초기에는 유대교 안에 머물러 있었지만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가 점점 쇠퇴하고 이방 기독교 공동체가 활성화 되면서 기독교의 정체성이 분명해지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왜 상당히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경전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들이 갖고 있던 성서는 정경화하지 못했을까요? 그게 좀 의아스럽죠. 사실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 때 결정적인 정경화 작업이 일어나기는 했어도, 이미 그 전에 정경화 작업을 위한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카르타고 종교회의를 통한 경전 결정은 일종의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거예요.

397년까지 경전으로 정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게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하지만, 그게 이상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굳이 정경화 작업이 일어나야 할 긴박성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 상태로 좋았어요. 각각의 지역 공동체마다 자기들만의 경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27권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겠죠. 정경화 과정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거예요. 그러다가 397년에 그것을 결정한 것뿐이죠. 사실 회의를 통한 결정은 전혀 없었던 걸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준비된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지역 공동체에서는 27권에 대해 동의된 상태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작은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고, 이단 논쟁들도 많았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신학적 논쟁이 일어났어요. 그게 살아 있다는 뜻이겠죠. 논쟁이 있다는 것은 바로 진리의식이 살아 있다는 겁니다.

 

신학논쟁

지금 한국 기독교에는 신학 논쟁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기독교 교리가 화석화 되었다고 할까요? 형해(形骸)화 되었다고 할까요? 박물관의 유물이나 미라처럼 모셔져 있어서 살아 움직이질 못하죠. 예수의 신성과 인성 같은 문제들은 초기 기독교에서 정통과 이단 사이에 정말 신학적인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주제였어요. 가현설(假顯說: Docetism)이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아리우스(Arius)의 ‘우시오스’ 논쟁 등이 다 4세기 안에 일어났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계속 조금씩 발전되어 왔던 것들이 4세기 때 아주 첨예하게 신학화가 되었던 것이죠.

말하다 보니 생각이 나는군요. 기억해 두세요. 이 4세기는 기독교 교리가 완성된 세기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위대한 세기입니다. 니케아 회의나 콘스탄티노플 회의가 다 4세기 때 있었거든요. 물론 그 전부터 많은 논쟁들이 전개되어 왔다가, 4세기에 가서 기독교 교리로 자리를 잡은 겁니다. 정치적으로는 그 유명한 콘스탄틴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선포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을 받은 거죠.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 사람에 의해서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되었다고 말하면 될까요? 그러나 이건 정확한 묘사가 아닙니다. 그때는 이미 기독교가 유럽 세계의 저변에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선포했든 안했든 이미 기독교는 허물어지지 않을 만큼 힘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콘스탄틴은 그러한 기독교의 흐름을 빨리 포착해서 이용했다고 볼 수 있죠. 한편으로 그는 정치가니까요. 그가 그렇게 신앙의 사람이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고요. 하여튼 이 4세기 때 정말 중요한 기독교의 교리들이 결정되었습니다.

4세기 초에 삼위일체 논쟁으로 유명한 아타나시우스가 나오고 뒤로 가면 어거스틴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죠. 그 시대를 교부시대라고 하는데요. 이 때 헬라 철학과 기독교 신학이, 가다머(Gadamer) 식 표현으로 하면 지평융해를 이루었습니다. 가다머의 유명한 해석학 책이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 문학동네)인데요. 해석학의 고전입니다. 그가 말한 것이 지평융해(Horizontverschmelzung)거든요. 텍스트의 지평과 콘텍스트의 지평이 만나서 융해된다는 겁니다. 음식을 먹으면 위 안에서 소화가 되듯이, 새로운 지평, 제3의 지평이 융해되어 나온다는 거죠. 헤겔의 변증법 발상과도 연관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와 헬라 철학의 지평융해를 통해서 기독교가 교리화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기독교의 교리화, 신학화입니다. 제가 자꾸만 옆으로 나가네요. 4세기가 중요하다 보니까 그와 연관된 몇 가지를 짚었습니다.

신약성서든 구약성서든 이미 어떤 역사적 흐름에 의해서 경전의 역할을 했던 것들이 397년에 이르러서 경전으로 결정되었을 뿐입니다. 그 때 왜 복음서를 네 권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는 건데요. 그 상황이 어땠는지는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추정한다면 이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번에도 총선을 했는데요. 각 당에서 추천을 하잖아요. 늘 힘이 팽팽하게 맞선 후보들 중에 누가 미는 사람은 들어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데요. 그와 비슷하게 카르타고에 모인 각 지역의 대표자들이 자기 지역에서 사용하던 문서들을 경전 안에 밀어 넣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기준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걸 나쁘다고 보면 곤란합니다. 종교적인 교리가 결정되는 중에 정치적인 게 조금 연결될 수 있거든요. 여기서는 세속적인 정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종교적인 권리, 교권을 말하는 거예요. 종교적으로 회의를 하고 결정을 할 때도, 결국 주도권을 쥔 쪽으로 회의가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힘이라는 것이 순전히 정략적이고 정치 공학적이냐, 아니면 진리이기 때문에 교권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점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요. 순전히 정치 공학적인 힘만 작용했다면, 그건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허물어지고 말 겁니다. 그러나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정경으로 결정된 것은 진리의 차원에서 영적인 차원에서 타당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정략적인 힘이 개입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바른 선택이었고 네 복음서가 정경에 들어간 것은 아주 잘 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복음서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네 복음서가 모두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제가 요즘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명제로 다비아 사이트에 묵상을 쓰고 있는데, 앞으로 일주일 정도 나가게 될 겁니다. 이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복음서가 이걸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걸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예수라고 하면 자연인 예수를 말합니다. 아버지가 목수 요셉이었고 어머니는 마리아였죠.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큰 아들로 태어난 예수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인 예수가 어떻게 그리스도인가 하는 거죠. 이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초기 기독교는 왜 이걸 고집했을까요? 똑같은 예수를 두고서 유대교는 그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이슬람교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왜 기독교만 그를 구세주라고 인정할까요? 그리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예수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신의 그림자라고 보는 가현설이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교부들이 여기에 아주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예수의 인성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사상이 있으면 이단으로 몰아냈어요. ‘베레 호모’(참된 인간)를 놓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예수가 마리아라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중에서 튀어나온 그림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여자의 몸 안에서 열 달 동안 있다가 태어난 자연인이란 말이죠. 초기 기독교인들은 왜 자연인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한 걸까요? 메시아는 하나님의 현현이거든요. 지금도 이걸 유대인들은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기적이나 그 밖에 특별한 일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당연히 메시아가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들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맥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게 그렇게 당연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을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말이죠. 물론 그게 정답입니다. 그런데 저주의 대상이자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가 어떻게 구원의 길로 이해되었던 걸까요? 초기 기독교인들은 무슨 근거로 가장 수치스런 방식으로 죽었던 예수를, 예수의 십자가를 인류의 보편적인 구원의 길로 선포했을까요? 이미 하나님이 그럴 목적으로 자기 외아들을 보내셨고, 그 아들이 인류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나요?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해석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예수에게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그런 방식으로 해석한 거예요. 물론 계시의 차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원천적인 통치와 힘들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사유와 인식과 해석을 관통했다고 말해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초기 기독교의 해석은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요. 사실은 이것보다도 사도 바울을 많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그리로 넘어갈 수 있겠네요.

지금 우리는 신약성서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했다는 것에 대해 한마디 더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고백은 곧 그들이 생각한 구원 이해의 독특성에서 나옵니다.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에 비해서 초기 기독교인들의 구원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는 겁니다. 예수에게서 일어난 사건을 보고 유대인들은 전혀 구원으로 이해하지 못한 반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구원의 리얼리티로 경험했어요.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인들의 구원 이해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걸 이해해야죠.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은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유기적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가 되지 않아요. 예수가 구세주인 걸 이해하려면 구원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구원을 이해하려면 창조와 종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교리는 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어서 우리와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생물, 살아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로 표현하면 ‘에어아이그니스’(Ereignis)라고 합니다. 생기(生起), 즉 생생하게 움직이는 기운인데, 딱 결정 되어버린 사실, 즉 팩트(fact)와는 다릅니다. 영어로 굳이 번역한다면 이벤트(event)라고 할 수 있어요.

기독교 교리는 유기적으로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 관계를 맺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 있어요. 참 놀랍죠. 우리 인간도 유기적인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과 같은 창조적인 작업이 가능한 거예요. 강의를 하는 것도 유기적인 관계성에서 하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강의하는 것은 저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제가 달리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제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한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저잖아요. 제가 여태껏 걸어왔던 삶의 과정들, 제가 맡았던 꽃향기, 하늘 색깔, 봄기운 같은 것들을 제가 아니면 대신 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 뿐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경험도 저와 똑같이 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제가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학습했지만, 그리고 여전히 미숙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저와 똑같이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기독교를 접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어떤 관계성 속에서 새롭게 하나님의 계시를 열어간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얼마나 놀라워요! 살아 있는 사건이니까,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신학자들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신학자들은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제가 왜 이걸 강조하냐하면, 여러분이 기독교 교리(도그마)를 구구단을 외우듯이 외우고 말거든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도그마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성 속에서 우리에게 손가락질로 가리키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 즉 하나님의 구원통치로 나가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도그마입니다. 군주시대의 군주가 농노들에게 언제까지 세금을 내라고 하는 식의 도그마인 거죠. 그것은 죽은 문자에 불과한 겁니다.

저는 한 학기 동안 강의하면서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게 딱 한 가지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생동적인 것으로 이해하시라는 거죠. 시인의 감수성, 예술가적 감수성, 실험실에서 새로운 물리학적인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과학자와 같은 심정으로 기독교 신앙을 대하라는 겁니다. 그게 영성이거든요. 아프리카 오지에서 새롭게 길을 내는 사람, 기독교가 사실 그런 겁니다. 그것만이 신학적인 영성이에요. 여러분이 그것만이라도 조금 생각을 한다면, 이 강의가 목표로 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겁니다.

 

바울과 기독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명제가 복음서의 중심축인데요, 이것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에 대해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여러분은 사도 바울 하면, 스데반 순교 현장에서 옷을 지키던 모습이나 다메섹 도상의 회심 사건을 떠올리죠? 이런 정보를 어디에서 얻었나요? 사도행전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바울을 생각할 때, 빛을 보고 완전히 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과학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이 말하는 바울과, 바울이 직접 쓴 서신에서 알 수 있는 바울은 좀 달라요. 많은 면에서 다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상당히 연설 솜씨가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는 반면, 서신에 보면 바울은 말에는 부족하다(고후 11:6)는 표현을 썼어요. 그 밖에도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지금은 다메섹 도상 사건을 말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했다는 이야기를 직접 증언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 바울이 직접 증언한 곳이 있으면 저한테 말해 주세요. 제가 아직 바울의 편지에서는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스데반이 순교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도 바울이 직접 증언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전반적인 역사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바울에 대해서도 주로 바울을 변증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에 대한 변증이지 기록영화가 아니에요. 지난주일 저녁에도 제가 주석서를 설명하면 말했지만 성서는 기록영화가 아닙니다. 변증이라는 것은 어떤 사실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뭘 납득시키려고 했는가, 그게 중요하죠. 그 서신들이 가지고 있는 내용, 즉 신학적 진수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져요. 제가 ‘신학적’이라고 말할 때는 신앙과 대립되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영적(spiritual)인 것이 신학적(theological)인 겁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궁극적 진리를 말하기 때문이죠. 영적이라고 하면, 이 세계, 혹은 생명의 가장 밑바탕에서 결정하는 어떤 힘들을 우리가 영이라고 말하잖아요? 신학이라는 말은 데오스(Theos)와 로고스(Logos)의 합성어로 하나님을 이야기한다는 뜻이니까, 생명의 가장 심층적 세계를 말한다고 하는 점에서 볼 때, 영적이라는 것과 신학적이라는 것은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쓰는 용어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학적 진술이든 영적인 진술이든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심층적인 진술이라는 거예요. 그걸 찾아내겠다는 겁니다.

바울의 다마스쿠스 경험이 정말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의 증명서를 가지고 가다가 회심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우리의 머릿속에는 이게 바울이 회심한 결정적인 증거로 각인되어 있어요. 그런데 왜 바울은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요? 물론 자기가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는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그렇게 말하는데요. 그러나 여러분, 그가 반대했던 기독교는 역사에 나타난 그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 기독교예요. 제가 앞에서 초기 기독교의 상황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을 거예요. 유대교가 있고 유대 기독교가 있고 이방 기독교가 있었다고요. 유대 기독교는 어떻게 보면 같은 유대교예요. 유대 기독교는 유대교 안에 나사렛파, 사두개파가 있듯이 그 안에서 같이 기독교적 진리에 대해서 논쟁을 한 겁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바울이 정확하게 거론하지 않지만, 바울이 이방 기독교의 태두가 된 겁니다. 이 과정을 제가 정확히 잡아내지 못했어요. 바울이 처음에는 유대교 안의 바리새인이었어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가장 극단적인 바리새파 운동을 하다가 결국 이방 기독교인이 되었는데요. 그가 예수 부활 경험으로 갑자기 이방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아니면 유대 기독교를 거쳐서 갔는지는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유대 기독교 안에 머물러 있었을 거예요. 직접 이방 기독교인이 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이방 기독교로 가기 전에 그는 신학적 논쟁을 많이 벌였어요. 이방 기독교인이 된 다음에도 유대 기독교와 싸웠고요. 그 내용이 갈라디아서에 나옵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예루살렘 기독교와 헬라 지역의 이방 기독교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의 사도들과 예수님의 동생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고요. 이방 기독교에는 주로 바울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언젠가 설명한 적도 있고 시간도 없으니까, 여기서 접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예루살렘 공동체가 이방 기독교와 거의 이단 논쟁을 하듯이 싸웠다는 겁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바울이 그들을 향해서 너희가 전하는 복음은 가짜라는 식으로 말하거든요. 과연 바울의 이런 공격이 타당한 것일까요? 그것은 좀 더 생각해봐야할 주제입니다. 내용을 보자면 분명히 바울이 옳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로워진다고 하는 칭의론을 극단적으로 붙들고 있어요. 예루살렘에 있는 이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의로워진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토라와 할례도 같이 가야 한다고 했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바울이 전적으로 옳은 거죠.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유대인들의 경전인 구약성서를 그대로 경전으로 받아들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제한다면, 유대 기독교의 입장도 그렇게 틀린 건 아니라는 거죠. 이 두 가지 전통, 즉 유대 기독교 전통과 이방 기독교의 전통이 교회역사 안에 같이 들어온 것 같아요. 그에 대한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건 접어두고 갈라디아서를 중심으로 해서 본다면, 예루살렘교회 공동체와 바울은 도저히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과정을 보면 유대 기독교는 사라졌습니다.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바리새 운동이 극단적으로 일어나면서 유대 기독교는 유대교와 타협하게 되는데요. 그 때 나사렛파의 특징을 살려 나가던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유대 기독교의 나사렛파라고 하는 명맥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되었던 거죠. 신앙적으로 괴멸되고 말았어요. 그 대신 이방 기독교가 기원후 7-80년에 유럽 지역의 큰 종교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바울의 역할이 독특했는데요. 그건 나중에 또 말할 기회가 있으면 하겠습니다.

사도 이야기가 나와서 한 마디 더 하자면, 보통 우리가 열두 사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예수님이 초기에 열두 사도를 임명한 걸로 나오죠.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열두 사도는 역사 후대의 산물입니다. 사도들의 지위가 확고해지면서 열두 사도의 전승이 복음서 안에 들어간 걸로 보고 있어요. 그게 어느 정도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말할 입장이 아니고요. 그냥 그럴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사도들의 권위가 초창기에는 별로 없었다고 봐야겠죠. 사도행전에서도 열두 사도의 활동이 골고루 잘 나타난 게 아니라 몇몇 사람들에게 편중되어 있잖아요. 중간 부분에는 주로 바울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앞부분에도 베드로와 요한 정도지, 그 밖의 사도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서신에도 사도들의 편지는 별로 없어요. 베드로전후서도 베드로의 편지라고 인정지 않거든요.

 

요한계시록

대충 신약성서에 대한 설명을 마쳐야 하는데요. 지금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들이 전반적인 연관성 속에 있었던 초기 기독교의 상황을 강의안과는 상관없이 설명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제가 빼놓았는데요. 요한계시록은 참 중요한 문서입니다. 묵시문학(Apocalyptic)에 속합니다. 이 요한계시록을 많은 사람들이 알레고리로 해석합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숫자, 색깔 등을 신앙의 본질처럼, 아니 신앙의 특징처럼 말하죠. 예를 들면 14만 4천이나 666 같은 숫자를 두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숫자라거나 적그리스도의 숫자라고 합니다. 주로 사이비 이단들이 그렇게 말했는데, 1990년대에 많은 기승을 부렸습니다. 유럽 연합까지도 적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야기하고, 바코드와 연관시키기도 하고요.

이런 관점은 근본적으로 성서의 묵시문학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묵시문학은 현대의 극단적인 난해시라고 생각하면 돼요. 혹은 초현실주의 추상화라고 볼 수도 있죠. 이런 것들은 우리가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지만, 더 궁극적인 예술가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뜬 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요한계시록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묵시문학인 극단적인 상징을 통해서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역사서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당대의 역사도 있지만, 미래의 역사도 있어요. 종말론적인 미래의 역사죠. 종말론적인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요. 전반적인 흐름에서 하나님의 현실들을 진술하고 있는, 예언하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린다거나 바다 속에서 용이 튀어나온다고 하는, 정말 우리가 일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것은 역사를 정확히 뚫어 본 어떤 예언자의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 기자가 처한 삶의 지평에서 그것이 말하는 역사를 해석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나오고, 거기에 가면 생명수가 사시사철 흐른다고 나오는데요. 어떤 목사님들은 이런 것들을 사실처럼 설명하더군요. 어린이들은 거기에 혹하겠죠.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겠어요? 계속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 죽은 다음에 새로운 세상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재미나게 살기 원하세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극단적으로 좋아지는 최고의 복지 국가를 원하세요?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번으로 족해요. 전혀 새로운 생명이 우리에게 온다고 하는, 또는 그 생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묵시문학적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새로운 역사에 대한 희망인 거죠.

계시록은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종말에 가서 완성되니까요. 묵시문학이라는 모판에서 자란 기독교의 역사 이해가 종말론입니다. 종말론은 기독교의 역사관이에요. 세계관이죠. 세계의 흐름이 역사니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현실 안에서 역사를 볼 것인가, 이것을 말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부족한 걸 보충하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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