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만능주의

조회 수 9914 추천 수 1 2009.03.27 21:02:28
 

은혜 만능주의


우리 한국교회만큼 ‘은혜’ 타령이 많은 교회는 없을 것이다. 흡사 서양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아이러뷰’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지만 그들이 우리보다 실제로 사랑이 많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은혜’를 자주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혜 만능주의가 우리의 신앙을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은혜를 무시하고 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서 인식되고 있는 은혜는 거의 인간론의 범주에 축소되어 있다. 예배를 드리거나 설교를 듣고 자기 기분이 좋으면 은혜 받았고 하지만 자기 기분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설교가 좋았어도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이들에게 은혜는 사람의 기분에 불과한 것이다. 혹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청량제 같은 정도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배타적 행위인 은혜를 이렇게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한국교회의 현실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은혜를 사모할 수 있겠는가? 은혜 만능주의는 한국교회의 설교를 타락시키는 원흉이다.

청중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위해서 아첨하거나 위협하는 설교를 우리는 자주 본다. 오늘의 설교자들은 흡사 손님들에게 술을 많이 팔려고 교태를 부리는 작부와 다를 게 없다. 좀 지나친 표현이긴 하지만 이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왜 설교자는 길(道)을 가지 않고 무엇을 팔려고만 하는 것일까?

물론 그들은 그게 모두 복음을 위한 것이라고 둘려댄다. 과연 그럴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릴 것이다. 순수한 사명감으로 그렇게 하는 설교자도 있을 것이고, 또는 목회 성공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설교자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참된 목자와 삯군 목자를 구분하기 쉬지 않기 때문에 복음을 위한다는 명분만으로 기업적 가치와 기술로 목회하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이런 현상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손길이 움직일 때까지 인내심을 가져야만 하겠지.

설교의 진정성은 있지만 은혜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설교자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은혜를 무시하라”이다. 무슨 뜻인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강박증, 조급성을 버리라는 말이다. 복음의 긴박성이야 우리에게 늘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르다.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영역이다. 청중이 은혜를 받는지 아닌지는 하나님이 결정한 문제이다. 청중이 은혜를 받는 것 같아도 그것은 껍질에 불과할 수도 있다. 청중이 은혜를 받지 않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설교자가 구원을 결정할 수 없듯이 은혜도 역시 하나님만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대목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설교자들은 청중들을 들들 볶으면서까지 은혜를 강요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설교자가 해야 할 일은 은혜 자체에 대한 해명이다. 그것의 효과는 오직 성령의 몫이다. 이 은혜가 무엇인지 해명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가 여전히 열려있는 세계인 것처럼 은혜로 역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층적 영성에 근거해서 이 은혜를 해명하도록 노력해야한다. 다층적 영성만으로도 우리의 힘이 모자란 마당에 신자들이 은혜를 받는지 받지 못하는지 신경 쓸 틈이 어디 있는가? 이런 데 신경을 쓴다는 사실은 본인이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열어가는 세계를 전혀 맛보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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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1]유목민

2009.03.28 21:03:27

목회를 하면서 성서 공부를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일요예배와 식사 후 교제(말이 교제지 걍 주저리 주저리 이 야그 저 야그)거 전부였어요.
새벽기도, 삼일예배, 구역예배, 철야... 아득한 부목시절에 해본던 옛 일들입니다.
우리 교인들과 언제쯤 성서공부를 해볼까?
내 목회활동 은퇴 전에 해볼 수 있을까?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자랑하는 목사보다
청년들과 밤 세워 토론해서 피곤하다는 목사가 한없이 부럽더군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관계를 맺고 집중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미루던 숙제를 하고 싶다는 부담감으로 기대 반, 조심 반으로
3주 전부터 목사님께서 보내주신 '조직신학 '으로 걍 시작했습니다.
신자들 수준에 맞에 전문용어를 쉽게 고치고,
신자들에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은 삭제하고....
'신학이란 무엇인가?' 로 시작하면서 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목사님 지금 우리 형편과 수준에 남의 다리 긁고 있어요.' 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놀랍도록 기쁘기도 했고요.
모일 때마다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질문이든지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목사님, 성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성서가 밑어지지 않아요. 목사님 의심해도 되는 거죠?(고럼 고럼)
* 하나님의 통치, 계시,
* 다른 교회 나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답답해요.
*

저에겐 기적을 경험 중이에요.
어느교회 가서 과외 받을 사람들은 아닌디....
울 교회 신자들과 진리가 소통이 된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성령께서 계속해서 만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낼 예배와 예배 후 성서공부가 기다려집니다.
은총의 주일되세요.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9.03.28 23:04:07

임 목사님,
<조직신학해설>을 교재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예상 외로 신자들이 거기에 몰두한다는 거지요?
그것참,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군요.
아마 임 목사님이 그동안 뿌려놓은 복음의 씨앗이
그런 정도의 교재를 받아들일 정도로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된 기초신학 공부인데요,
그 가능성을 주님의교회에서 발견하게 되겠군요.
잘 해 보십시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기독교가 뭐꼬?>를 먼저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군요.
순서가 뭐 중요하겠어요.
좋은 주일 맞으세요.
감사.

[레벨:1]tntboom

2010.09.20 17:52:24

쓰신 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뭔가를 받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게 예배의 목적일텐데 요즘 우리는 너무 받는거에 매달리는거 같습니다. 글들 읽으면서 큰 도움과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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