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폐성

조회 수 5537 추천 수 153 2004.06.30 23:39:03


하나님의 은폐성



우리가 하나님을 꽃이나 새, 또는 안개처럼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속이 시원할텐데 그런 방식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할 때가 많다. 아주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라도 이런 답답증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물론 기도의 응답이 있었다든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과 평화의 마음에 휩싸이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경험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믿음이 부족한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게 아니다. 아마 이 문제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야, 또는 종말이 온 다음에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불가능한가? 그 답이 곧 하나님의 은폐성(Deus absconditus)이다. 하나님은 계시하는 분이지만 동시에 은폐되어 있는 분이다. 성경을 구구절절이 꿰거나, 또는 지금까지의 모든 물리학, 철학에 관한 학문에 능통하더라도 역시 하나님을 완전히 아는 자는 이 세상에 없다.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는 성서도 역시 하나님을 완전하게 밝히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인식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런 하나님은 거룩한 분으로 증언되며, 이 거룩한 분을 직접 본 자는 죽는다고 까지 했다. 즉 못볼 것을 본다는 것은 죽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사건이다.

사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 앞에 이렇듯 명백한 현상으로 드러나 있는 생명도 역시 그 궁극적 사실은 은폐되어 있다. 여기 민들레 꽃이 있다고 하자. 그 꽃은 햇빛과 물과 탄소를 결합해서 자기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분을 생산한다. 우리의 모든 먹거리가 그런 기본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그렇다면 생명의 기초 단위는 햇빛이라는 말일까? 아니면 탄소, 또는 물인가? 그 모든 것인가? 그 중에 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가? 생명공학자가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설명은 현상에 대한 추상적 접근에 불과하지 근본에 대한 완전한 해명은 못된다. 오늘의 첨단 과학이 생명의 기원에 상당히 접근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생명현상에 대한 아무리 많은 정보가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대인들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똑같이 무식한 셈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생명을 말하려면 그것 이전에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해명해야만 한다. 하이덱거가 질문하고 있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감각 범주 안에서만 통용되는 주장에 불과하다. 하이덱거에 의하면 오히려 존재하지 않음으로서 무엇을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 바로 존재(Sein)이다. 이 존재는 존재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는 우리의 감각범주에 들어와 있지 않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런 절대적인 것은 은폐되어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이나 명상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노출되는,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여전히 은폐의 방식으로 노출되는 힘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물질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원자를 기초로 한 어떤 물질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대 물리학은 물질이 있는 게 아니라 빈 공간과 에너지의 결합일 뿐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는 원자는 입자가 아니라 너무나 작아서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핵과 그것보다 더 미세한 전자가 어떤 방식으로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의 핵은 원자를 대형 교회당으로 확대했을 때 그 안에 있는 찬송가 악보의 작은 보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공간일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핵 마저도 역시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은 물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아직 모른다는 것, 즉 물질 자체가 은폐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 존재, 물질의 은폐와 연관된 하나님의 은폐는 그렇게 어둠으로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에서 하나님이 계시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계시 마저도 역시 완전한 노출이 아니라 은폐의 방식을 취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예수의 부활에서 자기를 은폐의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게 바로 신학이며 설교다. 바로 이 예수 사건에 이 우주의 모든 비밀을 풀 수 있는 토대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조금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예수의 부활에서 종말이 이미(schon) 선취적으로 발생했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아직은 완료되지 않은(noch nicht) 상태라고 믿는다. 계시와 은폐의 변증법으로 우리 기독교는 세상을 해석하고 구원론적 지평을 제시하는 중이다.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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