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영성

조회 수 4981 추천 수 104 2004.06.30 23:39:55
신학과 영성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는 신학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어떤 교회는 노골적으로 신학을 비난하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는 그렇게 딱 부러지게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거의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외면적으로 지성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라고 하더라도 그저 교양이 있을 뿐이지 신학적이지 못하다. 신학은 단지 목사가 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에 불과하지 실제 목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현장에 있는 목사들은 신학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신학자들이 아무리 책을 쓰거나 번역해 놓아도 목회자들이 읽지 않으니까 신학서적을 출판하는 회사 경영이 어렵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양서 출판이 더욱 곤란해진다. 이렇듯 한국 교회에서 신학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목사들이 목회를 경영의 차원에서 생각함으로써 원칙과 본질보다는 현장의 쓰임새에만 신경을 쓴다는 이유도 있긴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신학이 별로 영적이지 못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기에는 목회자와 신학자, 양쪽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우선 신학자의 책임은 아주 명확하다. 그들은 신학을 일종의 학문적 이론으로만 생각하지 그런 이론 뒤에 있는, 또는 그 깊이에 있는 보다 본질적인 실질을 놓치고 있다. 그들의 신학에 리얼리티가 없다는 말이다. 예컨대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 학설들을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가현설이나 에비온주의, 아다나시우스와 아리우스 논쟁 등을 중심으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 현대신학에서 이 기독론이 어떻게 확대 해석되었는지에 대해서 많은 주장들을 소개하고 자기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 논의들이 드러내고자 한 본질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식이나 경험이 없다. 그러다 보니 결국 누가 어떻게 주장했다는 것만 논리적으로 설명할 뿐이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드러내려는 그 세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의 이론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공부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사랑 자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신학이론이나 체계는 아무리 장황하고 화려해도 정보에 불과하다. 신학은 이런 신학 정보를 많이 확보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에 그 무게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신학은 죽은 학문이다.

이런 문제는 조직신학이나 성서신학처럼 철저하게 이론적인 분과에만이 아니라 윤리학이나 실천신학처럼 실천적인 분과에도 역시 똑같이 적용된다. 즉 기독교 윤리학은 사회봉사를 강조하기 때문에 건강하다거나, 실천신학은 기도를 많이 하게 하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사실상 그런 사회봉사나 기도와 같은 교회생활 자체가 경우에 따라서 인간의 욕망일 가능성이 늘 있다는 인간학적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실천적 분과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세계와 그 나라에 대한 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어떻게 생명에 대한 깊은 체험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곧 영성이다. 이런 점에서 신학은 기본적으로 영성을 기초로 한다. 이런 영적 체험이 반드시 어떤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생명의 힘으로 이 세계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에게 자기를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인간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분의 영이 핵심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이 신학을 단지 정보로서만 생각함으로써 결국 이런 하나님과 그 영을 놓치고 그저 인간 인식이나 실천에만 머물러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목회자들은 영성을 어떤 주술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합리적인 인식론을 무시하고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어떤 초월적인 세계에 이르게 하는 힘을 영성이라고 본다. 교회 안에서는 영적이라는 말과 비이성적이라는 말이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가정 일이나 사회생활을 가능한대로 팽개치고 자나깨나 기도와 찬송만 한다거나 신자들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기도해주는 이들로 간주된다. 이런 사람들은 툭하면 기도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심지어는 김 집사에게 무슨무슨 귀신이 붙어있는 게 보인다고 까지 주장한다. 만약 교회가 이런 상태를 영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독교의 영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참으로 영적인 사람은 옳고 그름을 가장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영성의 토대는 바로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신학의 부재와 영성의 왜곡이라는 위기 가운데 빠져있다. 물론 대개의 사람들은 신학이 없는 상황에서, 또한 영성이 왜곡되어 있어도 여전히 교회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위기를 별로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늘 교회만, 그것도 가시적인 교회만 자신들이 숙고해야할 절대적인 대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그것보다 훨씬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하나님과 그의 영이 왜곡되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서 신학적 바탕이 탄탄한 교회와 영적 리얼리티가 풍성한 신학이 조화를 이룰 날은 언제일까?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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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8.11 13:34:30

영성(靈聖)?
하나님을 바로 아는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레벨:5]존재

2013.08.12 19:29:17

성서기자들이 말하는 예수를 바로 아는것이 영성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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