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조회 수 5821 추천 수 82 2004.07.01 14:26:05
부활



간혹 3월 하순경에 부활절이 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4월에 부활절이 들어있다.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아울러서 기독교의 3대 절기의 하나인 부활절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이 부활절을 하나의 절기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즉 예수님이 직접 부활했건 하지 않았건,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부활하건 하지 않건 상관없이 그저 하나의 절기로서만 지킬 뿐이다. 여기에는 부활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이해가 깔려 있다.

하나는 부활을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한다. 죽지 않고, 늙지 않고 젊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토대를 두고 예수의 부활을 주술적인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은 죽기 이전의 본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간혹 오늘의 기독교 안에서도 누가 죽어서 천당에 갔다고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서 베스트 셀러까지 되는 실정이니까 인간이 다시 살고 싶다는 욕망은 거의 숙명적인 것이라 할 만 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마술적인 차원에서 이해함으로써 그것이 말하려는 근본 의미를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예수의 부활을 단순히 인간의 실존적 경험으로 격하시키는 태도이다. 불트만 신학의 특징이라 할 실존주의 신학은 예수 부활의 역사성에는 아무런 무게가 없으며 단지 제자들의 실존적 경험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아마 오늘의 적지 않은 지성적 기독교인들은 이런 주장에 솔깃해 할 것이다. 실증적 과학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신화적 사건이기 때문에 단지 실존적 경험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즉 부활 사건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예수의 극진한 사랑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이다.

부활을 주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거나 아니면 실존적 경험의 차원에서만 받아들이려는 이러한 두 가지 잘못된 이해를 극복하고 성서가 원래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 부활에 대한 복음서와 바울의 서신들, 그리고 구약의 묵시문학적 언급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면서, 아울러 오늘의 일반적인 생명연구도 가능한대로 복합적으로 다루어 가면 좋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지면 형편상 복음서와 바울 서신만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보자.

복음서가 보도하고 있는 예수의 부활사건은 어떤 명백한 논리적 구조가 아니라 자신들도 예상할 수 없었던 현상에 대한 솔직하고 산만한, 그래서 비논리적인 진술 형식을 띄고 있다. 예수의 시체가 안장된 아리마데 요셉의 가족묘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사실적인 묘사가 없다. 마술적인 사건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제자들의 어떤 의도가 숨어 있었다면 그럴듯한 설명이 있었을텐데 예수 부활 보도에는 그런 설명이 하나도 없었다. 자기들 앞에 현상으로 다시 나타난 예수는 보통 인간처럼 말도 하고 먹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흡사 혼령처럼 문을 닫아두었는데도 어느 사이에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 부활한 예수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도 나타났고, 어떤 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두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기도 했고, 바울의 보도에 의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 앞에, 그리고 자기에게도 나타났다. 부활한 예수의 나타남에 대한 신약성서의 보도는 어떤 일관성을 보이지 않고, 단지 죽었다가 다시 나타났다는 이 두 가지 사실에만 집중되고 있다. 한 걸음 나가서 이 부활한 예수는 결국 승천 사건으로 다시 그들에게서 사라진다. 그러니까 예수는 역사 안에서 33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살다가, 3일 동안 죽음의 상태에 들어갔으며, 다시 나타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지내다가, 결국 하늘 나라로 옮기셨다는 말이 된다.

바울은 그 유명한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 부활 문제를 매우 수려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예수의 부활이 얼마나 확실한가 하는 점을 여러 증인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확증한 후에, 우리도 역시 그렇게 부활한다는 점을 증언한다. 그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고전 15:51-53). 이 구절에서 핵심은 "변화"와 "입는다"에 있다. 즉 우리의 부활은 결국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이미 그렇게 변화한 분의 능력으로 옷을 갈아입듯이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부활은 곧 우리가 이 땅에서 확인할 수 없는 생명 양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썩기 때문에 이런 것과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생명 형식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이냐에 대해서 우리는 명확한 답변을 제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식은 늘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 문제를 소극적 방식으로 이렇게 규정할 수 있을 뿐이다. 썩지 않는 생명이라고 말이다. 그런 썩지 않는 생명이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덧입혀진다고 말이다. (2003년3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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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07.06.11 23:00:40

매트릭스에서 다시 살아난 네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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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8.11 13:40:12

부활(復活)?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심을 확인하는 증거라고 스스로 정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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