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메시아 인식

조회 수 5867 추천 수 76 2004.07.01 15:11:21


             예수의 메시아 인식



오늘 나는 어떤 답을 전제하고 이 주제를 묵상하려고 하지 않는다. 거의 전적으로 교회생활에 매달렸던 고등학생 때와 신학대학교에 다닐 때 가졌던 궁금증을 이제 30년이 지나서 다시 되새겨보려는 것뿐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언제 인식하셨을까?"

복음서를 찬찬히 살펴보면 예수 자신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별로 없다. 이 말은 곧 간접적으로는 언급한 적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증빙은 거의 요한복음에 집중되어 있다. 그 이유는 공관복음서가 예수에 대한 사실적 보도에 기울어진 반면에 요한복음은 해석된 예수에 대한 변증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와 연결시켜서 이 관계를 다시 정리한다면 공관복음서는 예수에 대한 메시야 고백 이전의 보도인 반면에 요한복음은 그 고백 이후의 증언이다. 물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개괄적인 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요한복음은 시기적으로도 공관복음에 비해 훨씬 늦게 형성된 탓에 상당한 전승사를 통해서 소화된 초기 기독교의 신앙을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신앙은 곧 역사적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의 정체(identity)에 대한 증언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본문은 마태복음 16:13-20(막 8:27-30, 눅 9:18-21)이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는가에 대한 예수의 질문과 제자들의 대답이 오간 후에 베드로의 그 유명한 신앙고백이 등장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절).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을 들은 예수는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으며, 이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예수는 이 본문에서 스스로 "나는 메시아이다"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물론 부정하신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예수는 자기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리셨지 직접적으로 선포하지는 않으셨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그 많은 예수의 정체에 대한 증언도 거의 이런 형식으로 전개된다.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는 좀더 직접적인 형식을 취한다. 그 여인이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시겠지요."(요4:25). 그 즉시 예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26절). 이 텍스트가 예수의 자기 해명에서 가장 직접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명시적인 언급은 아니다. 한 여자의 표현을 빌려서 여전히 간접적으로 해명할 뿐이다. 마르다와의 대화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 11:25,26). 물론 그 이외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등등의 언급이 예수의 자기 해명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신을 아들로 표현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러나 이런 구절들은 한결같이 간접적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좁혀 생각해보자. 우선 유대인들의 메시아 상(像)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자기 메시아성(性)을 직접적으로 선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수반하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메시아였다. 메시아로서 예수가 걸어간 길을 아무리 설명해준다고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자기 자신의 정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다. 단지 간접적으로 그런 메시아의 징표들을 보여주고 증언할 수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예수의 메시아 인식에 관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예수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메시아성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었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예수는 십자가를 져야할 마지막 순간에도 가능한 대로 그 잔을 받지 않기를 바랐으며,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왜 나를 버리시는가!"라고 외치셨다는 복음서 기자들의 증언을 미루어보면 그런 개연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예수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여긴 게 틀림없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을 뿐인데, 초기 기독교는 그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를 동일시하게 되었다. 선포의 대상이 선포하는 자와 일치를 이룬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메시아 인식이 불분명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런 인식이 기계적인 차원에서 증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변호사나 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따는 것처럼 예수에게 메시아 자격이 그런 방식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메시아 인식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금식 기도하면서 마귀에게 시험받던 그 시기에 메시아 인식이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였을까? 아니면 십자가에 달릴 때까지 그런 인식이 완전하지 못했지만 부활 사건으로 인해서 그가 메시아였다는 사실일 확인된 것일까? 우리는 그것의 세밀한 내막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역사적 예수가 바로 메시아였다는 사실만을 알고 믿을 뿐이며, 따라서 그가 이 세상 끝날 다시 오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며 기다릴 뿐이다.

                                                     <1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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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8.12 15:16:02

예수의 메시아의 인식(因識)?
정목사님의 마지막 정리 말씀이 와 닿는다.
부활사건을 통해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릴 뿐이라는 맺음에 소망을 해 본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어서 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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