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말씀하시는가?

조회 수 5420 추천 수 177 2004.07.01 15:12:01


           하나님은 말씀하시는가?  



우리가 성서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미 태초에 하나님은 "빛이여, 있으라!"는 말씀을 통해서 빛을 창조하셨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친구 사이의 대화처럼 묘사된 부분도 적지 않다. 이런 일련의 성서 보도를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고지식하게 하나님도 우리 인간처럼 입이 있어서 말씀하신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어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직접 들었다고 간증하고 다니는 이들도 없지 않다. 나는 아직도 그런 분들의 영적 깊이를 따라잡을 만한 준비가 못되었기 때문에 가타부타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그런 신앙적 태도가 바람직한 게 아니라는 점만은 신학적인 토대에서 해명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우선 하나님의 존재론과 언어의 관계를 정리해야만 한다. 우리 인간의 경우에 그 존재와 언어가 구별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경우에는 일치되어 있다. 박 아무개가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은 박 아무개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그 사람 자체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박 아무개는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는 신실하다"고 말씀하신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말에 존재한다. 하나님이 신실하지 않으면서도 신실하다고 말씀하실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신실하다는 말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학에서는 '말씀 계시'가 하나님의 존재론과 인식론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작동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계시한다는 이 명제에 근거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론과 그에 대한 우리의 인식론을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 문제 앞에서 바른 길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사물의 존재방식에 지나칠 정도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여기 푸른색의 꽃병이 있다고 하자. 우리가 이 꽃병을 확인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일단은 우리가 손으로 만져보고, 또는 모양과 색깔을 눈으로 봄으로써 그것이 "여기에 있다"고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인지, 자기 돈으로 산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탐구심이 많은 학생들이라면 이 꽃병이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꽃을 위한 것인지, 값은 얼마인지 등등,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범주로서 어떤 사물을 확인하는 우리의 인식론을 하나님에게까지 적용시키게 되면 하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빚게 된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물화하려는 인간의 의도를 경계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신다. 더 철저하게 설명하자면 그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우리가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궁극적인 것을 인식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은 곧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직접 본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 유한하고 잠정적인 이 세상의 구성요소에 불과한 인간이 그것을 초월해 있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죽음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흡사 필터를 통해서 태양을 보면 그런 대로 괜찮지만 직접 태양을 보면 우리의 시력을 상실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물이 아니라 말씀으로 존재하신다고. 요한복음 1장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로고스)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물론 여기서 언급된 말씀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소리를 뜻한다기보다는 '로고스'라는 헬라어가 의미하고 있듯이 존재의 근거인 언어와 이성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생명의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으로서의 언어존재론인 셈이다. 노자와 장자의 도를 단지 개념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요한복음의 이 로고스를 오늘 우리의 일상적 경험 세계에서 명증하게 구별해낼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을 계속 초월하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말씀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계시에 대해서 침묵해야만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자기를 계시하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인식할 수 있으며, 또한 그를 설명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다만 그의 계시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려는 방식을 취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지만 간접적 방식으로 하신다. 때로는 시인의 직관을 통해서, 때로는 과학자들의 통찰을 통해서, 더욱이 신학자와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훨씬 자주, 훨씬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궁극적으로는 예수의 부활에서 증명되어야 할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런 간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기 위해서 오늘의 신학자와 설교자는 철학과 과학과 문학, 더 나아가 타종교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종말에 완성하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이 역사 전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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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8.12 15:42:50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가?
내 자신이 귀를 자세히 기울이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바를 알 수있지만, 조금은 무심하게 냉소적으로 외면하면 그 말씀을 들을수가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 가고 있다.

[레벨:0]신산배

2008.01.24 21:47:16

내가 애써 외면하려고 할때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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