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

조회 수 4884 추천 수 0 2009.02.07 22:34:38
 

역사적 예수


기독교의 구원에 대한 질문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질문과 동일하다는 점과 구약성서를 함께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기독교와 유대교가 예수를 다르게 판단하는 이유가 구원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강의 말머리에서 지적했다. 결국 기독교가 유대교를 비롯해서 여러 종교들, 더 나아가서 이 세속의 사이비 구원론과 정당하게 경쟁하려면 우리의 구원론을 보편적 지평에서 해석하고 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런 관점을 배경에 놓고 우리가 메시아로 고백하는 예수에 관한 우리의 독특한 신앙고백을 해명해야 할 단계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구원은 곧 예수의 운명, 그의 삶, 그의 사건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곧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가 어떤 관계인에 관한 해명이기도 하다. 이것은 곧 역사적인 예수가 바로 그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는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우리의 믿음에 어떤 정당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 사실, 즉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를 이 세계가 동의할 수 있도록 이론적 체계를 세우는 게 바로 신학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단지 조직신학의 한 부분으로서만이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운명이 달린 주제라 할 수 있다. 우선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개념을 살펴보자.

역사적 예수: 복음서가 예수를 지칭할 때 그의 출신지인 ‘나사렛’을 앞에 붙여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즉 예수는 역사를 초월해서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안에 등장한 존재라는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다. 출생지는 베들레헴이지만 줄곧 나사렛에서 성장한 예수는 목수 요셉의 아들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와 똑같이 역사적 한계 안에서 살다가 끝내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과연 역사적 예수는 누구인가? 그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슨 일을 했나? 그의 삶 전체를 끌어가던 동력인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무엇인가? 그는 뛰어난 유대 랍비였는가, 세례 요한의 뒤를 이은 예언자였는가, 민중 해방을 외친 혁명가였는가, 경건한 수도승이었는가?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를 역사적(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경솔한 행동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예수가 참된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신약성서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확실하게 지켜내려고 했던 요소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복음서와 사도신경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언급하는 이유는 예수의 육체적 사실성에 대한 강조였다. 예수는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여자의 몸을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의 강조라는 말이다. 교부 시대에 예수의 인간성을 부정하고 신성만을 강조한 가현설(docetism)이 이단으로 단죄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교회가 예수의 인간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절치부심했다는 역사적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신학에서는 주로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계열의 학자들이 ‘역사적 예수’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소위 ‘예수 세미나’를 통해서 예수가 당시에 소외된 계층의 해방을 투쟁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려고 노력한다. 이런 접근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성서에서 ‘역사적 예수’를 완전하게 복원한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느 정도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혁명나 복지향상에 종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노력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역사적 예수’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역사를 혁명으로 이끌기 위한 게 아니라 예수 운명과 사건의 역사적 확실성에 토대를 놓기 위한 것이다.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나사렛 출신의 예수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존재이지만 그 역사 안에 한정되지 않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의해서 ‘그리스도’로 고백되었다. 이렇게 고백된 예수를 가리켜 우리는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라고 일컫는다. 이 말은 곧 예수에 의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그것을 선포한 예수와 동일시되었다는 뜻이다. 구원을 선포한 사람이 바로 구원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를 통해서 환자가 치료되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죄를 회개하고, 평화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건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문제는 증명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초기 공동체의 부활경험이 이런 사태의 핵심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연한 증거는 될 수 없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집단이 바로 사도들과 원시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경험과 그 고백이다. 예수의 공생애에 함께 했던 사람들,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예수는 단지 역사적인 인물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 고백되었다. 과연 그들의 인식에 어떤 충격이,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우리와 동일한 인격체였던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그리스도,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그 질문에 대답하려는 건 아니다. 예수를 단지 사람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고백한 초기 기독교의 신앙이 바로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그런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다. 어떻게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가? 특히 지성적인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의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미 교부시대에도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인성만 인정하는 ‘에비온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교부들은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가현설을 이단으로 단죄했듯이, 에비온주의자들도 이단으로 척결하고 예수를 “참된 신, 참된 인간”(vere Deus, vere homo)으로 규정했다. 이런 고백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논쟁의 긴 역사가 있었다는 건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진리의 역사는 이렇게 논쟁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레벨:2]바라바

2010.03.11 11:31:14

왜? 아직도 그 논쟁은 계속되고 있을까요? 신학의 주된 변증이 예수를 통하여 신에게 다가가고 소통하는 변증이 바로 신학이라면 앞으로도 계속되어질 변증이고 그리스도를 해명해야할 내용 자체가 신학이 아닌가 여겨지네요.

[레벨:5]루이스

2012.07.09 15:45:47

그래서 많이 싸워야 합니다

자신안에서 일어나는 모순과 이성의 충돌

합리와 불합리 사이의 갈등

진리는 고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덮어놓고 믿어지지도 않고

믿으란다고 믿어지지도 않는 이 어정쩡함 혼돈감

꿈, 환상, 체험, 전도, 계시등...

불러놓으시고는 침묵하시는 하나님

텍스트 한권 성경

그 시작과 끝 예수그리스도

신학의 핵심  천국의 열쇠

 

사도신조에 일단 돛을 걸어놓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안에서

베드로처럼 자신의 영혼을 낚는다

 

논쟁

자신의 설득작업이다

자신이 설득된 뒤에는 남과 싸우지 않는다

지성을 넘어야 영성이 희미하게 다가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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