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스트레칭

조회 수 4474 추천 수 0 2009.02.07 22:44:25
 

영의 스트레칭


사십 대만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테니스 운동을 한 다음 날 아침에 몸 전체가 뻑쩍찌근하다. 특히 발목이 시큰거리는 일이 많다. 그래서 가능한대로 운동 전후에 충분하게 스트레칭을 한다. 아무리 스트레칭을 충분히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내 몸이 녹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아마 그렇게 멀지 않아서 테니스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나이가 먹어 어쩔 수 없을 때가 오기 전까지 내 몸을 그런대로 온전하게 보존하려면 운동을 하는 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스트레칭을 해 두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프로 운동선수들에게도 스트레칭은 매우 중요하다. 투수들은 한 게임을 뛰고 난 다음에 안마사에게 비명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도 높은 안마를 받는다고 한다. 발레리나들도 역시 스트레칭은 기본이다. 춤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발끝에서부터 목까지 전체 몸이 유연해지도록 스트레칭을 한다.

우리의 몸에 스트레칭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의 근육과 관절이 평소에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풀어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평소에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근육과 관절에 자극을 줌으로써 몸 전체가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이유가 중요하다. 우리가 평소에 생활할 때 사용하는 근육은 그렇게 많지 않다. 허리도 겨우 10도 정도만 뒤로 젖힐 뿐이지 그 이상은 없다. 목 근육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프로 운동선수들의 사용하는 근육도 한정되어 있으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두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경직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불편한 게 없을지 모르지만 스트레칭 없이 평생 살다보면 결국 우리의 몸은 일부분만 활동하게 되고, 급기야 나머지 근육도 역시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트레칭이 귀찮아질수록 우리는 더욱 성실하게 스트레칭을 하는 게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첩경인지 모르겠다.

내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인체 공학에 대해서 장황하게 언급했을까? 정신활동도 몸의 활동과 마찬가지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 혹은 영도 평소에는 일부분만 움직인다. 흡사 일상생활에서 우리 몸의 일부만 움직이듯이 말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이것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대개의 사람들은 평생 똑같은 신앙의 패턴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교회 생활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고, 집사, 장로 되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 그들은 이미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믿을 뿐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조차 희미해진 채 그냥 신앙의 형식만 강조하게 된다.

기독교 신자들이 사용하는 신앙적 언어를 살펴보라. 단지 몇 단어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흡사 어린아이들의 언어 사용이 미숙하듯이 기독교 신자들의 언어 사용도 역시 그렇다. 나는 이런 분들을 무시하거나 냉소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나름으로 최선을 다 한 것뿐이다. 그렇게 자기가 아는 진리 안에서 성실하게 한 평생 사는 것도 아름다운 삶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를 훨씬 역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모르겠다.

이렇게 비유해보자. 옛날에는 밭일에 시달린 사람들이 노인이 되면 대개 허리가 굽는 경우가 많았다. 늘 허리를 굽히고 살았기 때문에 근육이 그쪽으로 경직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똑같은 환경이었지만 꾸준하게 스트레칭을 했기 때문에 늙어서도 허리를 곧추 세울 수 있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과 반듯한 노인이 있듯이 영적인 면에서 이렇게 한쪽으로 경직된 사람과 원활하게 생명이 소통된 사람이 있다. 여기에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평소에 영적인 스트레칭을 한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아닐는지.

도대체 영적인 스트레칭이라는 무엇일까? 위에서 몸의 스트레칭이 경직된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는 것이기도 하고, 평소에 쓰지 않는 부분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적인 면에서 평소에 쓰지 않는 부분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인 성찰을 진지하게 수행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는 모든 걸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진행하고 있다. 설교도 그렇고, 예배도 그렇다. 그냥 신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신앙생활이 평생 계속된다면 그는 분명히 영적으로 꼽추가 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적인 스트레칭을 해야 하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은 신학적 훈련이다. 신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문적인 신학공부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 현장의 설교는 몇 가지 신앙적 명제만 반복해서 선포하지만 신학은 매우 다양하고 심층적인 영적인 세계로 들어간다. 종말론만 해도 그렇다. 설교는 종말론을 단지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일어나게 될 우주의 마지막으로만 설명하고 말지만 신학은 종말과 역사의 관계를 매우 다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이 세상살이에도 힘든 평신도들에게 신학적 사유를 하라고 강요하는 건 그렇게 지혜로운 게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스트레칭이 필요하듯이 가끔 신학적인 자극을 제공할 필요는 있다. 나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평소에 드리는 주일 공동예배는 기초적인 구원론에 관한 설교를 중심으로 드리고, 대신 절기별 수련회나 부흥회는 신학 특강이나 세미나를 여는 게 좋다. 비록 신자들이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스트레칭은 재미는 없고 아프기만 하지만 결국 몸을 유연하게 하는 것처럼 신학 강연은 신자들의 영성을 유연하게 만들기에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근본적으로 스트레칭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이미 몸이 한쪽으로 완전하게 경직된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에게 스트레칭을 요구한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생활습관을 정반대로 바꾸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영적으로 꼽추가 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영적으로 스트레칭을 할 만한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어떤 부분이 경직되었는지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지만 더 늦기 전에 영적인 스트레칭을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영적 삶에서 사용하지 않은 부분이 어디인지 성찰하고, 비록 귀찮고 재미없겠지만 그 부분을 자극하고 풀어주어야 한다. 생명의 영인 성령은 경직된 마음에서는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오늘 저녁에도 테니스를 쳤으니 귀찮더라도 자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스트레칭을 해야겠다.


[레벨:17]까마귀

2009.02.25 08:08:39

스트레칭을 자주 하시는 모양이네요. 저도 본받아서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언젠가, 버트런트 럿셀이 이런 말을 했어요. 철학자는 심오한 진리를 알려고 노력할 뿐아니라, 그 진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도 애써야 하는 이중고의 상태에 있다고 말입니다.
신학자는 더더욱 그런 어려운 처지에 있지요. 그런데, 정목사님은 어려운 주제, 심각한 주제를 그저 술술 일상적인 표현과 예를 들어가며, 얘기(해명도 아니지요)하는 듯하시며 곧장 핵심으로 들어가지요. 대단하세요. 그게 어쩌면 정목사님의 매력인지도 모릅니다. 벌써 제가 아부를 많이 하고 있네요. 사실인데 어떡합니까. 럿셀은 대중적이었는데, 한국의 대중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확실히 선지자의 말씀(?) 인것 같네요. 남은자들만 알아들으니 말입니다. 귀찮더라도 저도 한번더 스트레칭 해야 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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