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집중하기(7)

조회 수 4921 추천 수 0 2009.03.21 17:39:24
 

예배에 집중하기(7)


오늘 큰 딸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 아이가 대학교 졸업반이던 시절에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서 담소하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설교 앞부분에 나오는 남북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자기의 귀에 잘 들어왔는데, 본문의 에스겔이 처한 상황에 관한 이야기부터 다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 들어봐라 해도 딸은 내 설교에 집중할 수 없는가 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분명하다. 남북관계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자기가 알고 있지만 에스겔에 관한 성서이야기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안다는 말이나 모른다는 말은 곧 그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닌가라는 뜻이다. 내 딸에는 에스겔 이야기가 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설교자인 나는 이 이야기를 그 아이에게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해야 한다. 내 딸만을 위한 설교라고 한다면 나는 가능한 에스겔의 이야기를 줄이고 대신 딸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이야기를 주로 전해야 할 것이다.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독일어에 대해서 말하거나 독일유학에 관한 정보를 말하면, 또는 요즘 가수나 개그맨들에 관해서 말하면 그 아이는 한눈팔지 않고 들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에 성서를 약간 가미하면 된다. 청중이 설교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길이 최선이고, 어쩌면 유일한 길인지 모른다.

또 하나의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은 내 딸이 성서의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있도록 계몽시키는 것이다. 역사, 죽음, 생명, 죄, 폭력, 사랑, 분노 등등, 성서의 중심 세계에 조금씩 눈뜨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이런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그런 세계로 영적인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영적인 사건과 사태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성서의 영적인 세계에 마음을 고정시킬 수가 없다. 이게 바로 예배에 집중할 수 없는 핵심문제이기도 하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그 찬송가의 내용을 현실로 경험하는 신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만유의 주, 경배, 은총, 찬양, 영화로우신 주, 예수이름 높이이어 등등, 이런 찬송가 내용을 깊이 경험하지 못한다. 물론 찬송을 부르면 울거나 환희에 젖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특히 복음찬송을 열정적으로 부르는 청년들에게서 그런 현상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찬송가의 내용과 음률에 푹 빠지는 건지 아니면 자기 연민에 휩싸이는 건지는 조금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사람은 아무런 내용도 없이 단지 자신의 감정에 빠져서도 얼마든지 엑스타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예배에 집중하면 좋지 않으냐, 하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니 만도 못하다. 그런 방식의 찬송과 예배는 자유로운 성령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예배와 찬송이 반복되면 기독교 영성은 기계화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 더 강력한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길인가? 성서의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설교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길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현실(reality)로 경험하지 못하는 오늘의 신자들이 어떻게 성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일단 접어야 한다. 내 딸들이 내 설교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그만두자는 말이다. 그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예배 인도자와 설교자가 중요한다. 더 나아가 예배 자체가 중요하다. 예배 인도자, 설교자, 예배가 하나님에게 집중되고 있다면 비록 그런 준비가 되지 못한 신자라고 하더라도 시나브로 그런 세계에 빠져들 것이다. 그건 하루 이틀에 해결되는 게 아니니, 교회 지도자들은 성급한 마음을 거두어야 한다. 성급한 마음에서 소위 <열린예배>가 나왔을 것이다. 목사들이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고 있다면 신자들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겠는가.

문제는 우리 목사들의 영성이다. 나도 설교와 예배에서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많은데, 그건 결국 나의 영적 경지가 여전히 허술하다는 의미이다. 그것도 어쩔 수 없다. 억지로, 졸지에 영성이 깊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성의 대가들과 접촉하다보면, 그래서 그들을 조금씩 흉내내다보면, 프로 9단 프로 기사들의 바둑을 흉내 내다가 자기도 모르게 바둑 실력이 늘듯이 우리도 영성의 깊이와 높이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일단 나선 길이니 우리 한번 함께 가봅시다.



[레벨:17]까마귀

2009.05.03 08:40:51

샘터교회 주보를 통해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르트의 그 길고 난해한 얘기를 정목사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바르트는 교수로서 이론이 강했다면, 어쩌면 정목사님 목회 현장에서 그렇게 프락시스(실천?) 하시니 그게 더 대단한 거란 생각이 듭니다. 말미에 "일단 나선 길이니 우리 한번 함께 가 봅시다" 감히 조심스레 대답해 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80 예수의 재림 [12] 2009-03-26 10801
179 예수는 (나에게) 누군가? [1] 2009-03-21 9086
178 예배와 사도신경 2009-03-21 15307
» 예배에 집중하기(7) [1] 2009-03-21 4921
176 예배에 집중하기(6) [3] 2009-03-14 4679
175 예배에 집중하기(5) [4] 2009-03-13 4669
174 예배에 집중하기 (4) [1] 2009-03-12 4430
173 예배에 집중하기 (3) [2] 2009-03-11 4824
172 예배에 집중하기(2) [2] 2009-03-07 5218
171 예배에 집중하기(1) [1] 2009-03-07 5386
170 영적인 삶 2009-03-07 4785
169 영적인 사람 2009-02-07 7455
168 영의 스트레칭 [1] 2009-02-07 4473
167 영성과 열정 [3] 2009-02-07 6721
166 역사적 예수 [2] 2009-02-07 4883
165 예수의 십자가는 필연인가, 우연인가? file [23] 2009-01-26 12692
164 [신학단상] 출간을 위한 준비 [11] 2008-08-21 6875
163 주일 예배 공동체! [7] 2009-01-08 6458
162 십자가 신앙 [6] 2008-11-15 8552
161 십일조 헌금(1) [8] 2008-11-15 8884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