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한계

조회 수 3523 추천 수 1 2008.09.20 21:52:03
설교의 한계
-설교에서 못 다한 이야기-

설교는 성서 텍스트와의 대화에 기초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두 사람의 생각이 창조적으로 살아있을 때 참된 대화가 가능하듯이 성서 텍스트와의 대화에서도 역시 성서 텍스트와 설교자의 생각이 창조적으로 살아있을 때 살아있는 설교가 가능하다.
그러나 설교의 대화는 일반적인 대화와 형편이 조금 다르다. 성서 텍스트는 현재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교가 자칫하면 설교자의 일방적인 독백으로 끝나는 수가 많다. 일단 설교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해놓고 성서 텍스트를 이용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런 방식에서 성서 텍스트는 침묵한다. 성서 텍스트가 말을 하게 하려면 설교자가 말을 걸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설교자가 성서텍스트의 영적 경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말을 걸줄 모른다. 설교자와 성서 텍스트가 대화하면 청중들은 그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 대화의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 세계 안으로 들어오면서 청중들도 이 대화에서 한 몫을 감당하게 된다. 설교자는 말을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간다면 청중들은 들으면서 대화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이게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설교자가 꾸준히 성서 텍스트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준비를 하면 어느 사이에 성서가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나는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소위 제1 이사야와 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인 이사야의 영혼을 흔들고 있었는지? 이사야는 상대방이 듣고 기분이 아주 나쁠 정도로 그렇게 노골적으로 비판했는지? 한 편의 설교에서 모든 걸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건너뛰어야만 했다. 그중의 하나를 이렇게 설교 후일담 형식으로 짚겠다. 이사야가 예언하던 바로 그 시대에 이사야와 대립하던 사람들의 심정이 그것이다. 그들은 이사야의 비판을 듣고 아마 벌레 씹은 심정이 아니었겠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활동하던 제사장들이 나름으로 최선을 다 기울여 제사를 드리고 있었으며, 많은 청중들이 이 제사에 참여해서 감동(은혜)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귀에 이사야의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청중들이 두 부류로 구분될 것이다. 이사야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그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던 사람들로 말이다.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기 직전의 기원전 8세기 초는 제국 아시리아가 잠시 영토 확장에 힘을 쏟지 못할 때여서 북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어느 정도 평화로운 시대였다. 그들은, 특히 남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가 자신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한다고 생각했다. 표면적으로 모든 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사람들에게 곱게 받아들여졌을 리가 없다. 이사야의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반대하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도 나름으로 신앙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했을 뿐이다. 예언자의 역사는 이렇게 경쟁을 통해서 발전되었으며 그런 역사는 오늘도 계속된다.
오늘 누가 이사야이며, 누가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인가?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전통을 수호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잘못되거나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다. 지금 누가 이사야인지 아무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이 판단은 훗날 내려질 것이다. 기원전 8세기 이사야의 예언이 그 당시가 아니라 먼 훗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듯이 오늘 목사들의 설교도 먼 훗날 판단된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주인이신 역사의 심판 아니겠는가. 오늘 설교자들은 이런 역사의 심판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말씀 선포 행위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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