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과 알콜중독

조회 수 4352 추천 수 4 2008.09.22 18:26:04
성령충만과 알콜중독

비교적 복지상태가 괜찮은 서유럽과 북유럽에도 알코올 중독자들이 제법 많다. 2000년도에 우리 가족이 일 년 동안 머물던 베를린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하철 구내 구석에, 공원 침침한 곳에서 술병을 든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아마 알코올 중독자들도 여러 층으로 구별될 것이다. 가장 나쁜 경우는 부랑자 상태의 알코올 중독자가 있을 것이고, 어느 정도 가정과 사회생활을 하지만 중독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있고, 좀 가벼운 상태지만 여전히 술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왜 알코올 중독에 빠질까? 개인의 정신적 충격, 음주습관 등등, 사회학자들이나 정신과 전문의들이 나름으로 알코올 중독의 이유와 더 나아가 처방을 제시하겠지만, 그런 접근은 그들의 소관이니까 그렇다 하고 넘어가자.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알코올 중독의 상태는 신학적으로 한번 짚어볼만한 주제가 된다. 왜냐하면 알코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와 성령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가 매우 비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술에 취했다’는 상태는 자아가 초월해 있다는 점에서 ‘구원’의 성격에 속한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몽롱한 정신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따라서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어버리고 무조건 좋은 기분에 젖게 된다. 원칙적으로만 말한다면 이건 구원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즐거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바로 ‘항상 기뻐하라’는 바울의 충고가 가리키고 있는 구원받은 자의 영적인 상태와 비슷하다는 말이다. 성령에 취한다는 것도 역시 모든 삶의 조건이나 한계를 벗어버리고 오직 기쁨과 평화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술이냐, 성령이냐라는 대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결과는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양쪽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는 건 아니다. 술에 취한 결과는 이성의 마비, 삶의 파괴, 주변 세계와의 단절이 일어나지만 성령에 취한 결과는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다만 여기서는 양쪽 모두 자기를 초월한다는 사실만 지적한 것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성령에 취해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술에 취한 것과 별로 다른 게 없다면, 그때 우리는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가장 단적인 예는 사이비 이단들처럼 신앙이 독단적이고, 세계 폐쇄적이고, 반생명적인, 그래서 자폐적인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다. 일종의 광신이라 할 이런 현상은 비록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성령이 아니라 술에 취한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술에 취한 사람의 현상은 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냥 기분이 좋아서 모든 사람에게 좋게 대하거나 다른 하나는 오히려 감정이 예민해져서 매우 전투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되면 2차, 3차로 가고, 종업원들에게도 팁을 듬뿍 준다. 마음이 느슨해진다는 증거다. 반면에 어떤 경우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은 싸움을 자주 벌인다. 술이 그만큼 그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었다는 증거이다.
성령 공동체라고 자처하는 교회도 역시 이런 증상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나는 자기 분수에 넘치게 헌금을 한다거나 자학적인 정도로 헌신하는 행동이 이에 속한다. 이런 요소들을 믿음의 열매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이 마비된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현상은 교회 공동체가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매우 호전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서울 천호동에 있는 광성교회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기독교는 매우 호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경우를 자주 보인다. 성령의 공동체인가 알코올 공동체인가?
그런데 어떤 점에서 보면 교회가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는 괜찮은 일이다. 교회 안에서 신학적인 차이가 있다면 반드시 ‘진리논쟁’을 벌여하는데, 오히려 그런 논쟁이 없다는 건 교회에 진리론적인 치열성이 없다는 뜻이다. 술에 취한 사람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논쟁을 전개하지 못하고 큰 소리만 치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 술집의 특징은 사람의 감정과 욕망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는 데에 있다. 사람의 기분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존재 이유가 있는 술집처럼 한국교회는 청중의 기분, 그 감정, 더 나아가 욕망에 치우쳐 있는 건 아닐까? 은은한 조명으로 사람의 기분을 ‘업’시키고, 손님이 주머니를 열 수 있도록 야릇한 분위기를 띄우는 술집처럼 말이다. 도대체 술집과 교회의 차이는 무엇일까? 알코올이 지배하는 술집과 성령이 지배하는 교회의 차이는? 완전히 달라야 할 이 두 세계가 내 눈에는 지금 비슷하게 보인다. 이런 내 시각과 내 판단이 큰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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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시와그림

2008.09.22 23:39:08

오늘 신학단상...
정확한 비유도 비유지만...
정말 너무 재밌네요^^*
적나라한 현실 표현이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낸
부담스런 '나체'를 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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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8.09.23 00:22:04

성령공동체인가 알콜공동체인가?
obsession인가 addiction인가?

감사합니다.

[레벨:4]danha

2008.09.23 20:31:25

다 털리고 나면 정신이 좀 들겠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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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9.24 21:17:05

듣고 보니 그렇네요.
오늘 한국교회는 '벌거벗은 임금님'인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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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9.24 21:17:51

알콜에 취해 봤어요?
그런 경험이 없으면 성령충만도 실감하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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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9.24 21:19:40

우하하하,
단하 님도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할 줄 아는 군요.
아, 그렇지.
그렇게 털린 경험이 있지요. ㅎㅎ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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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8.09.26 22:10:58

성령충만의 경험을 위해
알콜에 한번 심각하게 취해 봐야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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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다미아니

2008.10.10 20:34:07

광성교회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대부분 아는 분들이 그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참 많이 씁쓸합니다.

그리고, 과연 성령충만의 존재성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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