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연애편지다

조회 수 3963 추천 수 2 2008.10.04 23:01:32
성서는 연애편지다

일전에 다비아 사이트에서 어떤 분의 질문에 대답하는 중에 우연히 ‘성서는 연애편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그렇게 말하고 보니 그 말이 성서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문제를 오늘 다시 한 번 더 정리해볼까 한다.
이 명제에는 최소한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혹은 하나님과 성서기자 사이에는 성서가 있기 전에 어떤 사건이, 어떤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도 연애편지가 있기 전에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인 ‘연애’가 있듯이 말이다. 연애편지는 그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지 편지 자제가 연애는 결코 아니다.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이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서라는 형식의 문서가 완성되기 전에 성서 기자들에게는 하나님과의 고유한 영적 교제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하나님과 어떤 영적 교제가 있었을까? 지금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이런 질문이 바로 우리의 성서읽기에서 늘 상수로 작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이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단지 성서라는 문자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성서에서 어떤 종교적 규범을 발견할 뿐이지 성서 기자의 영적 세계에서 일어났던 그 원초적 경험을 놓친다. 예컨대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는 출애굽기의 보도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어야 할 부분은 이 사실을 전하고 있는 성서기자는 근본적으로 무슨 경험을 했는가에 있다. 그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했기에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간접적이라 하더라도 성서기자들의 하나님 경험을 오늘 우리의 삶에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오늘 우리의 방식으로 그 경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성서가 연애편지와 비슷하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성서는 신앙의 빛 안에서만 참된 의미를 발현하지 그 빛 밖에서는 그 의미가 상실된다는 말이다. 연애편지를 써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그 편지는 어떤 객관적 사실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경험, 그 마음을 담아낸다. 따라서 연애편지에는 과장이 담기기 마련이다. “나는 자나 깨나 늘 당신 생각뿐이라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이게 사실인가, 아닌가?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연애편지를 쓴 사람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구절을 사실이라고 믿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거나 문자의 차원에서만 이 편지를 읽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걸 거짓말이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늘 내 곁에 있소.”라는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람의 마음에는 그 여자, 혹은 그 남자가 늘 살아있겠지만 실제로는 혼자 있다.
우리가 성서를 연애편지로 읽어야 한다는 말은 성서가 어떤 역사적 사실을, 또는 과학적 사실을 묘사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 너머에 있는, 그것 내면에 있는 훨씬 영적인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서 문학적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서는 사실이 아니고 진리도 아니고 단순히 연애감정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건 아니다. 여기서는 객관적 사실만이 진리라는 말을 넘어서야 한다. 어떤 점에서 역사에는 객관적 사실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아니 인간은 그런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바로 성서읽기의 매우 협소한 길이 놓여 있다. 그저 객관적 사실과 과학적 정보에 머물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주관적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는, 영적인 진리에 근거해서 성서를 읽어야 한다. 이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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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시와그림

2008.10.05 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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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편지 성서를
예술의 '리얼리즘'과
대입시켜 생각해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화가 '페르낭 레제'는
"모든 시대의 예술에는 그시대의 리얼리즘이 있다"라고 헀습니다
단지,사실적 표현만이 리얼리즘이 아니라
시대의 상황과 감수성에 따라
리얼리즘의 형식은 부단히 변한다는 거죠
성서는 고대인들의 리얼리즘이 아닐까요
그것이
홍해가 갈라지거나,물위를 걷거나, 용이 출몰하여도
성서는 당시의 하나님 체험을
영적 리얼리즘으로 표현한 것이겠죠
묘사 자체는 신화적이며 문학적이라 해도
영적 체험의 사실성은 더 생생한 겁니다
그 생생함을
지금 우리 시대의 신앙과
실존 방식으로 풀어 내는 것이
또한 작금의 리얼리즘이 되겠네요
같은 화류계 여인을 그려도
앵그르의 오달리스크와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모습은
지구인과 외계인의 차이죠
하지만 현대인들은
피카소의 여인에게서
자신들의 리얼리즘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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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 선

2012.10.04 15:58:31

다비아에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입니다.


시그림님의 댓글은 정말...!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를 풀다가 뒤쪽 해설을 보고 

혼자 머리속으로 깨달음을 얻고 그 기쁨과 성취감을 맛보았던 수험생 시절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감사한마음에 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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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0.05 22:45:35

시와그림 님,
그동안 답답해서 어떻게 기독교 공동체 안에 머물렀어요?
지금 봇물 터지듯이 영성의 깊이에서 나오는 언어들이 터져나오네요.
그것 참,
허탈하군요.
나는 비싼 등록금 내면서
고생고생 하면서 신학박사 학위를 겨우 받았는데,
시와그림 님은 그동안 다른 데서 딴 짓 하다가
내 머리 위에 올라설 정도가 되었소이다.
아이구 원통해라.
성서의 신화적 리얼리즘이라!
A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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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8.10.07 00:51:25

저는 성서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로 이해한다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시던 분이 계셨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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