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 대한 단상

조회 수 3331 추천 수 0 2008.10.11 22:21:47
순간에 대한 단상

우리 교회에 네 달 된 여자 아이와 두 살 된 여자 아이가 있다. 두 살 된 아이와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말을 나눌 수 있다. 그만한 나이의 아이들이 어떤 행동발달을 하는지 내가 교육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아 형성이 가장 활발하게 자라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몇 번 만나본 그 아이의 행동에서 그걸 발견할 수 있다. 네 달 된 아이와는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아이 엄마는 그 아이의 작은 표정에서도 무언가를 읽고 있던데, 나에게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가끔 나는 그 아이를 안고 창문가로 가서 이렇게 말한다. “얘야, 세상 구경하자. 저 멀리 봐라. 저 산을 좀 봐라.” 그 아이에게는 무엇이 보일까? 아마 1m 안이 그의 가시거리일 것이다. 두 살 된 아이에게는 10m가 바로 그 거리일지 모른다. 그 밖의 세계가 그들에게는 없다. 그 세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물론 다른 차원에서는 의미가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의 인식세계에서는 없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지금 우리의 가시영역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무엇을 인식하며 사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지금 여기는 어딘가? 그걸 아는 사람이 있으면 대답해보라. 우주의 한 변방에 외롭게 떠 있는 푸른 별이 지구겠지. 사실 지구는 별이 아니다. 별인 태양에 기생하고 있는 혹성이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다. 아니 지구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그건 맞는 말이다. 거기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의 실체를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게 확실한 게 아니다. 이 명제는 두 가지 사실이 결탁되어 있다. “지구의 실체를 모른다”와 그것에 의해서 “지구에 살고 있다는 게 확실하지 않다”이다. 우선 지구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기본적으로는 우주물리학적 차원의 인식이 우리에게 미개하다는 뜻이다. 어떻게 우주의 먼지가 태양이라는 별을 만들어냈는지를 우리가 모른다. 앞으로 이런 우주과학이 발전하게 되면 어느 날 알게 될 수도 있겠으나 그날은 요원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그런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지구의 실체를 모른다는 두 번째 이유와 연결된다.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으로만 세상을 본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네 달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은 인간이라는 제한적인 존재의 눈에만 포착된 것이지 훨씬 근본적인 것들은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네 달 된 아이의 눈에 창 밖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듯이 말이다. 이미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다루어진 이야기겠지만 우리 논의의 진행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자. 10만년 후에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전혀 다른 종의 시대가 이 지구에서 시작될 개연성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지구에서 살아갈 어떤 생명체의 출현이 가능할까? 그 가능성 여부는 여기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인식과 경험이라는 게 얼마나 제한적이고 부분적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단순화해서 10만년 후에는 말을 하지 않고 일종의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그런 생명체가 출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육지의 생명체는 모두 사라지고 물속의 생명체만 살아남는 그런 세계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말도 되지 않는 SF영화의 한 장면을 그리려는 게 아니다. 더구나 현재의 인간 삶을 부정하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지구의 미래가 인간의 인격 이외의 것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도 않는다. 나는 인간의 사유와 언어에 희망을 거는 사람이기 때문에 현재의 인간 이외의 어떤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감각적인 체험을 절대화할 수는 없다. 이 감각에는 단지 시각, 청각, 촉각 같은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까지 포함된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소중하기는 하되 그것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두고 싶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성령의 활동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 너머’라는 게 지금 현재의 이곳과 전혀 별개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걸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대답할만한 입장이 아니다. 네 달 된 아이에게 창문 너머의 세계가 전혀 들어오지 않고, 따라서 무의미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창문 너머의 세계는 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약 창문 너머의 숲이 없어진다면 이 아이는 호흡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아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창문 너머의 세계는 현재 이 아이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가 전혀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세계와 존재와 생명이 아무리 아득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현재의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지금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우칠 만큼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그런 연결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이다. 물론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든 않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몫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 설교자들은 너무 아는 게 많은 것처럼 말하고 있다. 기껏해야 두 살짜리 수준이면서 창문 밖을 아는 것처럼 선동하고 있다. 창문 밖이 아니라 창문틀만 보면서 그걸 창문 밖의 실체라고 외치는 형국이다. 정직한 설교자라고 한다면 그냥 자기에게 보이는 것만 소박하게 전하면 충분하다. 창문틀만 보이면 그것만 보이는 그대로 전하면 된다.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만 한다면, 아이가 자라서 자연스럽게 멀리 창문 밖을 볼 수 있듯이 결국 어떤 세계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결국 궁극적인 세계는 종말에 가서야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그때까지는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게 없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나무가 나무인지, 산이 산인지 결정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것이 곧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유일한 실체다. 그러나 산이라는 실체와 강이라는 실체도 결국 인간이라는 유한하고 의존적인 존재인 인간의 사유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궁극적인 실체라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여기는 어딘가? 우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지금 여기는 예수가 말씀한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계인가? 아니,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나’는 확실한가?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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