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생명

조회 수 3474 추천 수 0 2008.10.11 22:31:43
시간과 생명
-1906년, 2006년, 2106년-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06년에도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특히 한민족은 국권을 시나브로 잃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 우리와 똑같이 아주 치열한 삶들이 여전했다. 그들이 오늘 2006년의 삶을 조금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오늘 우리는 100년 전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그때 조선에 비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벼락부자, 혹은 졸부가 된 것 같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꽤나 알리고 살아간다. 그러나 100년 전의 사람들과 오늘 우리와 근본적으로는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모두가 자기를 통해서 세계를 바라본다. 모두가 그렇게 절실하게 살아간다.
오늘 우리는 100년 후인 2106년에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이 어떤 형태로 살게 될지 감을 잡지 못한다. 어쩌면 이미 통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부산에서 슈퍼 KTX를 타고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북경을 건너 흑해 옆을 지나 프라하와 베를린을 통과해서 파리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식들의 외모나 지능까지 마음대로 선택해서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시대를 회상하면서 조금 불쌍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운명을 그렇게 생각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100년 후의 사람들도 역시 근본적으로는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모두가 자기라는 창을 통해서 세계를 경험하고, 그것이 모든 것이라는 확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조금 시간을 확장시켜보자. 2천 년 전 사람들과 2천 년 후의 사람들 말이다. 그 사이에 우리가 있다. 각자가 모두 자기에게 당면해 있는 것만을 리얼하게 느낀다. 이 모든 세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도대체 누구, 무엇일까? 이 모든 것들을 죽게 하고, 없애는 이 시간이라는 건 또 무엇일까?
오늘 우리는 부활절을 맞았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도 다시 살아나고 싶다는 인간적인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해봐야 흡사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500년 후에 소생하는 것과 다를 게 아나도 없다. 그 500년 후, 또 500년 후라도 해도 오늘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시 산다는 것 자체는 무의미하다. 이런 방식의 삶이라고 한다면 아주 지루할 가능성이 높다.
예수의 부활은 전혀 다른 생명을 가리킵니다. 아직 이 세상에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었던, 판넨베르크의 표현을 빌린다면 “무로부터의 창조”와 버금가는 생명 사건이다. 이걸 증명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증명할 수 없다면 무의미한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건 선입관이다. 증명할 수 있어야만 진리는 아니다. 우리가 증명한다는 것은 단지 반복 가능하다는 것만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진리가 반드시 반복 가능한 건가?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기 까지 그 모든 역사로서만 증명이 가능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그건 인간이 증명할 수 없다. 그건 오직 하나님만이 증명할 수 있다. 그것이 곧 부활이다.
거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이 달려 있다.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예수의 재림에 놓여 있다. 부활한 분의 재림이 곧 생명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금년도 곧 간다. 곧 2106년이 온다. 그런 방식으로 또 새로운 밀레니엄이 올 것이다. 3000년이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완전한 생명을, 즉 영생을 실현하실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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