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과 영성

조회 수 4144 추천 수 2 2008.08.26 22:45:09
똥과 영성

오늘 예배 순서지의 <오늘의 읽을거리>에 밀란 쿤데라의 글이 실렸다. 그는 어렸을 때 느꼈던 어떤 단상을 통해서 신, 신학, 인간, 삶의 중심을 뚫어보고 있었다. 그 주제는 곧 하나님과 똥의 관계로 집약되어 있다. 그의 글을 여기서 전부 반복할 필요는 없고, 마지막 단락만 다시 검토해보자.

“똥은 악보다도 더 다루기 힘든 신학적 문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범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똥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인간을 창조한 분이 진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똥은 똥 자체라기보다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본 요소들을 가리킨다. 인간이 짊어져야 할, 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 삶들을 말한다. 예컨대 얼마 전 영국 성공회에서 동성애자들의 사제 서품을 일정했다고 해서 논란이 분분한 것 같다. 이런 문제는 교리나 도덕률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내장이 있는 인간이 똥을 누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혹은 인간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관계나 성생활만이 옳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동성애자들의 모습이 해괴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건 자신이 부인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아무리 불쾌하다고 하더라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의 절대적인 신념에 어긋나는 것을 ‘없는 것’ 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밀란 쿤데라는 이런 경향을 가리켜 ‘키취’라고 했다. 흡사 어린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학교 여선생님들은 변소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종교적 삶을 그렇게 여겼다. 율법을 통해서 무언가 절대적인 세계,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를 성취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절대적으로 순수하고, 절대적으로 순결한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들은 사람들을 골라가며 사귀었고, 먹는 것도 까다롭게 구별했고, 심지어는 앉는 자리까지 성속을 구별했다. 손을 닦지 않고 음식을 먹은 예수의 제자들을 그들이 문제 삼았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볼 때 우스꽝스러울지 모르지만 그들로서는 매우 진지한 문제였다.
이에 반해서 예수는 인간을 인간 그대로 인정하셨다. 식욕과 성욕을 갖고 있는 현실 인간을 그대로 인정하셨다. 그런 모습들이 아무리 추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인간인 한에서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인정하는 게 최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가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과 죄, 폭력 같은 요소들을 권장한다거나 또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셨다는 말은 아니다. 친구에게 욕 하는 것을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정도로 예수는 인간의 내면적인 깊이에서 이런 문제들 철저하게 다루셨다. 다만 예수는 인간을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어울리는 게 예수에게는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상주의는 늘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종교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온갖 이데올로기는 나름으로 자신들의 절대적인 명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밀란 쿤데라 말한대로 ‘키취’가 그들에게 나타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희생할 수 있다는 순수주의에 빠졌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순수한 이데올로기보다는 관료주의와 이기주의가 훨씬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결국 공산주의가 실패하고 만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도 금욕주의가 한때 핵심적인 신앙으로 자리할 때가 있었다. 또는 ‘참회신앙’이 그럴 때도 있었다. 거기에도 키취는 있다. 인간이 아무리 금욕적으로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인 한에서 결코 그것으로는 참된 것을 이룰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이 십자가 앞에서 자기 죄를 인식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 사죄하심에 근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결코 참된 것, 혹은 구원의 세계를 이룰 수는 없다. 그것이 교리로서는 여전히 유효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훨씬 심화,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이 바로 그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그 어떤 종교적 성취를 통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구원은 선물이지 우리의 생산품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똥을 누는 존재라는 사실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인간을 전제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구원론은 철저하게 추상화할 수밖에 없다. 좀 과격하게 말해서 똥을 잘 누는 것과 구원은 소통될 수 있다. 이 말은 곧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원활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게 도대체 기독교의 영적인 구원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고 질문할 필요는 없다. 그런 문제는 훨씬 복잡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영적인 것이라고 보는가? 영의 실체를 우리가 알고 있을까? 몸과 육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을까? 이런 건 여전히 비밀이다. 우리가 계속 질문해야 할 궁극적인 비밀이지 이미 결정된 질문이 아니다.
말이 옆으로 흘렀다. 한꺼번에 많은 걸 말하는 건 지혜롭지 않으니까 오늘도 여기서 접자. 똥을 잘 누는 게 구원론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똑같이 똥을 누지만 가려서 눈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좀 더 멀리 유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똥이 다시 우리의 밥이 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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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시와그림

2008.08.26 23:34:28

목사님 , 키취의 스팰링이 무엇인가요?
예술분야에서 말하는 'kitsch'와 관련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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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8.27 18:27:03

키취는 시 님이 말한 그 단어, 맞아요.
독일어지요?
kitsch.
그것의 예술적, 문학적 의미는 잘 모르겠는데,
실제로는 깊이가 없으면서도
겉모양으로 고급스러운 것을 따르는 어떤 '취향'을 가리기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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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소풍

2008.08.28 00:12:41

쿤데라적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설교는
그 성향상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 하는 문제)
각기 나름대로의 '키취적 세계' 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또한 꼭 설교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각자의 키치적 세계를 품고 살아가는 것도 같구요.
왜냐하면 그 세계가 아주 긴요하거든요.
나와는 다른 존재를 향한 나 자신의 폭력성에
끊임없이 정당성을 부여해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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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소풍

2008.08.28 00:45:49

똥에 대한 목사님의 칼럼을 읽다 보니 최근 읽고 있는 <빛> 이라는 소설의 한 대목이 떠올라서 좀 길지만 찾아 옮겨봅니다. 소설속 주인공이 기르는 개의 똥누는 모습을 감상하는 장면입니다. (....는 부분 생략임)

‘입에서 잉태해 항문으로 탄생하는게 똥이라고 누가 말했나..... 벤치에 홀로 앉은 철학자처럼 개는 깊이 몰입한 표정이다. 한동강의 똥이 떨어졌다..... 지금 그것이 살살 그리고 팽팽하게 빠져나오고 있는 이상한 시간, 이 이상한 느낌도 곧 지나갈 것이고.... 매일 한두번 몸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 그것으로 인해 불편하고 곤란한, 그렇지만 이내 깨끗한 해방이 선사되는, 이 생명의 사건을, 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큰일났다, 또 이상한 느낌이다!’ 하고 전전긍긍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똥의 길을 열어주려고 본능과 불안한 앎을 바쳐 노력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어느 생명체가 저리 예쁘게, 귀엽게.... 가엾게.... 똥을 눌까.
.....저 개는 정말 하늘나라 개다..... 니가 십몇년을 살고 죽는단 말이지? 나는 앞으로 삼사십년을 살다가 죽을거고..... 정말? 여기 말고 갈데가 어디란 말이야? 이 좋은 데를 놔두고 우리가 어떻게 영원히 사라질수가 있는거지?‘

지은이는 김곰치라는 독특한 필명을 가진, 부산 사는 젊은 소설가입니다. 패기 넘치게도 기독교의 교리와 본격적인 맞장을 뜨겠다는 의도로 쓴 소설이라네요. 다 읽고 나서 마음이 내키면 감상문을 써 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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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8.28 10:02:49

김곰치의 글은 힘이 있더이다.
발로 글을 쓰는 친구지요.
개의 똥 누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기똥 차군.
그런데 김곰치가 기독교 교리와 맞장을 뜨려고 해요?
기독교 교리라기보다는
보수 우익 근본 문자주의 신앙과 다퉈야겠지요.
그나저나 기독교가 요즘과 같은 행태를 고치지 않으면
(형식과 내용에서)
한민족으로부터 외면당할 거 같다는 불안이 엄습하고 있소이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겠소.
오늘은 똥을 누셨는지.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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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소풍

2008.08.28 15:25:22

목사님, 김곰치씨가 맞짱뜨려 한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책 다 읽고 나서 말씀드릴께요~~
그리고
오늘 큰일은(?) 잘 치루었습니다.
아침 똥을 잘 누어야 하루가 행복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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