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복음주의와 실용주의

조회 수 4709 추천 수 7 2008.08.28 19:11:33
미국의 복음주의와 실용주의

이신건 박사께서 몇 달 전 <말씀과 삶>에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한 서평의 글을 주셨다. 다비아 사이트 <이신건의 책읽기> 메뉴에 올려져 있다. 그 서평을 읽고 그 책이 대단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릭 워렌 목사님의 다른 책들도 역시 그에 못지않은 반응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새들백 교회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1980년 부활절에 개척예배를 드린 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새들백 교회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이미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개척 예배를 드린다는 전단을 새들백 지역에 3만장(?)을 뿌렸다고 한다. 그날 200명이 참석했다. 그것도 신기한 현상이다. 우편으로 전달받은 전단만으로 생판 모르는 곳에서 2백 명이 모일 수 있었는지가 말이다. 그는 이미 그곳의 시장 조사를 충분해 해두었다. 어떤 층을 전도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명확한 로드맵을 만들어 두었다.
교회 개척기라 할 수 있는, 동시에 목회철학이라 할 수 있는 그 책은 세계 곳곳의 목회자들에게 필독서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아마 3만 명의 교인수를 자랑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교회라고 한다면 3만 명 되는 곳이 여럿이고, 순복음 중앙교회는 수십만 명의 교인수를 자랑하니까 새들백의 3만 명이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미국이라는 사회를 배경으로 놓고 본다면 대단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릭 워렌 목사는 무엇을, 어떻게 설교할까? 요즘 며칠 동안 나는 그분의 설교 50편쯤 읽었다. 그분의 설교를 읽은 덕분으로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설교자들의 특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청중이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 그들의 설교 핵심이다. 그게 설교 내용이기도 하고, 형식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에 내 생각이 좀 복잡하다. 괜찮게 나가는 교회의 모든 설교자들은 이렇게 청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사실 앞에서 느끼는 당혹과 무력감 같은 것들로 말이다. 왜 나는 그들과 정반대로 설교하는 걸까? 왜 나는 청중이 아니라 철저하게 텍스트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청중이 요구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설교라고 한다면 아무리 깊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착각일 가능성도 있지만, 무의미한 게 아닐까?
릭 워렌 목사는 청중의 삶 한 중간에서 설교를 시작하고 그 안에서 맴돌다가 거기서 설교를 끝냈다. 그들의 고민을 적절하게 포착하고 현실적인 대처방안들을 제시했다. 간단하고 명확하고 강력했다. 심지어는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 비슷한 내용의 설교가 많았다. 인간관계를 조화롭게 할 수 있을 길에 대해서, 돈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아내의 심층적 욕구를 들어주는 방법에 대해서, 불평을 극복하는 길에 대해서 등등, 대충 이런 주제들을 매우 세련되게 전달하는 설교였다.
청중들이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신학적인 주제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사로잡혀 있다. 결혼, 자식, 집, 저금, 직장, 고부갈등, 부부갈등 같은 문제 말이다. 릭 워렌 목사는 이런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을 설교라고 생각했다.
그의 많은 설교를 읽은 후의 내 심정은 좀 참담하다. 도대체 성서 텍스트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왜 정신분석이나 목회 상담의 문제에만 치우칠 뿐이지 성서 텍스트의 지평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할수록 교회가 부흥한다는 이런 현실 앞에서 목사들에게 어떻게 신학적인 설교를 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간단히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로 릭 원렌 목사의 설교는 전형적인 교양강좌이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예배 시간에 할 필요가 있을까 의심스럽다. 둘째로 그런 방식으로 인간이 내면적인 평화와 기쁨과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약 앞으로 교회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결국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위로를 제공하는 집단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또한 기독교는 매우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되고 말 것이다. 거기에는 역사도 없고, 노동 해방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 변혁적 능력도 없다. 순전히 개인의 종교적 영역만 달콤하게 만들어 주는 종교 기관이 될 뿐이다. 이미 60년 전에 디트리히 본훼퍼는 이런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다. 기독교가 인간 삶의 약한 부분을 위로하는 기능으로 전락하는 위험성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는 종교보다는 오히려 ‘비종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릭 워렌 목사의 설교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왜냐하면 그게 곧 미국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 그대로 '프래그머티즘'으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근본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과연 기독교의 복음은 우리가 그럴듯하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인가?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옳은 말인가? 그런 실용주의, 그런 도구주의를 옳다고 따라가는 이 세대를 거슬려 헤엄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 어쨌든지 좀 복잡하게 되었다. 다시 천천히 생각할 수밖에.

[레벨:4]danha

2008.08.28 22:28:29

좁은길을 가고 있는 목사님께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목사님이 제게 용기를 주셧던것처럼요.
목사님 화이팅!!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8.28 23:39:12

단하 님,
젊은 분의 격려를 받으니
힘이 솟구치는 것 같군요.
좋은 밤.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8.08.29 01:41:37

목사님,
교회가 인간 삶의 연약한 부분을 감당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교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교회는 또 얼마나 초라해 지구요.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고 싶어요.

[레벨:1]india

2008.08.29 01:52:03

정 목사님, 새들백 교회뿐 아니라 한국의 많은 목사들이 읽지도 않고 극찬을 하는 죠엘 오스틴의 책도 그의 설교에서 나온 것들이죠.. 정목사님이 연어같이 헤엄쳐 가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 것은 미국에도 여전히 많은 연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카고의 알링턴 하이츠 나 더체플 그리고 무디교회에서도 목사님과 같은 연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이 바로 연어같이 헤엄치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젊은 세대에 연어들이 있고 새들백 교회에서 들은 초컬릿같은 설교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어가 끝까지 헤엄쳐 올라가 열매를 맺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정 목사님도 연어처럼 사시고 계십니다. 아..수업들으러 가야겠습니다.

[레벨:11]yonathan

2008.08.29 19:22:09

목사님의 글을 읽고 있으니
미국의 실용주의에 갇혀버린 교회의 현실이 무척 슬퍼 지는 군요...
하나님의 말씀 보다 오직 승리와 성공의 우상을 위해 달음질 치고
긍정의 패러다임을 강요 당하며 생명을 소멸 시키는 불나방같은 현실...
그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나....꺼져가는 생명을 보며 한탄할 힘마져 본능에 의지한채
헐떡이는 생명과 함께 가슴 아픈 현실을 봅니다.



[레벨:0]가을바람

2008.08.29 20:18:40


목사님, 저는 몇년 전에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추천독서로 릭 워렌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그 책을 읽게 되었읍니다.
너무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추천해주었으니까요.
제가 책 내용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는 것도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읍니다.

제가 그 책을 좋아했던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이 언젠가부터 은혜가 아닌 율법으로 짐이 되었습니다.
주일 낮예배, 새벽예배까지는 좋은데 주일 오후 예배와 그 외에 맡았던 주일하교 회의나 회식으로 모이는 것은 시간이 아까왔습니다.
집에서 쉬고 싶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성경도 읽고 싶은데 교회에서는 모이기를 힘쓰라 말하지요.
그럼 저는 속으로 성경에 안식일에는 쉬라하셨는데... 하지요.

제게 잠이 너무 모자랐었나봅니다. 책 내용 중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는 것도 기뻐하신다는 말이 가장 좋았던 것을 보면요.
저는 그동안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나봅니다.

이 책을 이전처럼 좋아하지 않지만 그 당시의 저처럼 그 책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타민결핍증인 사람에게 합성비타민제가 효력이 있듯이 말입니다.

현대는 가공식품 생산으로 먹을 것은 풍성해 졌지만 그로 인해 영양결핍으로 병이 든 것처럼 교회도 많고 설교말씀을 들을 기회는 많지만 온전한 말씀을 듣기 힘들어 영양결핍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레벨:0]hawoon

2008.08.30 00:45:18

그 책의 내용중에 이런 것이 있다. 그 교회의 자문위원이 거의 일천교회의 교인들에게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 결과는 응답자의 89%가 "교회의 목적은 나와 나의 가족의 필요를 돌보아 주는 것이다" 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목사의 역할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을 기쁘게 해주고 그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오직 11%만 "교회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잃어버린 세상을 구하는 것이가" 라고 답했다.
그후 같은 교회의 목사들에게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하고 물었다.응답한 목사중 90%는 교회의 목적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 대답했고, 10%는 교인들의 필요를 돌보는 것이라 답했다.

'새들백 교회이야기'의 영문명은 'The purpose driven church'입니다. 그는 교회를 움직이는 힘이 성경적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가 준비한 교회의 목적을 5개의 핵심 단어로 진술했다. 찬미(예배), 선교(전도), 소속(교제), 성숙(제자훈련), 그리고 사역(봉사)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필요를 한데 묶는 것, 곧 '적용'에 대해 목적을 분명히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가 말하는 교회의 '핵심 멤버 및 헌신된 자'들 즉, '평신도 사역자 및 성숙한 교인'들을 위해선 평일 별도의 예배를 하는 것으로 안다. 주일날 그들도 예배를 보지만 주일에는 일반등록 교인들, 정기적으로 예배만 참석하는 자들, 비교인들 위한 그들이 맡은 하나님 사역에 더 집중하기 위함이다.

목적이 분명해서 좋지 앟은가. 정 목사님 글들도 그렇다. 정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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