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와 신앙

조회 수 3687 추천 수 5 2008.09.04 18:48:29
생명의 신비와 신앙

지구 안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있는 생명체는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많다. 조류 박사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새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곤충 박사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곤충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세균 박사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세균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깊은 바다 속에 서식하는 어류는 또한 얼마나 많은가. 땅 속의 미생물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비의 종류도 많고, 벌의 종류도 많고, 뱀의 종류도 많다.
도대체 왜 이 세상에는 그렇게 많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걸까? 우리가 미처 알 수도 없는 그 많은 생명체가 이 땅에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말이다. 그저 인간과 나무와 몇몇 짐승, 그리고 몇 가지 물고기만 있어도 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 생명체들을 고유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몇몇 먹이사슬로 그 관계를 조금 읽을 수는 있다. 개구리가 파리를 잡아먹고,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고, 산돼지가 뱀을 먹고, 하는 이런 유기적 관계 말이다.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는 채소가 있고, 가장 위에는 사자, 호랑이, 그리고 그 위에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인간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으로 먹이사슬이 완전히 해명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세균에게 잡아먹힌다. 우리의 시체를 박테리아가 처리한다는 말이다. 결국 지구의 먹이사슬에서 절대 강자도 없고, 절대 약자도 없다.
지구의 생명체들이 이런 먹이사슬로만 관계를 맺는 건 아니다. 서로 공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유기적인 관계가 그 안에서 작동한다. 그게 생명체의 신비이다. 도저히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 중심의 세계만을 최선으로 생각하지만 마이크로의 세계는 인간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이다. 작은 물방울이 나뭇잎을 적시기도하고 땅속뿌리를 통해서 나무의 몸통을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그 물은 태양, 탄소와 함께 탄소동화작용을 일으킨다. 탄소동화작용은 지구의 생명을 살리는 가장 밑바닥의 화학작용이다. 만약 식물이 탄소동화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생명계는 파괴되고 만다. 그렇다면 결국 지구의 생명은 물이 식물의 몸을 타고 올라가는 그 마이크로의 물리작용에 근거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세관 작용은 일종의 마술과 같다. 물과 나무가 빚어내는 마술이다. 그 마술에 의해서 지구는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 놀라운 생명 현상을 구약 기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야훼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산 염소를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은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욥기서 기자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알고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아는 것만큼 모르는 게 많아질 뿐이지 모르는 게 근본적으로 정복되는 게 아니다. 근원자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무지에서 깨어날 가능성은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바로 피조물이라는 사실에 있다. 던져진 존재는 이 세계를 바로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인식론적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재림을 이 세상의 완성으로 보고, 그때에 모든 인식도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의 재림으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 말고 궁극적 생명을 알 수 있는 길이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이 아무리 신비롭고 불가해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재림에 이 땅에서의 삶과 그 이후까지에 이르는 우리의 전체 운명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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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08.09.05 16:57:13

참으로 역설적으로 전에 확신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조금씩 해방되므로
자유함에 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와 생명의 신비에 조금씩 눈을 뜨가는 과정에서 생긴 것 같기도 하네요. 내가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토대가 미약하고 불안전 하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모든 것을 회의론적으로 본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가능성을 내려놓을 때 예수의 부활과 재림에 내 운명의 중심을 더욱 던지게 됩니다
요즘처럼 밤하늘이 맑은 날
밤길을 걸으며 하늘의 무수한 별을 바라보며
이 우주속에 던져진 내 생명의 신비와 운명을 한번씩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레벨:0]

2008.09.06 00:06:32

4년전 어느 화창한 봄날,
새록 새록 정(情)이 깊이 가던 지인(知人) 몇 분과 지리산 자락, ‘악양’(岳陽)이라는 곳에 갔더랍니다.
얼마전 작고하신 박경리 선생의 소설 ‘土地’와 관련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거기에 사는 ‘청오’(淸悟)라는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분은 깊디 깊은 지리산 산골 시골집에 세를 얻어 다기(茶器)공예에 몰두해 있는 분이었습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며 서울에서 살던 분인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지금의 자리에 또아리를 틀게 됐더랍니다. 그는 그곳에서 베어지고 방치되고 죽어버린 나무들을 만났답니다. 그런데, 이 나무들이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게 되었습니다. 마치 운명처럼 자신의 반평생 하고 갈 일이, 죽어버린 나무들을 세상에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게 됐더랍니다.
그래서 차마시는 다기(茶器)와 다구(茶具)를 만들기 시작했고 10년이라는 세월을 그렇게 보냈더랍니다.
10년의 세월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내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수없는 회의와 불안 외부의 경멸을 참고 견뎌야 했답니다. 그런 결과 그는 ‘청오’(淸悟)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기까지 한답니다.
그와 얘기를 나누던 중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소의 등처럼 굽어진 보리밭이 보이는 통유리창을 등에 지고 앉아 그는 이렇게 말했더랍니다. “... 나무는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품성과 결을 이미 그 안에 지니고 있죠, 나는 단지 그것들이 세상에 나오도록 최소한의 일만 할 뿐입니다.” 그의 말이 2008년 9월의 예배를 준비하는 이 저녁에 머릿속을 빙빙 맴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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