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4)

조회 수 3354 추천 수 0 2008.09.14 15:01:09
선교(4)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1974년 7월16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 모여 제1회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를 열었다. 이 모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에 시작한 세계교회협의회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회선교 쪽을 선교의 무게를 두는 것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비판적 자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대회에는 150여 국가로부터 모인 3천7백여 명이 참가했다. 이 대회는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을 채택했는데, 영국의 존 스토트가 초안을 작성했다.
로잔 언약은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세상과 동화되든가 혹은 절연됨으로 선교 사명에 실패하였고 고백한다. 신구약성서에는 하나님의 불변하는 계시가 담겨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이시며, 예수의 이름 외에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다. 이런 점에서 전도는 역사적 성서적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로서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개인적으로 와서 하나님과 화목함을 얻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위의 내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보수주의적 신앙의 형식이다. 다만 그동안 그들이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을 독립적인 항목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로잔 언약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 항목의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그래도 인용하겠다.

<전략>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인종, 종교, 피부색깔,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이 타고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왕왕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 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교리, 우리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중략>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는 것이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로잔언약을 기점으로 복음주의 노선은 사회선교에 나름으로 힘을 쏟았다. 오직 개인의 회심에만 모든 선교의 역량을 집중하는 이들이 사회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은 큰 변화이다. 이런 변화들이 한국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이 글에서 다루기는 힘들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또 다른 종류의 글쓰기가 필요하고, 이번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한 마디 하고 넘어간다면 로잔언약이 실제로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로잔 언약이 발표된 1974년은 한국은 그야말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등으로 소위 겨울공화국 신세를 면치 못하던 때였다. 그 이후 1987년 민주항쟁에 이를 때까지 복음주의 노선에서 민주화, 경제정의를 비롯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발 벗고 나섰다는 말을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별로 듣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진보적인 기독교 인사들이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이다. 필자가 속한 성결교회도 이 로잔언약의 복음주의 노선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그런 일들을 전혀 만나보지 못했다. 오히려 전두환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 등에 참여한 선배 목사님들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로잔언약은, 다른 나라는 모르니까 접어두고 한국의 상황만 본다면, 마음이 담기지 않은 손님접대용 다큐멘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복음주의 노선이 사회적 책임에 구체적인 반응을 보인 최초의 운동은 <성서한국>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필자는 <성서한국>의 전반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입장은 아니다. 몇 년 전 전부터 주로 ‘뉴조’를 통해서 보도된 <성서한국>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본 소감일 뿐이다. 그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만은 에큐메니칼 입장에 못지않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게 분명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들이 이런 신학적 자세와 실천적 열정을 계속 유지해주었으면 한다. 이를 통해서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사회선교가 단지 진보적 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체 교회의 몫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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