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조회 수 3567 추천 수 1 2008.08.21 14:52:25
고독

고독! 빛바랜 사진처럼 느껴지는 단어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 고독의 미학을 되뇌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나이를 먹으면서도 그런 생각은 쉽게 사라진다. 대개는 어느 한 순간에도 고독과는 관계없이 살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다. 늙을수록 자식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고, 또는 권력과 물질에 대한 욕망이 도를 더해간다. 그런 현상들은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고독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외로운 사진을 한 장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늙은 사람이 혼자서 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모르겠다. 혹은 노환으로 혼자 누워있는 장면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에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 혼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외롭게 그 길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 말이다. 그 이외에 우리게 더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자식을 출세시켰다고 해서 죽음이 행복한 것도 아니고, 재산을 불려놓았다 해서 죽음의 길이 외롭지 않은 게 아니지 않은가. 혼자서 직면해야 할 그 길, 아무도 동무해줄 수 없는 그 길을 편안하게 떠날 수 있는 능력은 곧 고독의 미학에 있다.
우리가 철저하게 혼자라고 생각해보자. 무인도에 혼자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자. 조금 쉽게, 혼자 방에 앉아있다고 생각해보자. 혼자 있는 때 우리는 자기를 꾸미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우리의 업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잘난 척 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화장하는 여자도 없다.(그런 여자는 정신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주변에 없을 때 그는 비로소 한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혼자 존재한다는 게 곧 자유인 셈이다. 누구에게 잘 보일 생각도 없고, 누구를 지배할 생각도 없는, 그야말로 전체 세계 안에 자기가 들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자유가 우리의 일상에서 실제로 가능할 수는 없을까?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사소한 일들로 소진되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자유하지 못한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사회적인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 일상에서 자유를 얻는 길은 고독에 거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은 환경을 지배를 많이 받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결국 서로 지배하고 지배받는 관계에 빠지게 된다.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서로의 삶이 자유를 향해서 승화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그게 현실이다. 극단의 경쟁 구조인 사업 세계만이 아니라 지성인들의 공동체인 대학도 그렇고, 심지어는 목사들의 세계도 역시 서로의 자유를 손상시킨다.
내가 여기서 목사들끼리 어떻게 서로의 자유를 손상시키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런 구체적인 내용은 오늘 우리의 주제도 아니다. 오늘 주제와 연결시켜서 한 마디만 한다면 목사의 자유가 손상되는 이유는 그들이 고독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건 사실이다. 늘 기도생활에 열심인 그런 표면적인 삶만 본다면 목사는 기본적으로 고독을 잘 버텨낼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목사들이 많지 않다. 모든 것을 비우고 성서 텍스트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경험이 목사에게 흔하지 않다. 불행이다. 좀 심하게 말해서 오늘의 한국교회 목사들에게는 기도도 없고 말씀도 없다. 왜냐하면 마음을 온통 다른 것에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외적 부흥에 자기의 영혼을 팔고 있는 목사는 결코 고독의 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여기에는 평신도들의 책임도 크다. 교회가 침체되는 기미가 보이면 장로들은 목사에게 불편한 눈치를 주는 일들이 적지 않다. “목사님, 기도원에 좀 다녀오시죠.”라고나 “목사님, 교회 부흥 세미나에 갔다 오세요.”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교회가 이런 건 아니겠지만 적지 않은 경우가 이렇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목사 개인이 다른 일들로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 교회, 교단 정치에 나선다거나 교회 이벤트를 만드는데 정신을 판다거나 전문적인 부흥사로 뛰는 목사들도 많다. 그들은 외로울 겨를이 없다. 주변에 늘 일과 사람이 넘친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고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사람들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많다. 사막의 신비주의자들처럼 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방법을 통해서도 일단 혼자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만 한다. 그게 기도라도 좋고, 공부라도 좋다. 사람들로부터, 신자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교회 일을 대폭적으로 축소시켜야 할 것이다. 이게 한국교회 현실에서 설득력이 없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심방, 예배, 회의, 각종 이벤트를 파격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줄이면 심심해서 목회 못할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기도회 열고, 회의 하고, 잡담 하고, 그리고 삼선 짜장 시켜 먹는 재미로 교회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교회에 조금 열심히 다닌다 하는 평신도들도 거의 이런 방식의 신앙에 젖어버리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모이기에 힘쓰라는 성서의 가르침이 있지만 여기에도 역시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내가 보기에 교회 모임 자체가 너무 들떠 있다. 무언가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감이 우리를 계속 짓누르고 있어서 결코 혼자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라도 우리는 각자가 고독해질 필요가 있다. 각자가 영적인 내공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는 평화롭게 죽지 못한다. 절대고독의 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살아있는 동안에 고독을 온몸으로 훈련하는 게 좋겠다.


[레벨:4]danha

2008.08.22 16:02:27

요즘 전 절대고독속에서 다비아의 이런글대하면서 제 심금을 울립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8.22 23:29:00

절대고독의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는지요.
부디 절대자유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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