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

조회 수 6432 추천 수 4 2008.08.21 15:10:18
공평하신 하나님

직접적으로 이렇게 질문하자.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별하실까? 우리의 신앙 유무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할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서 성공적인 삶이 보장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것처럼 큰 착각도 없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착각이 거의 일상이 되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나 <야베스의 기도> 같은 책들이 우리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도 우리의 신앙적 노력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리얼하게, 때로는 성서적으로 때로는 경험적으로 확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걸 무조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기독교인들도 이 세상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성정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대개의 신자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편안하게 살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심하게 양심의 가책만 받지 않는다면 부동산 투기 비슷한 것을 통해서라도 돈을 벌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정도 문제이기도 하고, 신앙이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는 오늘 언급하지 말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솔직하게 질문해보자.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는가?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만 일단 근본적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 것과 우리의 삶의 형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기독교 신자들의 삶이나 불교 신자들의 삶이나 혹은 아무런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의 삶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지금껏 이런 관점으로 혼신을 기울여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좀더 깨어있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미 예수님이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가리지 않고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신다고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는 사람이나 불문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신다. 이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에 실증으로 나타난다. 대홍수는 인도네시아나 미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예수 잘 믿는 사람도 사업에 실패하고, 믿지 않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신앙적으로 살지 않아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실제로는 그럴 때가 많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살이는 그 어떤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개입한다는 뜻이다. 만약 예수 잘 믿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면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복 받고, 소위 삼박자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사이비에 가깝다. 돌팔이 약장사가 자기의 약을 특효라거나 만병통치로 선전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종교와 아무런 상관없이 똑같이 행하신다. 그게 곧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하나님이 단지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자연원리 쯤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분은 자기의 인격으로만 움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행동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그게 곧 그의 공평이다. 우리의 공평이 아니라 그의 공평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그는 기독교 신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하나님에게서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말씀을 매일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하게 대우하지도 않는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것으로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세계 창조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수를 믿는가? 예수의 가르침, 그의 운명, 그의 사건에서 하나님이 온전하게 계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그게 그거 아닌가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건 전혀 다른 사태이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건 우리가 종교적인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특별대우를 받겠다는 그 생각 자체를 허무는 사건으로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열등생, 꼴찌, 죄인, 세리 같은 사람들의 삶에도 우리가 선망하는 우등생, 일등, 의인 못지않은, 아니 그들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는 게 예수 사건의 핵심이다. 결국 예수는 십자가로 죽었다. 완전히 실패! 명실상부한 실패. 그 어디에도 인간적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 실패. 그것은 몰트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 스스로 십자가에 달린 그 사건이다.
이렇게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복 받는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선포한다는 건 곧 십자가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다면 예수 믿고 인생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교를 해야 한다.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미혼모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동정심을 베풀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을 우리보다 먼저 받을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큰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지금 자신이 목회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목사들은 그때 큰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하신 말씀이다. 오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허투루 듣는다. 그 대신 자기의 욕망을 성서 구절로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이 세상에서 거지 나사로처럼 살았으면 이제 천국에서라도 평안하게 살아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부자에게는 억울한 일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하신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지금 나사로 같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이런 사회 체제에 안주할 수는 없다. 교회의 힘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 공연한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그런 노력들은 하나님의 공평하심 앞에서 무력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의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이 세상만이 아니라 저 세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믿는 사람들은 자유의 복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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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바우로

2008.08.21 16:12:59

제 블로그에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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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바우로

2008.08.21 16:14:09

전에 천주교 정양모 신부님이 하신 말씀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죠. 하느님이 공평하신 것은 부자들은 살아생전에는 호강하지만,죽어서 빈자들을 외면한 죄를 지옥에서 치르고, 빈자들은 살아생전에는 고생하지만, 죽어서 아브라함 할아버지 품에서 안식을 누리기 때문이라고요..

[레벨:4]danha

2008.08.22 15:47:07

부자가 천국가기가 바늘구멍에 낙타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말이 그 말인가요?

[레벨:0]청개구리

2008.08.22 20:05:59

하나님은 공평하고 의로우신 분인줄 알기에,우리는 주의 큰날을 앙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주의 은총외에는 바랄것이 없는 나사로가 아니고 여전히 많은 것-물질,인연,욕심-에 얽매여 있는 부자인 것같습니다

[레벨:12]삼송

2010.12.07 07:51:25

제가 이글을 읽고 아내에게 말을 했더니 "예수믿는 사람은 성공하지 말라는 말이예요" 라고 말을 해서 제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도 성공할수 있지 그러나 우리안에 있는기복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씀이지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도 인격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씀이지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신뢰는 태도중 우리는 너무 물질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 라고 말을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말을 하고도 한참 생각을 했습니다.물질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 인정한다면 나는 물질의 주인이 아니라 주님의 심부름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내자신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았는지 고민을 해봅니다. 그리고  말은 제가 이렇게 했지만 저도 제 자신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기엔 너무 세상에 찌들려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침에 한참 고민하다 출근합니다

[레벨:22]머리를비우고

2010.12.07 11:25:57

극단적으로 예수가 부자였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답니다.

그것도 성경에 나온다네요.

요1:39에 '계신 데(곳)'에서 '곳'을 '큰 집'이라고 해석합니다.

NIV에는 "So they went and saw where he was staying, and spent that day with him."이라고 나오고

'묵고 계시는 곳'(새번역), 'dwelt'(KJV)로도 해석되니 머무신 곳을 좀 좋은 집으로 해석을 할 수 도 있겠단 생각도 드네요.

이정도면 상상력의 달인 수준이죠...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옷(담보로 잡을 만한 외투가 아니라 일종의 속옷이었을 텐데)을

군병들이 나눠 가진 이유가 바로 비싼 옷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물론 죽은 자의 옷을 취하면 재수가 좋다는 미신이라는 해석도 있고

요19:24에는 예언의 성취라고 분명 나오는데 이건 애써 외면하고 

비싸 서 가지려 했다는 놀라운 해석학적 재능을 지니고 있는거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건 요12:6에 등장하는 가룟 유다의 존재입니다.

그가 재정담당 보좌관 정도 되었다는건데...

돈을 훔치는 것을 몰랐답니다. 이유는 너무 돈이 많아서 라는 거죠. ㅋㅋ

 

그리고 마가복음 10:30에 나오는 '100배'를 그냥 문자로 해석해 버리시는 대단한 분들도 많으시니까요...

전 차라리 그 100배를 물질이나 세상에서 따르는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신앙적 경험 때문에 일어나는

새로운 가치라고 보고 싶은데 그냥 물질 가치로 간단히 설명하면 뭐 할 말 없죠...

 

"?"표 던지면 믿음 없다고 하겠죠. 제가 좀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런 물질적 가치관이

신앙이란 세련된 방식으로 교회와 신앙인에게 스며들면 구분하기 힘들어 진다는 점이겠죠.

즉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성공주의를 추구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교회를 크게 세우고 교인의 수를 홍보하고 작은 교회를 향해 은근히 은혜가 없거나

목회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 처럼 여기고 남의 교회 앞에서 버젓이 교인들을 버스로 태워 나르는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버스 시간표 인터넷에 게시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너무 비관적인가요?  ^^

[레벨:12]삼송

2010.12.07 15:36:28

절대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신선했습니다. 복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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