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대한 질문

조회 수 3748 추천 수 1 2008.08.23 23:36:23
구원에 대한 질문

나는 목사 노릇을 벌써 26년째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구원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설교비평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지만 구원을 담대하게 전하는 설교자들을 보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도대체 그들이 저렇게 자신 있게 선포하는 구원이 어느 정도 확실한 토대를 확보하고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서도 어떻게 설교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설교는 구원을 나누어주거나 그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구원론적으로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설교자가 우선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은 설교자 스스로도 아직 구원의 현실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은 사람만 하나님을 볼 수 있듯이, 죽은 사람만 죄에서 자유로워지듯이 구원받는 사람만 구원의 현실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한 우리는 결코 궁극적인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무일 수 없듯이 우리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은 사람일 수 없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소유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너무나 작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바동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아무리 신앙과 도덕심으로 무장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세계의 종말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현실에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당신, 그렇게 인간적으로 말하지 말고 좀 성서적으로 말하시오.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믿음으로 순종하시오. 성서와 믿음이 이 세상을 인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걸 내가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와 믿음도 역시 이성과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신들만 특별한 진리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큰 착각일 뿐만 아니라, 성서적이지도 않다.
왜 그런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하다. 다른 건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우선 “성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만 해도 얼마나 많은 논의가 필요한지 모른다. 성서가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스라엘이라는 독특한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 구약성서에 보도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세계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세계 이해가 곧 하나님의 계시 자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이 세상을 악하게 보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인가? 세상은 악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늘 악한 것만은 아니다.
말이 옆으로 흘렀다. 우리는 지금 구원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다. 성서가 분명히 구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구약보다는 신약에 이런 구원론적 성격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영생을 얻으리라.” 구원에 관한 여러 성경구절을 인용할 수 있다. 그런데 구원에 관한 성서의 진술도 매우 다양하다. 구원이라는 직접적인 표현도 있지만, 용서받았다는 표현도 있고, 아버지에게 간다는 표현도 있으며, 죽지 않는다거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표현도 있다. 구원을 이미 받았다고도 말하고, 구원을 이루라고도 말한다. 현재적인 구원도 있고, 미래적인 구원도 있다. 개인적인 구원도 있고, 사회적인 구원도 있다.
왜 성서가 구원에 대해서 그렇게 다양하게 말하는 걸까? 그 이유는 성서 기자들이 그걸 실증적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구원은 하나님이 종말론적으로 계시되듯이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우리가 아직 생명의 궁극적인 현실을 모르고 있듯이 구원의 궁극적인 현실을 모르고 있다.
당신은 왜 자꾸만 모른다는 말만 하는가, 하고 질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구원이 불확실하다면 기독교 진리는 허망하다는 말인가? 우리가 함께 기독교인이면서도 여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세계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구원도 그렇다고 보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데 반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미 그 구원을 받은 것처럼, 구원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확신한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자. 뭐가 구원인가? 물론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말을 앞에 내세울 것이다. 그리고 현재 누리는 평화로운 삶과 믿는 자에게 보장되어 있는 천당을 거론할 것이다. 이런 주장 자체에도 질문할 게 수두룩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들의 머릿속에는 요한계시록에 묘사되어 있는 멋진 세계가 그려져 있을지 모른다. 배고픔도 없고, 병드는 것도 없고, 외로움도 없는 그런 세상이 바로 구원받은 세상일까? 늘 평화롭고, 늘 기쁜 상태라는 건 무엇인가? 과연 우리가 그런 상태라는 걸 알기는 아는 걸까? 전쟁도 없고, 힘든 노동도 없고, 계급 차이도 없는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나?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상급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후보상론으로 신자들을 현혹하는가? 이 땅에서 충성한 사람들이 천국에서 보상받는다는 건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태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공부 잘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거나 피아노 훈련을 잘 해서 쇼팽 콩쿠르에 나가 1등 하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보상이다. 그런 변화된 존재에서는 상을 받고 받지 않고,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흡사 어린이들은 운동회에서 달리기로 공책을 받으면 뛸 듯이 기쁘지만, 어른이 되면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
나는 아무리 머리를 써도 구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건 아니다. 나는 기독교 신앙의 틀 속에서 구원의 심층에 대해서 눈을 떴다. 그게 내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 그건 내가 노력해서 성취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기독교 신앙 안에서 배웠다. 그렇다면 강을 건넌 사람은 배를 버려야 하듯이 신앙을 버려도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건넌 것처럼 착각하거나 건넌 척 할 뿐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내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여전히 배고프면 체면 차리지 않고 먹어야 한다면, 먹은 후에 다른 동물과 똑같은 방식으로 배설해야 한다면 인간은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게 아닐까?
나는 지금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 배를 구하고 있는 중일까? 이 대목에서 나에게 예수는 결정적인 분이다. 예수는 나에게 배이며, 더 궁극적으로 예수는 나에게 강이다. 나는 강을 건널 생각이 없다. 나는 그냥 강 위에 남아있을 생각이다. 예수에게 남아있을 생각이다. 그에게 내 운명을 걸어둘 생각이다. 왜냐하면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이 미리 당겨져 일어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또 길어진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가 곧 기독교 신앙생활이고, 설교일 것이다. 동료 설교자에게, 후학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싶다. 교회 신자들이 구원받을까, 받지 못할까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마시라. 그런 조바심이 클수록 여러분의 청중들은 구원에서 멀어질지 모른다. 구원문제는 당신들의 몫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속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구원의 심층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심층이 무얼까? 이 문제를 실제적으로(real) 생각해보기라도 했는가? 대림절 넷째주일을 보내고 있다. 성탄절까지 남아있는 일주일,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 우리에게 ‘기다림의 영성’이 남아있기라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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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시와그림

2008.08.25 01:37:07

구원이 무엇인지 영생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질문 할 수록
깊고 어둔 밤 하늘을 쳐다보는 것 처럼
막막 합니다
그래도 큰 틀에선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혹여 구원이 지금 우리의 인식 체계로 희망하는
그런 극단의 복락이 아니라 할 지라도
더욱이
나라는 물질과 실체가 사그라지는 것이
내 먼 미래라 할지라도
여전히 내 근거는 창조주 하나님 '안'에 있기에
그 궁극적인 절대자와의 '일치'에서
구원과 영생의 실마리를 잡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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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08.25 23:20:05

구원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우리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인 셈이지요.
그 나라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나라이며,
막상 와야만 알 수 있는 나라이지요.
그런 세계를 성서에서 읽을 수 있다면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된 거랍니다.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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