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과 하나님

조회 수 3281 추천 수 0 2008.08.25 22:58:44
귤과 하나님

귤의 겉모습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게 약간 이상하지만 맛은 좋다. 사람에 따라서 오렌지 맛이 한수 위라고 생각하겠지만 귤은 귤 나름으로 고유한 맛이 있다. 내 손바닥 위에 귤이 놓여 있다. 껍질을 까서 먹었다. 내 입안에서 잘게 부서진 귤은 과즙이 되어 식도를 타고 밥통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흘러 그것들은 내 내장을 통과한 다음에 결국 똥이 되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로 가버릴 것이다. 어디로 가버린다기보다는 상당한 부분은 영양소로 내 몸 안으로 들어오고, 그 나머지는 물에 녹고, 또는 다른 미생물의 밥이 될 수도 있다.
귤의 이런 운명이 어디 귤에 한정되겠는가?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은 서로가 먹고 먹히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건 하나도 없다.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평생 무언가를 먹고 살다가 죽으면 그 무엇의 밥이 되고 만다. 세상의 생명 메커니즘은 왜 이래야만 할까? 세상은 왜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의 리얼리티는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생각이 닿는 데까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그 안에 담고 있을까, 아니면 일장춘몽에 불과한 걸까? 이 질문은 오늘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들이 그것 자체로 온전한 사실인지, 아니면 그것 너머에, 또는 그것 내면에 다른 세계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귤과 연관되다.
귤은 분명히 우리 앞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귤이라는 현상, 또는 그 실체는 어느 순간에 우리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내 몸의 일부로, 또는 다른 것의 일부로 변형되었다. 그 변형이 부분적으로는 물리적이고, 또 다르게는 화학적이다. 어쨌든지 현재 내 손 위에서 사라진 그 귤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그렇게 존재했던 것으로 느꼈던 나의 착각인가? 즉 바로 조금 전의 귤은 실질인가, 아니면 내 의식(인식)에 불과한 것인가?
물론 실질이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인식된 것이라는 게 가장 정확한 대답일 수 있겠지만, 만약 우리의 인식이 정확하지 않다면 결국 귤이라는 사물은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귤을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주체인 나라는 사람이 귤과 전혀 별개가 아니라 귤과 더불어서 훨씬 근원적인 어떤 세계에 머물러 있다면 결국 귤과 나는 크게 구별되는 게 아니다. 이게 불교의 사유를 따라가는 것 같은데,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자.
바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여러 지체가 교회를 이룬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코, 눈, 다리, 폐, 간, 그리고 발, 발톱, 머리카락 등이 더불어서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듯이 교회도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각각의 지체들이 구분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교회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공동체도 아니다. 다리가 혼자서 인간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눈이 혼자서 인간이라고 주장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바울의 이 비유를 조금 더 확장시켜서 우리의 논의에 적용시킨다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결국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귤과 그 귤을 먹고 있는 내가 현재는 구별되지만 결국 큰 생명체 안에서 하나로 결집될 수 있다. 내가 귤을 먹으면 귤이 내 몸 안에 들어오듯이 나는 죽으면 박테리아 몸 안으로 들어간다. 귤이 잠시 이 세상에 형태를 갖고 있다가 해체되듯이 나도 역시 잠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가 해체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생각이 기독교 신학에서 용납될 수 있는지는 조금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기독교 신학은 개체로서의 인간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단지 생명이라는 개념으로 그 개인이 녹아들 수 없다. 구체적인 개인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로서의 생명 세계와 일치되는 인간이해를 해명해내는 게 바로 앞으로 신학에게 주어진 과업이다. 말하자면 개별적이면서 전체적인 생명이 예수의 부활과는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타종교 문제, 현대물리학의 여러 이론들이 신학적 담론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앞으로 젊은 신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다시 본줄기로 돌아와서, 귤은 세계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귤이 무언지 알면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세계가 무엇인지 알면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귤은 결국 하나님에게 이르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귤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곧 존재가 무엇인지 안다는 의미이다. 그 존재의 근거가 바로 하나님이니까 귤을 아는 건 곧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 된다.
비약이 심하다는 말을 감수한 채 한 마디 더 하면, 귤은 하나님이다. 물론 하나님이 사물과 일치한다는 건 아니다. 이런 사유의 방식을 통해서 사물의 가장 밑층으로 내려가자는 말이다. 거기에는 오늘의 물리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존재와 생명의 궁극적인 비밀이 놓여 있다. 동굴 속에 보물이 숨겨 있듯이 그 비밀이 고이 모셔져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주 역동적이고 과정적이고 미래적인 세계이다.
그런 밑층으로만 들어간다면 지금 표면적인 이 세계는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인가, 하는 반론이 가능하다. 물론 그런 말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감각 안에 들어와 있는 이 세계 현실은 매우 중요다다. 다만 우리가 이 감각적인 세계와 그 심층의 세계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는 게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이 세계가 뭐꼬?”라는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화두이다. 그 창조 사건 안에 잠시 형태를 갖추었던 귤이 지금 내 몸 안에서 분해되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놀라운 세계인가. 이 세계가 마술이다.


[레벨:18]은나라

2015.07.15 10:28:14

ㅎㅎ저는 목사님 말씀이 마술입니다.

친구의 소개로 목사님 글중에.."십자가는 필연인가 우연인가"를 찾아서 읽어보라는 권고에 이 글을 찾다가..

"귤과 하나님" 이라는 주제가 참 재밌어서 들어와 글을 읽다가 보니.. 제가 작년에 읽었던 글이더라구요^^

그땐 전혀 이해할수 없는 글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되요..ㅎ

모든 세계가 생명으로 이어지듯..

 전 세계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생명으로 이어진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이요.

그러니..귤이 하나님이다는 말이 문자그대로 본다면, 우습고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그 속뜻을 안다면..

그 표현도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제 생각을 이끄는 목사님 말씀이 제겐 마술입니다.ㅎ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5.07.15 23:28:53

은나라 님,

제 글이 마술처럼 재미 있습니까?

잘 봐줘서 고맙습니다.

다비아에 부탁할 거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씀해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거 있으면

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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