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란 무엇인가?

조회 수 4959 추천 수 2 2008.08.25 23:00:02
기독교란 무엇인가?

어떤 신학생이 다비아 사이트의 ‘쪽지’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세 가지 질문을 주었다. 1) 기독교란 무엇인가? 2) 개신교란 무엇인가? 3) 기독교의 본질을 해명하는 책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일일이 대답하기보다는 그냥 한 묶음으로 대답하겠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다. ‘없다’기보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또는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대답을 찾을 수 없는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는 아주 단순한 관점에서 이 질문에 접근하려고 한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敎)는 두 가지 의미라 할 수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이다. 전자는 그리스도가 주체이며, 후자는 그리스도가 객체이다. 전자는 그리스도가 무엇을 가르쳤는가에 중점이 있으며, 후자는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르면서 동시에 하나이다. 전자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하며, 후자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역사가 그리스도를 누구로 고백했는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둘은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내용과 역사적 기독교가 그것을 이해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현상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를 가르치지 않았지만 역사적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지 않았지만 역사적 기독교는 교회를 세웠다. 예수 그리스도는 동성애, 외국노동자 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역사적 기독교는 역사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언급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지만 기독교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identify)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이 다른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 이 두 사태는 일치한다. 그 근거가 무엇인가? 그 근거는 실증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기독교 신학은 자신의 진리를 변증해나가고 있다. 이미 이 두 사태의 일치가 실증적으로 확실하게 주어졌다면 더 이상의 진리논쟁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신학은,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는 이것을 변증하기 위해서 전력투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해야 한다.
과연 이런 노력이 이성의 지평에서 가능한가? 또는 그것은 결국 믿음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오늘 나는 이런 문제까지 나가지 않겠다. 다만 믿음과 이성은 충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는 이 과도기를 사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며, 그 사실을 이성적으로 변증하는 사람들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도 오늘 언급하지 않겠다. 기독교라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훨씬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그저 기독교를 언급할 때 그리스도 자체와 역사적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것에 머물렀을 뿐이다. 위의 설명을 전제한 채 이제 기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자. 기독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종교이다. 조금 더 부연하면 기독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이 세상을 해석하고 참여하는 삶의 태도이다. 이런 기초적인 명제를 우리가 풀어가려면 역사적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런 것에 대한 신학적, 인문학적 해명은 여기 다비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과연 역사적 예수는 누구인가? 역사는 무엇인가? 우리가 논의해야할 문제는 거의 끝이 없을 것이다. 예수는 어떤 공부를 했는지, 예수와 율법의 관계는 어떤지, 예수와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떤 관계인지, 예수의 인간이해, 그의 하나님 이해, 예수와 로마정치 등등, 우리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공부해야 할 부분은 무한정이다. 그리스도란 무엇인가, 또는 누구인가? 유대인들의 메시야 관, 그들의 묵시사상, 인자 사상, 그들의 다윗 왕조 관 등등, 여기에도 많은 문제들이 연루되어 있다.
아마 이방 종교의 그리스도론, 세속 사회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공부도 필요할 것이다. 사실 마르크시즘은 세속화된 종말론으로서 곧 일종의 변형된 그리스도론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르크시즘이 곧 인간구원을 중요한 담론으로 삼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이해하기 위한, 또한 그가 곧 그리스도라는 초기 기독교의 신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곧 십자가와 부활이다.
십자가와 부활이란 무엇인가? 이 두 주제만으로도 신학대학원 두 학기 공부로도 부족할 것이다. 예수와 그리스도 문제는 또 다시 세상과 연관된다. 도대체 세상은 무엇인가? 그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을 무엇인가? 이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의 구원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도 거의 끝이 없다.
내게 질문한 학생은 내가 쓸데없는 대답만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지 모르겠다. 자꾸 변죽만 울리고 있다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도 한두 가지라도 쓸 만한 대답을 건져야하지 않겠는가.
내가 무슨 설명을 해야 할까. 위의 많은 공부가 도대체 기독교 신앙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그런 공부가 없다면 기독교 신앙은 불가능하다는 걸까? 그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접어두자.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결국 이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기독교 영성이라고 한다. 그림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색깔로 세상을 보듯이,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소리로 세상을 듣듯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깊이에서 세상을 보고 듣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 희망으로, 그런 믿음으로, 그런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게 진리라는 사실은 종말에 가서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매우 중요한 대목이 곧 최후의 심판이다. 마지막 심판을 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생명에 속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되는 사건이다. 그때를 기다리면서 현실에 두발을 굳건히 딛고 살아가는 삶이 곧 기독교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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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김재남

2008.09.19 20:38:51

신학생에게 무척 좋은 답변이며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대답으로 보여주신 질문들이 저와 같은 학생들이 공부해가야 할
길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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