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과 설교

조회 수 5694 추천 수 132 2005.12.01 23:42:24
조직신학과 설교

조직신학이 설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봐서 두 가지다. 하나는 조직신학 공부가 까다롭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이 설교에 별로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 요소는 하나의 사태인지 모르겠다. 조직신학 공부는 어거스틴이나 루터, 칼빈, 또는 바르트 같은 학자들의 주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어떤 관념적인 체계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서로 묶어내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유를 필요로 한다. 조직신학이 추구하고 있는 기독교의 체계(system)는 단지 성서 텍스트를 주석하거나 교회의 역사와 접목시키는 것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성서는 영적인 현실들을 총체적으로 진술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묶어서 어떤 체계를 세우려면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조직신학은 실용적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관념이라고 해서 허황하다는 건 아니며, 실용적이라고 해서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관념적인 것을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단정한다. 예컨대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에서 결정적 개념인 삼위일체론이 그런 취급을 받는다. 어쨌든지 한국교회 강단에서 조직신학의 주제가 자주 선포되지 않는다는 건 조직신학과 설교의 철저한 이원론적인 분리로 인해 벌어진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긴 하지만,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조직신학 자체보다는 오히려 한국교회의 신앙적 경향에 훨씬 근본적인 문제가 놓여 있다. 그것은 곧 설교자들의 관심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사람에게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설교자들이 늘 성령이라는 말을 하고 있긴 하지만 성령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청중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다루어진다. 특히 대중적인 설교자들일수록 이런 경향은 아주 노골적이다. 좋은 뜻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청중들이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교회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설교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한국 강단의 가장 뚜렷한 특징인 대충추수주의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교회 안에서 조직신학은 계속해서 서자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조직신학만이 아니 신학 일반 자체가 교회 안에서 눈칫밥 먹는 중이다.
그렇다면 조직신학은 이러한 교회 현실 앞에서 투정만 부리고 있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교회의 설교 현장이 아무리 척박하다고 하더라도 조직신학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나름으로 고유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인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 인간라고 한다면 당연히 영적인 호소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바로  이 대목, 즉 기독교 영성에 조직신학과 설교의 접점에 있다. 조직신학이 영적인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기만 한다면 청중들이 그 소리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접점이 분명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앞에서 지적한대로 교회가 청중들의 종교적 욕구에만 지나치게 기울어진 탓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조직신학이 영적인 현실과의 소통을 등한히 여긴 탓도 있다. 조직신학이 단지 도그마를 현학적으로 꾸미는 데 치중하기만 했지, 그것이 인간, 역사, 세계와 어떤 실질적인 연관성을 이루는가에 대해 해명하는 일에 소홀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조직신학이 인간 삶의 영적인 현실을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 설교자들이 충분히 이해되기만 한다면 설교 강단이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조직신학도 교회의 학문이라는 원래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원론적인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도대체 조직신학의 영적 현실을 설교에서 어떻게 살려낼 수 있단 말인가? 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왕도가 있는 건 아니다. 현재로서는 꾸준하게 조직신학 훈련을 받는 게 최선이다.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신학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조직신학의 영적인 현실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좋겠다. 예를 들어, 칭의론과 성화론을 보자. 의롭다고 인정받는 길은 믿음이지만 성화의 길은 우리의 윤리적인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교회가 믿음만 강조하고 성화를 간과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는다면서 기독교인답게 살라고 강조한다. 스스로 교양이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설교에 귀가 솔깃해 하겠지만, 이런 주장은 영적인 현실을 놓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들은 기복주의나 내세주의를 강조하는 설교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반응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이지 영적인 현실에 맞춘 게 아니다. 만약 그가 조직신학의 영적인 깊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화의 문제를 그렇게 접근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자기가 도덕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겠다고 노력한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설령 상대적으로 우월한 도덕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차원에서 무의미한 일이다. 칭의가 믿음의 차원이라면, 성화도 역시 믿음의 차원이다. 법적인 의미의 의나 실천적인 의미의 윤리나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영적인 현실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조직신학적 사유에 놓여 있다. 이런 조직신학적인 인식은 설교의 방향을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레벨:0]김이배

2005.12.08 22:40:32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레벨:1]소음공명/박삼종

2005.12.16 09:41:39

칭의를 예로 드신 말씀이 크게 와닿습니다. 아마도 무언가를 종합하는 훈련이 결여되어 있기에 더욱 어려움이 배가되는 것 같습니다.

[레벨:0]권혁

2006.01.11 17:00:46

조직신학이라는 말 자체가 참 어렵습니다.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되는 말입니까? ^^ 평신도로서는 이런것도 궁금하네요.

[레벨:0]오뉴와근신

2006.04.12 14:41:02

조직신학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글을 읽자니 답답합니다.
다만
칭의나 성화나 믿음으로!
이거 하나만 이해됩니다.
쉬운 말을 일부러 어렵게 하시나?ㅎㅎ

민들래

2006.06.05 14:30:19

, 성경의 영감, 하나님의 속성, 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등을 조리있게 다루어 성경에 명시된 진리들을 바르게 조직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려는것이 조직 신학 이라한답니다.
혹 도움이될까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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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9.26 13:14:49

조직신학과 설교?
신학단상의 글을 다 마치면, 판테베르크의 조직신학으로 들어 가려고 합니다.
좀더 집중력을 기울이 위해 프린터로 뽑아 세밀하게 공부하려 합니다.
다비아에 감사와 기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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