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행사의 과부하

조회 수 6427 추천 수 159 2006.11.09 23:46:36
교회행사의 과부화

내가 다른 교회의 예배에 오랫동안 참석하면서 느낀 또 하나의 이질감은 교회의 행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문제는 어제 오늘에 벌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고, 대략 밑그림 정도로 정리해야겠다. 일단 주일공동예배를 제외하고 정기적으로 모이는 예배와 기도회가 상당히 많다. 이런 집회는 이미 오랜 전통으로 굳어진 거니까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다. 웬만한 규모가 잡힌 교회는 교회 내외의 공식적인 모임과 행사만이 아니라 각종 기관의 행사도 줄을 잇는다.
어쩌면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 공동체의 역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교회 행사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오래전 어떤 선배 목사는 나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정 목사, 목회는 신자들을 뺑뺑이 돌리듯 해야 잘 하는 거요. 신자들이 편해지면 엉뚱한 한 생각을 하니까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일 년 열두 달 계속해서 일을 만들어야 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 선배 목사의 지론도 크게 틀린 건 없다. 신자들이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단지 순수한 신앙의 차원만이 아니라 사람들끼리의 친목 도모와 나름의 성취감에도 달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로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한민족의 특성으로 볼 때 교회가 이런 친목도모를 중요한 목회의 방법으로 채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교회 행사가 역동적으로 치러지는 교회가 부흥하기도 한다. 지난 7,80년대에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한국의 경제가 부흥했듯이 교회도 역시 그런 방식으로 부흥을 이루었기 때문에 아무도 행사 중심의 교회 운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교회에서 파송한 해위 선교사의 숫자가 미국 다음이라고 한다. 이는 곧 한국교회의 역량이 반증하는 현상이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해외 선교의 열정은 우리보다 훨씬 오랜 정교회 전통을 자랑하는 러시아에도 선교사를 파송하는 실정이다. 대도시 대형교회들은 앞 다투어 복지관을 세웠으며, 지금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이런 모습들이 내 눈에는 지금 한국교회가 정부나 시민단체와 쓸데없는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와 복지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물론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과 연대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교회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행태들이다. 교회가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정부가 이런 데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여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그런 사명감으로 투쟁할 수 있도록 끌어주면 충분하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에 교회가 물질과 시간을 그런데 쏟는다는 것은 좋게 봐서 과소비이며, 나쁘게 봐서 자기 욕망의 발현이다. 이처럼 순전히 교회 내의 종교행사로부터 시작해서, 노회와 총회 차원의 행사에 이르기 까지 지금 한국교회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구호를 몸으로 때워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 행사가 본질에서 상당히 멀리까지 나왔다나는 증거를 나는 요즘 시국에 관한 한국교회의 태도에서 발견한다. 주로 한기총에 속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시위성 집회에 신자들을 대거 동원하는 일이 그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은 툭하면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기도회를 개최했다. 주로 반핵, 반북, 반김정일, 한미동맹 강화, 그리고 사학법 재개정 등이 주요 의제였다. 정말 오지랖이 넓기도 하다. 그리스도교 신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대형 집회에 나서서 열변을 토하고, 기도하고, 설교하고, 선동하고, 울부짖는 그들의 열정이 어디에 연유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영성은 피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피로증, 그런 조급증이 아니라면 자신들에게 조금이라고 불이익이 오는 것이라면 안면몰수하고 대항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는 설명이 안 된다. 오늘의 교회가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가 신앙의 본질에 천착하는 게 아니라 행사 중심으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왔다는 데에 있다. 이런 교회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 낯설고, 이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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