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 같은 신앙(?)

조회 수 5230 추천 수 63 2005.07.21 23:57:48
어린애 같은 신앙(?)

요즘 교회의 모습을 보면
목사는 신자들을 어린애처럼 닦달하고
신자들은 스스로 어린애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조르는 것 같다.
목사는 신자들에게 믿음 생활 잘하라고 윽박지르고
신자들은 어린애처럼 무언가를 성취함으로써 목사와 하나님에게 칭찬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
이러다보니 목사도 힘들고 신자들도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닐까?
목사의 목회 행위가 구원론적으로 얼마나 황폐화하고 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모든 삶을 투자해야할 목사들이
심방과 교회 프로그램과 행정,
더 나가서 신자들의 일상생활을 돌보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내 생각에는 목사와 신자의 관계가 느슨한 상태로 유지되는 게
서로를 위해서 훨씬 바람직할 것 같다.
이 말은 교회 공동체의 코이노니아를 파괴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그 코이노니아를 긴장감 있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거리를 두는 게 좋다는 뜻이다.
목사와 신자 사이가 느슨하게 벌어져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 공동체의 코이노니아가 확보될 수 있다는 내 말은 근거가 있을까?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과
하나님으로부터만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목회는
거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일방적으로 치중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들의 중심은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이나
신자들을 교회 활동에 집중시키는 것에 놓여 있다.
이런 구조로 교회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끝은 결국 하나님 없이 인간들만의 잔치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교회 프로그램을 완전히 철폐해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순모임, 셀목회, 제자화, 알파코스, 목장목회,
또는 뜨레스디아스, 총동원주일 행사 같은 것들은
가능한 대로 폐기하거나 최소화하고
교회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예배를 정상적인 예전(liturgy)에 따라 드려야 하며,
신학에 바탕을 둔 성서공부를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적 지평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교회의 전통을 따르다보면
많은 신자들이 교회 생활을 심심하게 생각할 것이다.
뭔가 화끈하고 눈물 흘릴만한 감동이 없을 때
어린아이들이 심심해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영적인 깊이로 들어가지 못한 신자들은
이러한 상태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
교회가 흡사 시트콤이나 열린 음악회처럼 나갈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는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투정하거나
감정적인 영성에 치우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종교적 선입견이 제거된,
그래서 어떤 사물이나 사태의 내면을 직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 신자들은
영적인 내면이 맑고 깨끗해서
하나님 나라를 직면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인간 역사 앞에서 불안해하고
그 책임감으로 도피하고
단지 종교적인 위로를 받으려고만 하는,
말 그대로 철없는 아이가 아닐까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깊은 생각 없이 글을 막 쓰는 게 지혜롭지는 않겠지만
비록 내 글쓰기에 실수가 생기더라도
보이는 그대로 한번 짚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목사는 신자들을 어른으로 대하는 게 좋겠다.
잔소리 하지 말고,
모범생 만들 생각하지 말고,
자기의 작은 신앙 수준으로 신자들을 몰아갈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좀 놓아두는 게 좋겠다.
예수님은 한 번도 새사람 만드는 걸 말씀하신 적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그대로 인정할 뿐이지
변화해야 한다고,
요즘 식으로 말해서 성화해야 한다고 잔소리 하신 적이 없다.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하나님 나라에 기대서 살아가신 분이 곧 예수님이다.
이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오늘의 목사와 신자들이
왜 예수님이 요구하신 것보다 더 큰 것을 서로 요구하는 걸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신 적이 없다.
예수님이 자기 소유와 가족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이지
구체적인 삶 자체를 무시하신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요구하던 유대교의 짐으로부터
민중들을 해방시키셨을 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
여기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세상살이의 어려움이 아니라
종교적인 수고와 짐이었다.
유대교는 하나님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가르쳤다.
율법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율법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선포하셨다.
그런데 왜 오늘의 목사와 신자들은 다시 율법을 성취하려고 애를 쓰는 걸까?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으로
나의 무율법주의적 사고방식에 반론을 제기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훨씬 많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은 접자.
다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는
더 이상 율법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을,
더 이상 율법이 주인 행세 하지 않는 세상을
불퇴전의 용기와 결기로 선포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만을 확실히 하자.
더 이상 율법이 무의미해진 세상, 그런 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런 문제를 종말론적인 지평에서 풀어나가는 게 곧 설교이며,
그것을 삶과 역사에서 구체화하고
거기에 자기의 삶을 전적으로 투자하는 게 곧 기독교 신앙이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우리는 신학이 필요하며,
인문학적 사유가 절실하다.
신학과 인문학이 없다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그 실체를 상실하고
관념과 추상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렇게 되면 당연한 결과로 이 세상을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어린애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울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했는데,
오늘 너무나 많은 목사와 신자들이 그런 일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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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순둥이

2007.05.09 17:09:42

지당하신 말씀 입니다..^*^ 저희 어머님이 저 보고 주의 종 이 되라고 하시지만... 목사를 정말 아무나 쉽게 한다면 아유 골치 아파요^0^ 한국에 난무하는 신학교가 결국 병든 교회와 병든 기독교를 만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 목사님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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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9.13 01:05:47

어린애 같은 신앙(?)
잘 난척을 조금 해보면, 교회 선교회가 2~3명이 안된 곳을 갑자기 회장으로 임명받아 15명 정도 모이는 선교회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공허해집니다.
2년동안 회장하면서, 각종 기념일을 잘 챙기고 끊임없이 월례회와 심방을 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닥달하는 것인데, 지금 선교회 회원들을 닥달해가며 수적으로 많아 보이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모습일까?
부분적인 것에는 긍정이 가지만, 점차 내 자신이 지쳐가고 선교회원들이 필요한 안식과 영적 교제를 하고 있는지 의심이 갔습니다.

2년 임기가 끝나고, 목사님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청년회 부장으로 임명 되었을때 당회에서 거부를 했지만 주위의 여론에 밀려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후, 목사님게 찾아가 내가 왜 거부를 했는지 그리고 능력과 자질면에서 떨어진다는 말을 했습니다.
끝내 내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교회 사무실에서 청년부 전도사가 하는 말이 '집사님이 선교회를 부흥시켜서 기대를 했는데...'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씁쓸한 생각 하나가 지나 갔습니다.

그것은 대체 부흥이 뭔데?
머리수가 많이 모이게 만들고, 그들을 사정없이 채근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시는 부흥이란 말인가?
교회의 모든 일에 다 참석하고 하나님 보다는 목사님과 주위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어린이 만도 못한 자신)
하나님의 대한 사랑이 바뀌었습니다.

욕심으로 채워진 하나님에 대한 충성에 대한 자조가 너무나 싫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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