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는 필연인가, 우연인가?

조회 수 4827 추천 수 50 2005.08.01 23:37:09
예수의 십자가는 필연인가, 우연인가?

오늘 나는 자칫 시비거리에 휩싸일지 모를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다.
그것은 곧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관한 것이다.
이미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의 십자가가 구원의 절대적인 사건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왈가왈부,
또는 토를 단다는 것은 신성모독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근본에 대해서
정직하고 진지하게 질문하는 일을 포기하면
광신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 사상 9월호에 기고할 설교비평을 준비하면서
경기도 평촌의 김 아무개 목사의 설교와 그의 저서들을 읽어보았다.
그의 설교는 지성을 근거에 둔다는 점에서 매우 특색이 있었는데,
그 지성이라는 게 여전히 교리적인 범주를 전혀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교리를 넘어선다는 것은 교리를 해체한다는 게 아니라
그 교리의 리얼리티를 오늘의 지평에서 해석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예수의 '십자가'를 이미 인류 구원의 사건으로 전제하고
그것 앞에 서 있는 신자들의 신앙적 감수성만 강조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를 바르게 알거나 바르게 해석하는 게 아니다.
예수에게 발생했던 그 십자가를 우선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의 실체 안으로 들어간 다음,
그것이 오늘 우리의 삶에서 어떤 구원론적 역동성이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십자가의 실존적 의미만 중요하다는 게 결코 아니다.
실존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 않으면 추상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해명하는 데 별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말이 좀 질질 끌려가는 것 같은데, 직접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도대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아니면 인류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해야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이 자리에서 "그게 바로 성서의 가르침이다."라고 말하지는 마시라.
믿지 못할 일이라도 성서가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가 아직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나?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인가,
그의 부활인가,
그의 사랑인가,
그의 행위인가,
그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그의 인격과 그의 운명인가?
우리는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무엇을 믿는가?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한 예수 자체를 믿는 것일까?
혹은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믿는가?
위에서 무질서하게 나열한 질문들의 무게는 여기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무겁다.
다시 우리의 관심을 십자가의 역사 문제로 돌리자.
예수의 십자가는 역사의 필연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만약 예수의 십자가가 그렇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의 과정에 불과했다면
그것은 인류의 구원할만한 사건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일종의 역사 결정론은 성서와 기독교 신앙에서 말석도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역사 결정론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게 하나님이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기독교인들은 생각한다.
그런 걸 예정, 또는 섭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예정론과 섭리론은 역사 결정론과는 격을 달리한다.
(이런 문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내가 보기에 예수의 십자가는 역사의 '우연'이다.
여기서 우연이라는 말은 주사위처럼 여러 가능성 중에서 어쩌다 선택되었다는 게 아니라
역사를 열려진 사건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예수에게는 이미 출생부터 십자가가 결정된 게 아니라 열려져 있었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때 이런 게 좀 까다로운 부분이다.
원칙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가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지만,
또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그래서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섭리가 바로 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예수의 십자가가 이미 필연적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이 세상이 이런 필연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오히려 우연 안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는 게 바로 우연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행위이고 능력이다.
이런 우연의 개입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는 긴장이 작동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에 마음을 열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역사의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대체 오늘 우리의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그건 단지 신학적 유희에 불과한 걸까?
이 문제를 좀더 실감하기 위해서는
2천년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아무도 구원의 길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철저한 실패에 불과한 예수의 십자가가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사실은
초기 기독교에서 매우 천천히 인식되고 고백된 것이다.
전혀 주목받지 못한 사건이,
아니 오히려 경원의 대상에 불과했던 사건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으로 부각되었다는 이 역사의 신비 안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은
오늘도 그런 일들이 어디서 일어나고 있는지
민감하게, 깨어있는 영성으로 살펴야만 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기독교은 구원의 완성에 가까운 공동체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더 설명해야하는가.
내가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고 말해 버리고 말텐데.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그래도 친절하게 한 마디만 더 설명하자.
예수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역사 개입인 '우연'이라고 아는 사람이라면
새 땅과 새 하늘이 열리는 종말이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서,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열정을 벗어나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그것을 기다릴 것이다.
초기 기독교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예수의 십자가에서
인류 구원의 길을 발견했듯이 말이다.
그런 영성이 우리에게 있을까?
아니 기독교 신앙이 근본적으로 이런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교회력의 시작이 '대강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 대강절의 실체 안으로 들어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우리는 역사의 신비를,
하나님이 끌어가는 이 역사의 신비를 경험한다.


profile

[레벨:41]새하늘

2007.09.13 01:14:52

예수의 십자가는 필연인가, 우연인가?
걸어가다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났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발견했다.
우연속에 만나 하나님의 섭리라는 정리가 너무가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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