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해석이다!

조회 수 4685 추천 수 53 2005.08.06 00:11:43
성서는 해석이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성서를 거론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그 성서 텍스트를 규범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말라기서에 십일조 명령과 약속이 있다거나,
창세기에 선악과가 있다는 식이다.
또는 노아 홍수와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기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과 크고 작은 전쟁들,
북이스라엘과 남유대 사이의 정치적 역학관계,
그 와중에서 형성된 여러 후기 예언서와 성문서들을
일종의 객관적 사실로 전제하고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접근은 근본적인 오류이다.
성서 텍스트는 한결같이 해석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 해석이다.
그 해석에는 사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약간 편집된 것도 있고, 엄청 많이 편집된 것도 있다.
이런 점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적대적인 주장으로 놓고
설로 투쟁하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성서의 창조론은 역사 해석이다.
창조론적인 역사해석이 옳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성서의 진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말은 곧 성서 텍스트의 모든 진술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네 처음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은
욥을 질책했던 친구 중의 한 사람(?)의 말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어떤 진리론적인 토대가 있는지 늘 검증해야만 한다.
이렇게 확연하게 드러난 진술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주신 말씀으로 진술된 내용들도 역시 늘 검토의 대상이다.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진리론적 토대에서 정당한지에 관한 충분한 해석이 없는 한
그건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해될 수 있다.
지금은 우리에게 경전으로 주어진 말씀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성서의 전승 시대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함으로써
누가 참된 예언자인지 혼란스러웠다.
구약만이 아니라 신약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경전이 된 27권만이 아니라
그 이외에 매우 많은 거룩한 문서들이 교회에 유포되고 있었다.
그 중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문서들도 있었지만
매우 비기독교적인 것들도 많았다.
과연 그 당시에 그들은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런 모든 문서들은 각자가 나름의 권위를 주장했는데,
그런 자기 주장만으로 경전이 될 수는 없었다.
결국 교회는 몇 가지 기준을 정해서 경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기준은 곧 사도성과 그리스도 신앙이었는데,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정당한 해석에 대한 것이다.
예수가 어린 시절에 초능력을 보였다고 기록하는 문서들은
정확한 해석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전에서 제외되었다.
내가 위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성서는 기록될 때부터, 전승될 때부터, 경전의 시기에도
해석학적 정당성이 매우 중요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대한 역사 해석인 성서를
전혀 해석하지 않고 무조건 규범으로 받아들인다.
설교를 비롯해서
큐티 공부에 이르기 까지 모두 규범론적 적용일 뿐이지
보편적 해석이 빠져 있다.
이런 방식이 한국교회에 만연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방식이 잘 먹히고 있기 때문에
설교자들이나 평신도 지도자들이나 모두 아마추어리즘에 빠진다.  
이런 태도는 광신일 뿐이지
진리의 영인 성령에 의존하는 태도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오늘 나는 이런 방법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건 훨씬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기본적으로는 해석의 역사인 신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인간 삶에 대한 해석인 인문학에 대한 소양이 한 데 묶여야만
참된 의미에서 성서해석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해석'이라는 게
기껏해야 성서 내용을 신앙적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교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해석은 기본적으로 텍스트가 숨겨놓은 어떤 것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하나님의 영역인 생명은
지금 황우석 교수가 아무리 배아복제 기술로 그 세계를 연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열리지 않는 세계이다.
그런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성서는 과거의 어떤 사건에만 묶여 있는 게 아니라
그 생명이 완성될 미래로 열려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무엇을 숨기고 있는 셈이다.
설교자와 성서교사는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런 세계를 못보는 사람은
성서에서 단지 도덕, 윤리, 종교강령, 그런 규범만 발견할 뿐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인간을 구원하는 도그마로 고착될 뿐이다.
도대체 '구원'이 무엇인지 아직도 우리가 질문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어떻게 십자가가 구원의 길이라는 것일까?
'구원'에 관해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십지가의 구원론적 토대는 아주 추상적으로 되거나
아니면 단지 교리로 남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성서교사와 설교자는 가야할 길이 멀다.
성서 자체가 해석이며,
그것을 마주대하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작업도 역시 해석이다.
해석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기만 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방방 뛰는 식으로 설교하지는 않을 것이다.




[레벨:18]르네상스

2005.08.06 17:06:51

성서해석!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요. ^^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많은 기독교 교회들이 성경을 나름대로 해석해 왔죠.
그 모든 해석들이 정말 바른 해석들인지는 오리무중인 것 같습니다.

신학적 해석과 인문학적 해석! 이 말씀이 와 닿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서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서 전체에 흐르는 중심 메시지와
하나님나라의 선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겠죠.

또한 해석과 함께 중요한 것이 선포와 적용인 것 같습니다.
말씀을 해석하고 선포하고 적용하는 일은
심히 괴로우면서도 또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오직 말씀에 붙들리기를 갈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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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07.03.22 13:34:57

해석만 밝히 되었다면 적용은 하지 말라고 말려도 하게되지 않을까요
막막한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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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9.20 14:43:03

성서는 해석이다?
자신도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채, 여러 해설서의 내용만 가지고 마치 자기가 깨달은듯 하는 분들을 봅니다.
해설서는 이해와 깨우침을 위한 도입부분일뿐, 전부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 텍스트를 뛰어 넘을수 있는 자신만의 고통이 필요하지는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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