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은 '역사'다!

조회 수 4965 추천 수 167 2005.09.17 14:09:35
하나님의 심판은 '역사'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에 '심판'도 포함된다.
하나님은 창조자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영원자다,
하나님은 무소불위다, 등등,
여러 하나님에 대한 속성 중에서 심판도 그것 중의 하나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심판자다.
도대체 하나님이 심판자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내가 다른 글에서, 아마 심터교회 메뉴에서,
심판에 대해서 약간 언급했기 때문에
심판 자체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지 않고,
그 심판의 실효성에 대해서만 언급하려고 한다.
이는 곧 하나님은 실제로 심판하시는가,라는 질문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로 우리 삶에 유효한가,
아니면 실제로는 아니지만 그걸 의식하고 착하게 살라는 교훈일 뿐인가?
그냥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 보자.
악이 심판받는 걸 보았나?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만한 대가를 받는가?
독재자들이 심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악행이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심판받을까?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잘 먹고 잘 살다, 그렇게 간다.
만약 학생들은 단지 등록금 납부하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대학교 이사장이 있다고 하자.
그는 그런 돈을 잘 굴려서 물적이 토대를 착실하게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비교육적인 지도자들이 심판받는 것을 잘 보지 못한다.
물론 모든 교육자들과 기업가들이 몰염치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포착할 수 없는 악이 교묘하게 준동하고 있는데,
그것이 늘 그만한 대가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우리가 포착하지 못하는 선한 일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은 누가 알아주든 않든 상관없이
생명 지향적으로 사는데, 그러다가 고난받기도 하고,
우리가 독립군의 후손들에게서 볼 수 있는대로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가계가 허물어지도 한다.
이런 복함적인 관계를 우리가 명증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런 마당에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다느니 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소롭게 들릴 것 같다.
물론 신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긴 하겠지만
그것도 매우 추상적이거나 감상적일 뿐이지
그 심판의 실체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르고,
그의 통치와 그의 심판에 대해서도 모른다.
자신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모른다.

다시 묻자.
과연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심판은 역사적이다.
역사가 곧 하나님의 심판이다.
이 말은 곧 그 당시에는 심판이 없다는 뜻이다.
없다는 표현을 정확하지 않다.
없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모른다는 뜻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심판을 확인할 길이 없다.
역사가 흘러가야만 옳고 그름의 판단이 결정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심판 방법이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모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역사만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아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심판은 역사적이지만
우리가 역사를 본다고 해서 그것으로 즉시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지 아는 게 아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학은 그 심판을 종말론적이 성격으로 설명하다.
심판은 종말론적이다.
오늘 종말론적 심판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우리의 머리가 복잡해 질테니까 말이다.
다시 그 당시에 심판이 없다는 사실,
우리가 그 당시에 그 심판을 모른다는 사실만 지적하다.
구약성서에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한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아, 호세아 등등,
그들이 그 당시에 정통 예언자로 인정받은 건 아니다.
이 말은 곧 그 당시에 그들 이외에 수많은 예연자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사이비가 적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보아야 한다.
구약시대에 수많은 예언자들이 경쟁관계에 있었다.
그들은 나름으로 예언를 했다.
모두가 군중들을 끌어모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보다 훨씬 많은 군중의 지지를 받은
예언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역사가 지난 다음에야 이제 그게 밝혀진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서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하는가?
반공을 기독교 신앙인것처럼 주장하고,
타종교를 멸시하고,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
가부장제에 철저하게 경도된 설교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천, 수만의 군중을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설교자들이 많다.
나는 아직 누가 옳은 예언자이며 설교자인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나도 궁극적인 생명의 비밀을 모르고 있기는 그들과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인정받는 설교자가 반드시 역사에서도 인정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은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앞으로 2백년, 5백년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지금 이 시대의 교회를
어떻게 판단할지 우리는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점에서 나는 소극적인 목회, 소극적인 설교를 주장한 바 있다.
그래야만 우리가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수를, 우리의 우상숭배적 설교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말론적 심판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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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9.21 11:46:52

하나님의 심판은 '역사'다?
이마저도 없다면 너무나 억울할 것이 많다.
인간사에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만 즐비하고, 사람이기를 거부한 인간이 버저히 활개를 치며 당당하게 살아간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본전생각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을 간과하며, 성경의 요나처럼 니느웨이 성이 어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똑같이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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