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802 추천 수 112 2005.11.17 00:15:31


오늘 오후에 집에 들를 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자전거 펑크가 났다.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데 웬일인지.
자전거를 끌고 가서 자전거포집에 맡겼다.
그 집은 이 자전거를 산 집인데,
우리 테니스 동호회원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맡기고 걸어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하양 다리 부근에서 무를 싣고 가는 타이탄 트럭을 만났다.
그런 타이탄 트럭이야 매일 보는 것이지만,
그 안에 무가 담겨 있다는 게 전혀 새로운 어떤 것으로 다가왔다.
무!
최소한 물이 95% 이상 되지 않을까?
깍두기의 재료는 물론이고,
소고기국에 없어서는 안 될,
아마 오뎅국물에도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무 아닌가.
타이탄 트럭에 실려 시장으로 나가는 그 무를 본 순간
나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무 서리를 하던 때가 생생하게 생각났다.
그 장면은 내가 구구절절이 묘사하지 않아도
그런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신전심으로 느끼실 것이다.
남의 밭에서 뽑아먹는 그 무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랫부분보다는 윗 부분,
그러니까 푸른 잎 색깔이 나는 부분에 더 고소했다.
남의 밭에서 뽑아먹었지만 그렇게 밭을 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친구들과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배가 고프거나 목마를 때 한 두 개를 뽑아서 먹는 정도였다.
그때 먹던 그 무가 오늘도 트럭에 실려 있었다.
도대체 무는 무엇일까?
왜 그렇게 생겼을까?
이 지구가 무슨 조화를 부려서 무를 그렇게 세상에 보냈을까?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이 세상의 질료에 형상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기에 그런 무가 되었을까?
사실 무의 질료, 또는 무의 원소는 이 세상 안에 있는 것들이다.
우리 인간도 역시 이 세상 안에 있다.
지렁이도 역시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들이다.
해바라기 역시 그렇다.
민들레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와 인간을 구성하는 원소는
모두 한결같이 이 세상의 것들이다.
같은 지구의 원소들인데,
어느 쪽은 무가 되고, 어느 쪽은 사람이 되었을까?
무와 사람이 과연 다른 게 무엇일까?
사람은 생각할 줄 알고, 무는 생각이 없다는 게 다른가?
이것만큼 큰 오해도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왜 우리만 생각하는 존재라고 단정하는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는 도대체 생각, 또는 사유가 가장 우월한 속성일까?
어쩌면 이 세상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도 무의미한 것은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돌멩이와 나비는 서로 대화할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이 감각적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다.
다른 글에도 한번 썼지만
이름 없는 꽃 한송이와 별빛이 나누는 대화를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그들 사이에 대화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참된 대화가 이 세상에는 많을지 모른다.
흡사 시각 장애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소리를 포착하듯이 말이다.
오늘 낮에 내가 본, 트럭에 실려 가던 무는 어떤 세계와 만났을까?
그게 나는 궁금하다.
무와 땅이 나눈 대화가 궁금하다.
무와 물이 나눈 대화가 궁금하다.
무와 밤안개, 또는 이슬, 서리와 나눴을 그 비밀스런 대화가 알고 싶다.
물론 성서는 이런 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한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각각 구약과 신약의 중심 주제이다.
그러나 성서가 침묵하고 있다 해서 없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면 그런 숨어있는 세계에 조금씩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성서를 기본 바탕으로 우리는 훨씬 깊고 넓은 세계로
우리의 생각을 심화, 확대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일부를 말할 뿐이지
전체를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성서가 불완전하다거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충분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여전히 종말론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다.
모든 생명의 비밀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될 그 종말을 향해서
어떤 궁극적인 질문과 그 나름의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게 곧 성서이기 때문에
그런 성서를 읽는 우리는 그런 종말론적 시각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종말에 완성될 그런 생명의 신비가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런 기다림이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도대체 생명의 실체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이미 오늘 낮에 본 그 무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레벨:1]정세웅

2005.11.17 16:38:30

성서를 기본 바탕으로 우리는 훨씬 깊고 넓은 세계로
우리의 생각을 심화, 확대해야 할 것이다.

좀 더 깊은 생각의 문을 여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저의 둘째 아이는 인형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을 가지고 인형놀이를 합니다. 저마다 다 자기의 생각과 목소리가 있는 듯, 대화하는 것을 듣노라면 저도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에 빠지곤 합니다. 지난번, 아이가 가지고 놀던 단순한(?) A4 종이 한 장을 발로 밟았더니, 종이가 아파한다고 저에게 소리를 치는 겁니다. 그때는 아이스러움에 웃음만 지었는데, 오늘 목사님의 말씀을 접하고 나니, 저의 딸아이의 그 상상력이 훨씬 '진리스러운 것'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레벨:6]유희탁

2005.11.17 19:53:15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저자가 물이 사물의 속성을 인식한다는 말이 나오는데(정확하지는 않음)그 사물의 분자 구조에 대한 인식 역시 무가 담고 있는 세상과의 대화에 포함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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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novemberhan

2005.12.17 22:35:33

"무"라는 제목에 제가 생각한 그 '무'가 아니었네요. 그런데 교수님이 만난 무의 사색이 제게도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동네 뒤언덕에 심어놓은 무들이 말입니다. 근데 그 시절 서리의 의미는 알았으나 서리의 대상에 대해선 생각지 않았던 것이 기억나네요. 제가 서리한 무는 저의 손가락 굴기의 아주 빈약한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에게 있어 무는 그 자체의 생명성에 관한 의미보다는 그 무를 심은 한 늙은 노인의 삶이 떠오른다는 것이겠지요. 제가 어린 시절 한 노인의 희망을 짓밟은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사람은 성장해야 하나봅니다. 무를 보는 것이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닌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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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9.22 21:59:47

무?
어릴때는 조리된 고등어 조림이나 소고기 국등에 무가 있으면 무만 빼먹고 먹었습니다.
조금씩 나이가 들자, 이제는 아무런 느낌없이 조리된 무를 잘 먹습니다.
그것은 그 속에 담겨진 무의 진미를 이제서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그것을 자꾸 접하수록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좀더 친밀하게 다가와 참 맛을 알 수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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