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과 종말론

조회 수 5351 추천 수 81 2004.10.13 00:21:39
신학단상(28)              
외계인과 종말론

지금까지 ‘신학단상’이 너무 딱딱한 주제만 다룬 것 같아서 오늘은 좀 엉뚱한 쪽으로 나가볼까 한다. ‘외계인과 구원론’이라는 게 말이 될까? 말은 된다고 하더라도 혹시 신성모독은 아닐까? 그러나 신학(Theologie)은 말 그대로 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에 ‘대한’ 로고스, 또는 하나님‘의’ 로고스이기 때문에 우주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 중에서 우리가 신학적으로 사유할 수 없는 대상은 하나도 없지만 일반 신자들은 일단 심정적으로 외계인, 또는 UFO 문제가 기독교 신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 이유는 성서가 외계인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울러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우리의 의식에 너무나 확실한 선입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좀더 넓혀보자.
만약 우리가 성서를 극단적으로 비약하지만 않는다면 성서에서 외계인에 대한 진술을 발견하기는 불가능하다. 어떤 엉뚱한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예수님이 바로 외계인이었다는 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성서의 근본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 다른 한편으로 성서가 언급하지 않은 모든 가능성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역시 신앙적인 태도는 아니다. 이게 좀 까다로운 문제다. 성서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주제나, 어떤 대상을 단순한 인간의 상상력으로 당연시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거부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일까? 이 문제는 곧 성서론과 연관되는데, 우리가 성서에 접근할 때 다음과 같은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서 형성에 관계된 사람들의 인식론적 한계 안에서만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창세기 기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흙을 빚어 만들었다고 보았으며, 더 나아가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극단적인 축자영감설에 묶인 사람이 아니라면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진술을 사실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갈비뼈’ 같은 이야기가 왜 성서에 기록된 것일까? 이런 사태는 바로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이런 설화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상력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없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오해 말기를 바란다. 성서가 단지 인간의 상상력이라거나 창세기의 서술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의 핵심을 다시 강조한다면, 하나님이 인간의 그런 인식론적 한계 안에서만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의 인식론이 심화한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훨씬 깊이 우리에게 계시하실 것이다. 따라서 이 창세기의 진술을 증거로 삼아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태양계 이외에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렇게 정당한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외계인이 있다는 말일까? 그것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바는 성서를 근거로 외계인의 존재 유무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문자로 쓰인 계시’인 성서의 지평을 폐쇄시키는 게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개방시켜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독교가 말하는 종말이 지금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짧은 시간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앞으로 1억년이나 10억년 이후까지를 포함한 우주 전체의 운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그렇게 쉽사리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도 일단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외계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오늘의 물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행성을 거느린 항성이 은하계 안에도 몇몇 있다고 한다. 행성을 거느린 항성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게 40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대략 378조4천3백20억만km다. 여객기의 시속 1천 km라고 한다면 빛은 시속 10억 8천만 km이니까 대략 빛이 여객기보다 1백만 배 빠르다고 보면 맞다. 이런 계산으로 40광년 떨어진 어느 행성까지 여객기로 간다고 한다면 4천만년 걸린다. 여객기보다 10배 빠른 우주선이라고 하더라도 4백만 년 걸린다는 얘기다. 그곳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보장은 아무도 못한다. 없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성되고, 그 유기물에서 DNA와 단세포를 거쳐 고등생물, 거기다가 지성을 가진 생명체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수없는 우연성이 겹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적으로(과학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신앙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매우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앙은 과학을 포함하는 우리의 인식과 결단이지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는 열광적인 광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서의 창조론과 종말론에 근거해서 우리의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물론이고, 1백20억 년에 이르는 우주의 전체 역사는 우리의 신앙적 사유의 대상이다. 만약 1억년 후에 외계인이 지구에 손님으로 찾아왔을 때 기독교 신앙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1억년은 너무 먼가? 천년이 하루 같다는 성서의 아포리즘을 여기에 대입한다면 1억년은 열흘에 불과하다. 이미 지구는 45억년을 지냈으며, 앞으로도 그런 정도의 세월 동안 태양의 셋째 아들로 살아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과 현실이 너무나 진지해서 그 미래의 것들이 시시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1억년은 우리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가을바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말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의 종말론은 사람들이 염두에 두지 않는 그 종말을 매우 생생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미래를 향한 무궁한 상상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런 토대에서 이 현실의 역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레벨:5]오영숙

2004.10.20 03:48:04

저는 가끔 그런생각을 합니다. '저 멀리 우주 어딘가에 성도들을 위해 주님이 만들어 두신 별이 있을 것같다.'는 생각을 말이죠. 너무 어린이 같은 생각일까요? 주님이 이야기 하신 천국이 반드시 초월적이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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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8.13 20:33:58

외계인과 종말론 ?
외계인 있고 없고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신앙의에 몰두 하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내 자신도 자주 외계인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혹시 하나님이 외계인이 아닌지? ^^!
종말을 구하는 외계인에 대한 영화가 우리와 쉽게 접할수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하여 하나님에 대한 회의론이 수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초월자로 우리의 상상과 과학을 넘어선 곳에 계신다고 본다.
혹,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불경스러운 죄를 짓는 걸까?.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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