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계시

조회 수 4709 추천 수 53 2005.03.28 23:30:54
역사와 계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계시이며, 그 사실에 대한 증언이 성서라는 차원에서 성서가 계시라는 말이 원칙적으로는 옳지만 이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과연 성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 혹은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을까? 만약 아전인수나 견강부회(牽强附會)에 빠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성서에서 일치된 구원 사건과 계시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처럼 정치적인 해방을 일으키시기도 하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기도 하고, 욥기서에서 볼 수 있듯이 윤리를 뛰어넘는 존재의 거대한 힘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경으로 전승된 이야기이니까 그렇다하더라도, 신약성서는 일목요연한 계시 사건을 진술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전달하려는 뜻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즉 구원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신약성서는 더 이상의 논란이 개입될 수 없는 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씀도 있고, 그런 믿음 없이 단지 가난하거나 소외당한 사람들이 구원받기도 하며, 육체적인 질병에서 치료되는 것을 구원이라고도 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사이에 현재적으로 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초월적이고 미래적인 것이기도 하다. 예수 사건의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부활에 관해서도 신약성서가 명시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복음서는 예수 부활의 현상만 서툰 방식으로 다루고 있으며, 바울의 서신은(고전 15장) 철학적인 방식으로 논증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신약성서는 부활을 확신하고 있을 뿐이지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 기독교의 부활 경험에 진정성이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런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신약성서의 접근 방식이 실험실에서 어떤 과학적 사실을 증명해내는 방식이 아니라 앞서 자신들에게 명확하게 경험된 진리를 신학적으로 해석해나가는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성서가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을 다양하게, 선취의 방식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지시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훨씬 근원적인 사실이 우리가 계시 사건을 역사적으로 다루어야만 할 이유이다. 그것은 계시의 해석학적 토대들이 여전히 그 실체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해석하려면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의 나라도 역시 존재한다는 걸 전제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호화 주택 정도로 생각한다면, 또는 최고의 복지가 마련된 세상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이 추정해낼 수 있는 어떤 상대적인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꼴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계시를 해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고 있는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실증적으로 언급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부활의 리얼리티인 ‘생명’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생명이라는 무엇일까? 생물학적인 현상인가, 심리학적인 현상인가, 노동의 해방인가, 영적인 자유인가? 무엇이 생명의 근원인가? 유전공학이 다루고 있는 것은 단지 생명 현상일 뿐이지 생명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생명 현상에 관한 아무리 풍부한 정보를 캐낸다고 하더라도 생명 자체에 접근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계시가 무엇인가를 인식하려면 지금과 같은 형식의 세계가 끝나게 될 종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가 재림하고, 이 세계를 심판하시게 될 그 종말이 와야만 이 세계의 실체가 밝혀질 것이고, 그것이 곧 계시의 완료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독교의 종말론적 세계인식은 단지 기독교의 교리적 체계로서만 아니라 보편적 지평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의 최종적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그 인생의 마지막 대목을 보아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서만 이 세상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종말론적인 계시 인식이 바로 역사적 인식인데, 이는 곧 역사의 한 순간이 아니라 그 전체 과정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세계를 한 점(點)이 아니라 전체로 본다는 이런 종말론적인 역사인식에는 두 가지 관점에 놓여 있다. 하나는 계시의 역사화이다. 계시는 비록 역사의 한 시점에서 정지하거나 묶이지 않고 초월하고 있지만 전체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이런 역사가 아니라면 철저하게 역사에 의존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와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들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은 곧 계시를 해명하는 작업과 다른 게 아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역사는 단지 우리가 우리의 주관으로 판단하는 그런 실증적인 역사가 아니라 일종의 카이로스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역사를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역사의 계시화이다. 우리가 비록 역사에 의존해서 살아가지만 이 역사는 우리의 이성적 판단으로 처리가능한 대상이라기보다는 전제로서 하나님을 계시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 계시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역사와 계시를 기계적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당연히 그래서도 안 되지만, 매우 긴밀한 상호적, 변증법적 관계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계시를 궁극적으로 예수의 부활이라고 한다면 역사는 예수의 십자가라 할 수 있다. 계시는 초월적이지만 역사는 내재적이다. 이 계시의 초월과 역사의 내재가 변증법적인 관계를 통해서 “역사로서의 계시”로 지양된다. 오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한다는 의미는 곧 하나님의 계시라 할 역사 전체를 해석하고, 변혁하며, 거기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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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07.09.01 13:29:11

역사와 계시?
인간의 역사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것.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사는것.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단순히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일까?
이마저도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게으르고 답답한 하나님의 또다른 아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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